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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Aug 25.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19

"엄마랑 친구랑 똑같아, 화해하지 않아도 되거든"

회사 대표님은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최팀장, 절대 두 번째 화살을 맞아서는 안돼."


불교 경전에 나오는 얘기다. 첫번째 화살은 누구나 맞을 수 있다. 그건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둘 다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대로된 안목이 생겨서 화살을 잘 피했거나, 아니면 전혀 타격감이 없거나. 어찌되었건 오는 족족 화살에 맞아 뒹굴거리는건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는 짓이란 뜻이다.


일리가 있다. 늘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고다. 하지만 같은 길을 가면서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한번 당한걸 또 당했으니. 첫번째 화살을 경험하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감정적으로 격해져 누군가와 다툼을 일으킨다면, 다음엔 그 사람과 싸우지 않아야 한다. 정확히는 싸움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거다. 싸움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이익을 얻는게 지혜롭다.


물론, 안타깝게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화살을 맞고 있다. 같은 화살에 맞아도 늘 다른 고통을 얻고 있다.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어디에 꽂히는지, 같은 화살인지 다른 화살인지. 판단할 수 없으니 그저 맞고 또 맞는수밖에.


내가 자주 맞는 화살 중 하나는 아이의 투정이다. 분명히 고집부리는건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달래줄 방법을 못찾으니, 매일 같은 화살에 맞고 있는 셈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이의 요구를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를 잘 알텐데, 어리석은 나로서는 매일 같은 소리에 당한다.


며칠 전 아주 사소한 문제로 아이와 싸웠다. 무슨 일에 심통이 났는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귀에 굉장히 거슬렸다. 결국 폭발했다.


"네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지."

"그럼 나도 엄마한테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거야."


자기가 먼저 성질을 부려놓고 내 성질을 탓한다. 분명 시작은 너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예민하고 날카로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한다.


"샤워해야돼. 들어와."


옷을 훌렁 벗겨서 말없이 씻겼다.


"왼쪽으로 돌아"

"오른쪽"

"앞에 봐"

"고개들어"


명령조로 계속 툭툭 말을 내뱉다가, 마지막 마무리 단계가 됐다.


"이제 빙글빙글 돌아."

"풉..."


서로 웃음이 터졌다. 말은 차갑게 던졌지만 군말없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애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둘다 서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 엄마는 진짜 하은이 같아"

"왜?"

"싸우고 화해를 안해도 다시 놀잖아"


재밌는 말이다. 우린 어릴 때부터 싸우면 반드시 화해해야한다고 배운다. 나도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100번 싸워도 사과할 일은 10번이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식으로 화해를 하는 경우는 더 적다. 미안하다, 화해하자. 그런 말 없이도 우리는 숱하게 싸우고 다시 친해진다. 


어릴 적 엄마는 내가 아무리 성질을 내도 항상 밥먹는 시간에는 나를 불렀다. 화났느냐 묻지도 않고, 기운좀 내라 다독여주지도 않았다. 그냥 무심히 밥그릇, 국그릇, 밥숟가락. 그렇게 내 자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 우리사이엔 좀처럼 그런 다정스런 말들이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말없는 말을 읽어냈던 것.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가. 첫번째 화살은 싸움이다, 두번째 화살은 미움이다. 싸워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 그래서 우린 싸워도, 화해하지 않고, 다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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