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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r 19. 2021

3. 새 인생을줄게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3

3. 새 인생을줄게.


나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던 노란 빛깔 유리조각을 팬티 속에 숨긴 채 그녀의 뒤를 따라 복도로 걸어 나왔다. 맨발에 느껴지는 시멘트 바닥보다 내 팬티 안에 감추어진 유리조각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 유리조각은 허리의 팬티 밴드와 내 골반뼈 사이에 걸쳐서 내 온몸에 냉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도 없이 감방 철창문을 열더니 나를 살짝 밀어 놓고 다시 아무 소리 없이 자물쇠를 잠그고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양 팔을 벌리고 잠에 빠져 있는 해자 언니 앞에 서서 감방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내가 나갔다 들어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작은 창문 쪽 구석으로 가서 억지로 몸을 누였다. 처음으로 감방 바닥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허리 아래 춤에 끼어 있는 매서운 유리조각에 몸을 떨었다. 나는 팬티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유리조각 끝에 엄지손가락을 살짝 그어 보았다. 갑자기 엄지손가락이 쓰라려 팬티 속에서 손가락을 뺐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벌써 나의 엄지손가락에 금을 내었다. 기상 종이 울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바랐다. 나는 미에의 노트를 펼쳤다. 미에의 노트에서는 노란 수선화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미에의 노트를 코에 대고 크게 숨을 쉬었다. 피가 흐르는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한쪽이 흘러내린 노트 맨 뒷장에 내가 읽어보지 못한 글이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나보고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왜 일까.’

그녀? 미에가 말하고 있는 그녀는 누구일까? 미에는 왜 자살을 했을까? 나는 미에의 노트를 배에 깔아 놓고서 미에의 일기장에 쓰인 ‘그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창문 밖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감방에 누워 작은 한 숨을 내쉬었다.

‘너에게 새 인생을 줄게.’

나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잠시 망설였다. 나는 두려웠다. 미에의 살인범이 될 것도 두려웠고, 막상 2년 후에 감옥을 나선다고 해도 아무 곳도 갈 곳 없는 내 처지도 무섭도록 두려웠다. 해자 언니가 몸을 뒤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팬티 속에서 유리조각을 꺼내 손바닥 위로 올려놓았다. 유리조각에는 무게가 없었다. 유리조각이 노란색으로 빛을 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유리조각이 내 손바닥 위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유리조각은 가벼웠다. 옆자리에 누워 있는 막내 정인이의 하품 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눈을 감고 노란 유리조각을 왼쪽 손목에 댔다. 유리조각을 슬며시 그어보았다. 따가웠다. 나는 다시 한번 유리조각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한 번 , 한 번 더, 한 번 더. 팔목에서 힘이 빠지면서 양 팔이 차가운 감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에게 새 인생을 줄게.’

문득 나는 그녀에게서 계피 향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 눈이 감기기 시작하면서 회색빛 천장은 서서히 까맣게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 시커먼 물이 감방에 가득 차 나의 숨통을 죄어 오면서 나는 왠지 편안함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나는 새하얀 색으로 꾸며진 병실에 누워 있었다. 왼쪽 팔목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고 창가 쪽에 그녀가 서 있었다. 다행히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형사가 아닌 그녀였다. 그녀의 손에는 미에의 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나?”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주일 정도 후에 독방으로 옮겨질 거다.”


