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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r 18. 2021

2.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2

2.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우렁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7호실 감방의 그녀들은 창가 앞에서 서성대며 살포시 커튼을 젖혔다. 그녀들은 모두 맨발이었지만 푹신한 양탄자가 그녀들의 발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이제들 오나 봐.’


그녀들의 가늘고 창백한 손에는 하얀 손수건 한 장들이 꼭 쥐어져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은 꼭 그 손수건만큼 핏기가 없이 하얗기만 했다.


‘오늘 밤, 우리 잘 해낼 수 있겠지?’


팡파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무릎까지 오는 보라색 반바지에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 재소자들이 마차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남자 재소자들은 한 손에 빨간 쇼핑백을 들고서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빨간 카펫을 밞으며 중앙 홀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들이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으로 올라설 때마다 사진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인기 배우였다가 원정도박으로 감옥으로 들어선 남자 재소자는 방송국 기자에 의해 그가 신고 있는 번쩍이는 은빛 구두가 잠시 멈춰 서기도 했다. 교도소 담 너머로는 일반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중 티켓을 쥐고 있는 사람은 절반도 못되었다. 운이 좋았다면 티켓은 남녀 재소자들을 모델로 만든 마론 인형 치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오늘의 쇼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재소자들을 모델로 만든 100달러의 마론 인형들은 반나절 만에 동이 났고 소문에 의하면 현재 티켓 한 장은 오성 호텔의 스위트 룸 값에 호가한다는 것이었다. 교도소 담 바깥쪽에서는 벌써 소동이 일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티켓에는 이미 좌석 번호가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켓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티켓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한 손에 구입한 마론 인형을 들고서 어떻게 하면 문지기를 구슬려서 몰래 들어갈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면서 밀쳐지지 않으려고 두 발에 힘을 주고 땅에 붙어 서려고 했다.


“자, 우리도 이제 중앙 홀로 나가야지?”


7호실 감방의 수지가 감방장답게 가장 먼저 창가에서 몸을 떼었다. 수지를 포함한 5명의 그녀들도 미리 준비해 둔 초록색 쇼핑백을 하나 씩 손에 들었다. 감방 문 옆에 차곡차곡 놓인 유리 구두를 신은 그녀들은 심호흡을 한 번씩 하고 감방을 나섰다. 복도에는 7호실 감방의 그녀들처럼 노란색 원피스 죄수복에 유리 구두를 또각 거리는 그녀들로 북적거렸다. 평소에는 오른쪽 왼쪽으로 얌전히 오고 가던 그녀들도 오늘만큼은 허둥지둥 대는 모습이었다. 7호실 감방의 그녀들은 수지를 선두로 해서 손에 손을 뒤로 맞잡고 서로를 챙기면서 중앙 홀로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중앙 홀로 통하는 문이 철커덕 열리자 중앙 홀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불빛에 모두들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중앙 홀은 고요했다.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문 앞쪽에 서 있던 수지가 먼저 문 밖을 나섰다. 남자 재소자들은 중앙 홀에 비치된 각 호실이 적힌 끈 밑의 소파에 앉아 각자 들고 있던 노트를 읽고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수지의 또각거리는 유리구두 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노트에서 고개를 들고 모든 남자 재소자들이 수지를 바라보았다. 수지의 뒤를 따라 7호실 감방 그녀들과 다른 감방의 그녀들이 줄을 지어 중앙 홀로 걸어 나왔다. 중앙 홀은 곧 또각대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수지는 중앙 홀 천장에 달린 끈에 매달려 있는 7호실이라는 푯말을 확인하고는 7호실 감방의 다섯 명의 그녀들과 함께 7호실 남자 재소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라라 양? 글씨체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셨군요.’

‘별말씀을. 조니 군도 생각 외로 세련된 외모를 가지셨네요.’


7호실 여감방의 감방 장 라라와 7호실 남 감방의 감방장 조니는 서로의 농담이 맘에 든 눈치였다.


‘그런데 라라 양의 죄목은 뭐였나요?’

‘좀 실례되는 질문 같이 느껴지는군요.’

