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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Mar 15. 2023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에요'

하고 고객과 싸웠다


아무튼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직장을 사수 및 팀장과의 관계 불화로 퇴사하게 되었다.

일 자체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어떻게 하면 회사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여러 밤을 지새웠다.


그런 고민 덕분이었을까, 세 번째 직장에서는 회사 사람들과 정말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만난 사수는 대인관계도, 일머리도 뛰어난 배울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 일다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여전히 커뮤니케이션 스킬이었다.

특히, 고객과의 마찰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물러서기보다, 들이받아버리는 성격을 장착한 채,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 사건의 발단


정산 관련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프로젝트였다.

특히 대기업 간의 정산 문제는 정말 골치 아픈 업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건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적힌 어떤 사소한 대금 지급 조건 때문에 (계약 전에는 그게 문제가 될지 서로 몰랐음)

발주처는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주고, 

우리는 물건을 다 팔아 놓고도 못 받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상 대금 지급조건을 변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정산 관련 계약 항목을 수정하는 일은 재무팀에서 굉장히 까다롭게 구는 부분이어서,

나 같은 영업팀 사람들에게는 우리 회사 재무팀 설득하랴, 고객 회사 재무팀 설득하랴 양쪽에서 깨지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당히 두려운 일 중 하나다.


그래도 일단 달려들어 이 사람, 저 사람 붙잡아 가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다.

왕복 4시간 걸리는 고객 사무실을 밥 먹듯 드나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담당자는 자꾸만 앞뒤 상황 다 잘라먹고 '너네 사장 불러와' 식의 노답을 외쳤다.


나는 매월 매출 달성 때문에 그 프로젝트 말고도 관리해야 할 다른 프로젝트들이 많았었는데,

그중에서는 이것보다 더 중요도가 높은 업무들도 더러 있었다.

나름 안간힘을 쓰고있지만 계획대로 잘 풀리지는 않고, 옆에서 달달 볶기만 하는 그 담당자의 전화가 올 때마다 답답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외근을 마치고 오후 5시가 다되어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돌아가서 남은 업무 정리하고 퇴근할 생각으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OO 씨,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2. 나의 행동



"OO님, 일단 저도 최대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 저는 지금 이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제가 언제까지고 이걸 붙잡고 늘어져야겠어요? 

지금 당장 여기로 오세요."


지금 출발해도 도착하면 거기 회사 사람들도 다 퇴근할 저녁 7시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너무 당연한 듯, 별다른 계획도 없이 나를 막 자기 직원 처럼 불러대는 말투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들이받았다.


"OO님, 제가 OO님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나요? 저도 지금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이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뭐라고요? 그게 지금 고객한테 할 소리입니까? 알겠습니다. 앞으로 A 씨는 우리 회사 출입 금지입니다."


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3. 사이다 발언의 결과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래 안 간다 이놈아' 심정이었다.

도저히 이 담당자를 내가 혼자 컨트롤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래서 사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사수는 나를 꾸짖었다. 고객이랑 싸우는 영업사원이 어딨냐면서.


하지만 나는 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담당자는 나를 달달 볶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조적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함께 타협을 해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자꾸만 우리 쪽으로 문제를 떠밀고 탓하기만 했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나의 사수는,


"내가 한 번 (그 담당자랑) 통화해 볼게."


하고서는 며칠 뒤, 신기하게도 정산 문제는 나의 사수 지휘 아래 하나둘씩 해결이 되어 나갔다.

마치 내가 지금껏 아등바등 댔던 시간들이 헛짓거리였나 싶을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사수의 비결이 뭐였을까?





4.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회사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내가 매달려도 안 되는 일이 가끔 있다.

될 것 같으면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은 딱히 없는 상태로 시간은 계속 잡아먹는 일 말이다.

그런 일들은 참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또는 누군가 나타나서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해결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일에 있어서도 맺어지는 특정 타이밍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 '업무 운명론자'가 되었다.

내가 해결 못 하면 누군가는 해결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담당자에게 '나는 한가한 사람 아니니까 귀찮게 굴지 마세요~'라는 식의 표현은 완전 꽝이었지만, 

나도 이 일 더 이상 못 하겠다고 GG 치고 사수에게 던진 건 차라리 더 늦기 전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사수의 비결은 바로 '설득'이었다.

나의 사수는 누구와 얘기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아무리 이리저리 발품 팔아 뛰어 다녀도 사수는 고객이랑 전화 한 통화로 복잡해 보이는 업무를 한 방에 끝내버리는 능력자였다. 그리곤 내가 고객에게 타협받지 못 한 것들을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


이 신비하고도 놀라운 기술은 어쩌면 나는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흉내 낼 수 있게 되겠지만,

내 인생 세 번째 사수에게 가장 많이 배운것은 그런 '설득의 능력' 이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시 다룰 예정.




일단은, 그때로 다시 돌아가 담당자에게 다시 예쁘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모범답안:

OO님, 지금 답답하신 거 압니다. 저도 제 선에서 최대한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어차피 제가 지금 글로 가더라도 담당자님이랑 다른 직원분들 퇴근시간이라 당장 방문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요, 제 팀장(=사수)님께 이 건, 다른 방안으로 조치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상의해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일단 진정시키고 시간을 벌어야 함) 곧 바로 확인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당신의 컴플레인이 우리에게 최우선이다 라는 느낌을 줘야함 그리고 해결책은 사수에게 가이드 받을 것)




+a 마치며


그래서 이후 '사장 불러와' 담당자와의 사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양사가 모여 쫑파티 회식을 하는 자리가 생겼다.

민망하지만 내가 술 먹고 담당자한테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울며 떼썼다. (ㅋㅋㅋㅋㅋㅋ)

그랬더니, 그 사람도 나에게 미안했는지 수고 많았고 미안하다며 우린 화해하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종종 사석에서도 술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 이젠 좋은 친구)


그리고 몇 년 뒤 내가 세 번째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해서 나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고마운 사람으로 남았다.




세상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타짜의 명언을 다시 새기며.




남은 사이다 에피소드 완결까지 2편 to go.






**소개된 모든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a.k.a 잔소리)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을 100%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외 기타 견해, 비슷한 경험담에 대한 공유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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