그녀는 내가 누워 있는 매트리스 사이에 미에의 노트와 볼펜을 끼어 넣었다. 그녀가 병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매트리스 사이에서 미에의 노트를 펼쳤다. 맨 뒤 장은 이미 뜯어져 나간 후였다. 나는 중간 부분을 펼쳐 미에의 글씨체로 미에의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미에의 일기는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우울증 환자의 일기 같아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나의 몸 상태를 체크하러 들어오는 간호사나 나에게 식사를 날러다 주는 아주머니가 병실에서 나가면 바로 매트리스 사이에서 미에의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미에의 글씨체로 미에의 일기를 적어 나갔다. 나는 6 일 동안, 세 달분의 50장짜리 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중 20장에는 죽고 싶다는 말을 끼어 넣었다. 우울하다, 살기 싫다, 밤마다 가위에 눌린다, 밤이 무섭다 등의 평범한 말들에 나는 감방의 시퍼런 껌딱지일 뿐이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옴 몸으로 기어 오는 2000마리의 개미떼에 나는 온몸을 박박 긁어대고 문질러 댔다 등의 이상한 문구를 조금씩 써넣었다. 미에의 일기를 만들어 내면서 나도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푹신한 침대에 적응을 못한 내 몸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딱딱한 감방 바닥에 누워 생활하기 전에도 나는 늘 딱딱한 장판에서 잠을 자왔기 때문이었다. 병실에 혼자 있으면 누군가 병실 창문으로 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검은 물체가 눈앞을 쓱 스쳐 지나가기도 해서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나는 안간힘을 써 대며 미에의 일기장에 미에의 길쭉한 글씨체를 채워 넣어 갔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미에의 노트는 6일 후에 거짓말로 꾹꾹 눌러져 있었다. 미에의 일기장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자 나는 미에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다는 죄책감보다는 차라리 후련함을 느꼈다. 내 일기를 읽느라 밤을 새웠는지, 다음 날 내가 퇴원하던 아침에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꼭 그녀가 밤새 술을 퍼 마시며 울기라도 했다는 듯 보이는 눈이었다. 나는 승용차 뒤창 문으로 멀어져 가는 병원의 잔디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이제 막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환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2년 후에 감방에서 나오면 나도 저들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을까. 나는 미에의 미친 일기장을 지어낸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오른쪽 손의 검지의 중지의 손톱 아래에는 검은 볼펜은 똥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침을 묻혀 볼펜 똥을 지워보려고 했다. 볼펜 똥은 점점 번져가면서 손가락을 검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검지와 중지를 입 안에 넣고 이로 긁어 보았다. 운전을 하고 있던 앞자리의 간수가 나를 흘긋 돌아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간수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나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나에게 ‘너는 아주 잘하고 있어’ 하고 칭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를 경기도에 있는 교도소로 데려갔다. 그 낯선 교도소에 도착하자마자 간수 2명이 나의 몸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 머리카락 사이에 면도날을 숨기고 들어오지 않았는지 간수들은 내 머리카락에 빗질까지 해댔다. 독방에 갇혀서는 나는 전처럼 감방 바닥에 누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만 감방의 문을 두드렸다. 간수가 말을 붙여도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서 미에가 들려주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마치 미에가 내 옆에 누워서 나에게 직접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전에 내가 인도 갔다 온 친구 얘기 한 적 있지? 그 친구가 한 번은 인도의 감옥을 본 적이 있다 했어. 그냥 경찰서에 딸려 있던 임시 감옥이었는데, 정말 끔찍한 감옥이었대. 그 친구랑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여자 여행자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야. 그래서 친구가 그 여자애랑 같이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했대. 나중에 그 여자애의 가슴을 주물렀던 인도 남자가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 그 임시 감옥에 갇혀 있는 걸 봤대. 인도 남자는 무릎을 꿇고서 여자애의 발에 손을 갔다 대면서 용서를 빌었다고 했어. 인도에서는 예의를 표할 때 상대방의 다리에 손을 얹는대. 그런데 그 임시 감옥이라는 곳이 얼마나 더러운지, 쥐가 왔다 갔다 거리고 바퀴벌레가 잔뜩 기어 다니더래. 성추행을 당했던 여자애도 그 인도 남자가 불쌍해서 경찰한테 매달려서 저 남자 그만 풀어주라고 했다는 거야. 임시 감옥이 그 정도면 진짜 감옥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 않아?’


나는 미에가 내 옆에 누워있기라도 하듯 옆을 쳐다보았다. 정말 미에가 옆에 있는 것도 같았다.


“정말. 그럼 우리는 호강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아무도 없는 빈자리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중얼거렸다.


‘인도 사람들은 정말 호기심이 많다고 했어. 처음 보자마자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대. 결혼은 했냐, 애는 몇이냐, 직업은 뭐냐, 월급은 얼마나 받냐. 심지어는 너네 엄마는 뭐하며 사냐라고까지 묻는다고, 어떨 때는 정말 피곤하다고, 근데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런 인도인들의 귀찮은 질문이 그리워진다고 했어.’


“정말,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런 관심을 주지 않는데. 근데 그 인도 갔다 왔다던 친구는 지금 뭐해?”


