사랑을 해 본 적 있는가
기준도 정의도 없는 무논리적인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사랑 그것은 조용하고 아름다운가, 처절하게 타오르는 것인가. 물론 세상에 수만 가지 사랑이 널브러져 있지만 개중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동일한 사랑진행방식이 있다. 감정의 끌림과 질림 그리고 끝. 이것들을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여기 있다.
신디(미셸 윌리엄스)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딘(라이언 고슬링)은 사랑에 솔직하고 한 여자를 얻기 위해 직진하는 남자다. 신디에게 반한 딘은 로맨틱하고 저돌적인 사랑을 보인다. 사랑의 존재를 불신하던 신디는 딘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는 귀여운 날들을 보내며 점점 그를 받아들인다. 힘든 시기를 맞이했을 때 자신을 온전히 품으려는 딘에게 눈물 나는 신뢰를 느낀 신디는 결혼을 택한다. 연애와 결혼은 다른 건지, 그저 사랑이 걷어지는 과정인지 이들은 6년이란 시간 동안 '다름'으로 부딪힌다. 빨간 불꽃이 튀던 둘은 함께하자는 맹세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식어만 간다.
그들의 사랑이 결국 현실이란 장벽을 넘지 못했던 걸까, 혹은 처음부터 사랑이라 착각했던 걸까.
신디와 딘의 열정적인 사랑의 행적을 지켜본 관객으로서 둘의 사랑이 끝까지 지켜지길 간절히 바랐다. 신디의 사랑이 끝난 게 눈에 훤해도, 바랐다. 사랑이 아니니까 딘과 있을 때 잘 웃지 못하고, 사랑이 없으니까 그의 눈을 잘 보려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노력을 바랐다. 그렇다고 사랑이 끝난 그녀를 욕할 순 없다.
엄마 아빠처럼 되긴 싫어요. 한때는 서로 사랑했겠죠? 절 낳기 전에. 사랑이 식어버린 걸까요? 사랑이 그렇게 사라지는데 감정이란 걸 어떻게 믿죠?
이렇게 말했던 신디가 이렇게 돼버렸으니까. 그것이 너무 안쓰러워 그녀를 탓할 수가 없다.
사랑을 믿지 않음이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키우고 결국 스스로 사랑을 쉽게 끝내게 만들었다. 신디가 미운데도 이해한다.
나한테 맹세했잖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 하겠다고 말했잖아.
맹세했잖아
어떻게든 사랑을 살려보고자 했던 딘도 안타깝긴 매한가지다. 사랑에도 방법이 있다면 딘은 철저히 방법 없이 사랑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랑이 우선인 남자.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딘의 터프한 사랑 방식은 현실 속에서 부서진다. 사랑만으론 살 수 없는 여자 신디에게 사랑만으로 안되냐고 소리치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의 직장에 난리를 피우고 질투하고, 반지를 수풀에 던졌다가 다시 찾아 끼고. 감정적이고 찌질하다. 사랑보다 다른 무엇들이 더 중요한 신디에겐 더 그럴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멜로에서 맡는 남자들은 대체로 사랑에 뜨겁다. 한 여자만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이상의 사랑을 그녀에게 내뿜는다. <라라랜드>와 <노트북>이 그렇다. 라라랜드는 사랑의 과정을 예쁘고 화려하게 노래하고 노트북은 낭만적이다. 반면 <블루 발렌타인>은 시리도록 쓰라린 사랑의 과정 때문에 즐거웠던 추억의 기억마저 부질없다고 생각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에 아프고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처음 설렘이 존재했던 때를 떠올리며 허무함을 느끼는 것처럼.
데릭 시엔 프랜스 감독은 실제로 영화에 현실을 녹아내려 12년 만에 영화를 내놨다. 딘과 신디의 사랑이 변해가는 6년이란 시간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에게 한 달간 아파트에서 부부 같은 일상을 보내기를 권유했고, 그들은 받아들였다. 둘의 아이로 등장하는 아역 배우 페이스도 합류하며 홈 비디오를 찍고 홈파티를 여는 등 딘과 신디를 살았다. 두 주연 배우의 실감 나는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보는 이에게마저 사랑의 지긋지긋함이 전해지고 미치도록 아픈 가슴이 느껴질 만큼 '진짜'같은 섬세한 연기였다.
당신의 사랑 이야기
모든 연인과 부부의 사랑이 찢어지게 아프진 않다. 동화 같은 이야기도 기분 좋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디와 딘을 보면서 눈물을 쏟아내는 우리들이 너무나 많다. 늙어감이 당연한 것처럼 사랑이 변해감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건 달라지는 사랑의 흐름 앞에 선 우리의 자세다. '영원한 사랑'과 '사랑만으로 사는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두 주인공이 놓친 것을 챙겨 본다.
혹여나 당신의 사랑 이야기가 딘과 신디의 결말을 향해 간다 하더라도 응원한다.
사랑과 사람은 예측할 수 없어 아름다우니, 마음껏 발렌타인을 맞이하자.
초콜릿이 달콤하든 씁쓸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