‘걘 지금 인도에 있을 거야. 나하고는 가끔 잠자리를 같이 하는 애였지. 그 애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오면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 남자 앤 섹스를 끝낸 후에 담배를 피워 대면서 인도 얘기를 들려줬지. 웃긴 얘기만 골라서.’


가끔은 간수가 쪽문을 열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미에가 들려주었던 인도 얘기로 꽉 차기 시작했다. 독방에 갇혀 삼일 동안 숨을 죽이고 지낸 후에 나는 그녀의 방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녀의 방문에는 교도소장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어디선가 계피향이 흘러나왔다. 나를 끌고 온 간수가 그녀의 방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자 그녀는 발레 하는 소녀의 오르골의 태엽을 감고서 '줄리엣을 위하여 ‘의 곡에 박자를 맞추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약속대로 너에게 새 인생을 주겠어. 앞으로 2년간 너는 새 인생을 위해 준비를 시작해야 할 거야. 힘들더라도 열심히 나를 따라와 주길 바라.”


그녀가 잠시 말을 끊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네가 도와준 덕에 나는 무사히 교도소장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고맙다. 그리고 미에 일은 나도 참 안타까울 뿐이다. 정말 아까운 소설가가 죽었어.”


나는 잠시 잊으려고 애를 썼던 미에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도록 달리길 좋아했던 미에.


“미에의 소설은......”


“당선은 취소가 되었다고 알고 있어. 여성 주간지 측에서 미에가 재소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곤 취소해 버렸지. 그래서 미에가 자살을 한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미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미에는 죽기 전까지 우리가 함께 살 월세방 얘기를 했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에의 일이라면 그만 잊어도 좋아. 이제 너 자신의 인생 만을 생각해야 해. 미에도 그걸 원하겠지.”


그녀와의 상담을 마친 후부터 나는 그녀가 넣어주는 사식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곤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미에에게 말을 걸어대기 시작했다.


“미에야, 인도 얘기 또 해줘.”


‘왜? 인도 얘기가 좋아?’


“인도 얘기를 들으면 내가 꼭 인도에 있는 거 같거든. 그 혼잡하고 사람 많은 거리에. 감옥이 아니라.”


‘인도에는 공짜가 없대.’


“공짜? 그럼 해자 언니도 인도 사람인가? 그 언니 언제나 공짜가 없다고 말하잖아.”


‘그런가? 하하. 그런가 보다. 인도에는 정말로 공짜가 없대. 전에 내 친구가 레스토랑에 갔었는데,’


“어? 인도에도 레스토랑이 있어? 그럼 레스토랑에서 인도 여자들이 몰래 숨어서 담배 피우고 그러나?”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럼. 인도 여자들도 레스토랑에서 담배 피우고 그런데.’


“그렇구나. 인도 여자들도 참 안됐다. 숨어서 몰래 담배 피우고.”


‘어느 도시에는 해외 유학파 인도 여자들로 꽉 찬 도시가 있는데, 그런 도시에는 인도 여자들이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길거리에 서서 담배를 피워 댄데. 말하자면 한국에서 한복 입은 여자가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거와 같지.’


“와, 그러다가 뺨 맞기 딱이겠다! 하하.”


‘그래서 담배 피우는 한국 여자들이 해외에 나가고 샆어한대. 자유롭게 뿜어대고 싶어서!’


“참, 미에야. 공짜 얘기하다가 말았잖아.”


‘아, 친구가 레스토랑에 갔었는데, 거기에 한국인 단체가 와 있더래. 그중에 어떤 아저씨가 단체 손님한테 뭐 공짜 서비스 없냐고 묻더라는 거야. 인도 웨이터가 알았다면서 아이스크림 10개를 들고 오더라나? 그런데 나중에 계산서에 보니까 아이스크림 10개 얼마하고 찍혀 있더래. 공짜 공짜 하다가 된통 당한 거지, 뭐. 근데 친구가 그러더라. 해외 나가서 공짜 밝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이스라엘 사람들뿐이라고.’


“이스라엘? 거긴 예수님 나라 아닌가? 그럼 착한 사람들 아닌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부정하지. 아주 싫어한대. 그리고 인도에 있는 이스라엘 여행자들은 다 대마초만 피고 도둑질하고 난리래. 이스라엘 사람 하면 인도인들도 치를 떤다더라.’


“와, 되게 신기하다. 인도인들은? 착하대?”


‘음, 그게 좀 애매하대. 어떻게 보면 착한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못된 것도 같고 그렇대. 한마디로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라는 거지.’


그렇게 미에가 들려줬던 인도 얘기를 혼자 중얼거리다가 식판이 감방 문으로 들어오면 미친 듯이 식판에 매달려 밥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숟가락 대신 손으로 밥을 퍼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인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대. 오른손으로만. 왼손으로는 뒤 처리를 하거든.’


“밥 먹는데 더러운 얘기하기 없기. 그런데 미에야? 인도 사람들은 왜 손으로 밥을 먹는데? 숟가락이랑 포크는 어디 두고서?”


‘누가 그러던데, 그건 인도가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숟가락이나 포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는 거지. 어떤 사람은 그냥 그게 종교에서 나온 관습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미에, 너는 정말 아는 것도 많구나?”


‘아니, 전에 알던 그 남자애가 인도에 오래 있다가 왔다고 했잖아? 근데 걔가 말이 많았거든. 늘 인도 얘기를 하려고 안달이 난 사람처럼.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릴까 봐 그랬을까?. 그 애는 인도가 좋댔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서. 우리, 나중에 인도에 가보지 않을래?’


“정말? 난 비행기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데. 무섭지 않을까?”


‘흠, 그럼 먼저 놀이동산에 가서 실험을 해보는 거야.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빙빙 돌아보는 거지. 그럼 네가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너는? 비행기 타본 적 있어?”


‘과에서 제주도로 여행 가면서 딱 한 번. 올 때는 배를 타고 들어 왔거든.’


“안 무서웠어?”


‘응. 신났어. 참, 있잖아. 인도 갔다 왔다던 그 친구가 인도에서 스리랑카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인도 여자가 물 티슈가 담긴 작은 봉지를 뜯더니 입 안에 넣고 털더래. 그 여자도 비행기를 처음 타봐서 물 티슈 봉지에 먹을 게 있다고 생각했었다나 봐. 그 친구도 비행기가 처음이었는데 그 여자를 보고서 용기를 냈다나? 그래서 그 여자가 안전벨트 매는 것도 도와주고 그랬다잖아. 근데 그 친구도 물 티슈 봉지에 먹을 게 들어 있나 잠시 입 안으로 털어 봤다는 거 있지.’


미에의 생각에 빠져 일주일 동안 밥을 먹어댄 나는 다시 그녀의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그렇게 밥을 먹어댔는데도 나의 몸은 점점 야위어만 갔다. 나는 앙상해진 내 팔목을 보면서 괜한 만족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평생 말라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50킬로 안쪽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공동욕실 문 안쪽에 놓여 있는 체중계에 올라섰을 때, 나의 몸무게는 44킬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교도소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목소리보다 계피향이 먼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주부터 강습이 시작될 거야. 너는 가능한 모든 강습에 출석을 해야만 해. 현재 내가 들여온 강습은 스무 가지도 넘어. 너는 그 강습에 출석하면서 동시에 대학 졸업 자격시험도 치러야만 해. 고등학교는 일 등급으로 졸업을 했더군.”


그녀는 멍한 눈에 입술을 살짝 벌리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내 말 알아듣나? 내 말을 들은 거야?”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를 끌어 소파에 앉혔다. 나는 그녀의 계피향이 코에 와 닿는 걸 느꼈다. 그 친숙한 향에 내 마음은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가족은 아무도 없는 건가?”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친척은? 친구도?”

“아무도 없어요.


“고아원을 나온 거 같은데.”


“고아원에서도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나왔어요.”


“학교 친구들은?”


“학교 졸업하고 나서 연락하면서 지낸 친구도 없어요.”


“가족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이를테면 결혼 같은 거 말이야.”


불현듯 그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검정 가죽지갑을 펼치더니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녀는 사진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직선으로 굵은 흉터가 선명한 내 왼쪽 팔목에 커다란 등산용 시계를 채워 주었다.


“내가 너에게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신부수업이라고 생각하면서 강습에 참여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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