‘불쾌하셨나요? 아, 제가 저지른 죄목을 먼저 말씀드려야 했었군요. 저는 은행을 털다가 들어왔습니다만.’

‘호호, 조니 군, 생각 외로 대담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어느 은행이었나요?’

‘작은 어촌 마을의 은행이었소.’

‘저보다는 통이 작으시군요. 저는 대형은행을 털다가 잡혔답니다. 우리는 자그마치 20 명의 은행원들과 50 명의 일반인들에게 총구를 겨누었지요. 그리고 명령을 내리니 순순히 우리말에 따르면서 벌벌 기더군요.’


조니는 조금 놀랐다는 듯 주먹 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해댔다.


‘그래도 저는 단독 범행이었습니다만. 제 덕에 홀로 은행을 지키고 있던 아가씨는 훈장까지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서 어찌나 대견스럽던지요.’

‘그건 좀 칭찬해 드릴만 하군요. 저는 다섯 명의 가면을 쓴 아가씨들과 은행에서 총격전을 벌렸답니다.’


그들은 서로의 죄목 또한 맘에 드는 눈치였다.


‘조니 군, 일단 오늘 밤 쇼에 대해 최종 점검을 해야겠는데요? 저희에겐 고작 30분의 시간밖에 없다는 걸 잊으신 것 같군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먼저 의상을 살펴볼까요?’


그들은 쇼핑백에서 인도풍의 의상을 꺼내 서로서로 몸에 대 보았다. 모두 힌디어 반에 들어가 1년간 힌디어를 익힌 그들이 오늘 밤 펼칠 쇼는 유명한 인도 영화 중 나오는 뮤직 비디오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감방 장인 라라와 조니가 주인공 역인 빠로와 데브다스,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빠로의 엄마, 데브다스의 엄마, 데브다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할머니, 데브다스를 사모하는 창녀, 데브다스에게 술을 먹이는 친구 등과 백댄서들로 배역이 정해져 있었다. 여주인공인 빠로 역을 맡은 라라의 의상인 인도 전통 여인의 복장인 사리에는 금박 은박이 박혀 빛을 내고 있었고 남자 주인공인 데브다스 역을 맡은 조니의 의상은 인도 남자들이 결혼식 등의 예식에 갖춰 입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자주색 셔츠에 역시 자주색 바지였다. 조니의 의상뿐 아니라 다른 7호실의 그녀들과 그들의 의상은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의상을 쇼핑백으로 집어넣고서 오늘의 쇼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인도 영화 상에는 키스신이 없지만, 우리는 3초 동안의 키스 신을 집어넣었으면 하는데요, 라라 양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라라는 쇼핑백 속에서 꺼낸 깃털이 달린 분홍색 부채로 얼굴을 가리더니 조니의 의견에 그대로 묵살했다.


‘인도 영화에서는 키스신이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빠로의 엄마가 데브다스의 엄마에게 소리치는 장면에 눈물을 조금 흘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빠로의 엄마 역을 맡은 남자 재소자는 수지의 의견을 찬성했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 성을 바꿔서 연기를 하는 사람은 네 사람이 되는군요. 빠로의 엄마와 데브다스의 술친구, 데브다스의 창녀 그리고 데브다스의 할머니. 이렇게 되나요?’

‘그렇지요. 라라 양. 그나저나 오늘이 교도소의 마지막 날이 되겠군요. 라라 양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사실 생각입니까?’

‘조니 군, 정말 궁금하신 게 많으시군요. 일단 오늘의 쇼에 대해 궁리부터 하시지요.’

‘라라 양을 이렇게 직접 보니, 제가 그만 생각이 많아졌나 봅니다. 자, 어쨌든, 우리 모두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해 보도록 합시다.’


중앙 홀에 모여 있는 그녀들과 그들은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남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흩어졌다. 그녀들과 그들의 사이에 기다란 핑크빛 커튼이 쳐지면서 그녀들과 그들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각 팀의 의상을 제작한 미싱 부원이 의상 입기를 도와주며 머리스타일이나 액세서리를 챙겨 주었다. 다시 커튼이 젖혀지면서 그녀와 그녀들은 팀별로 모여 의상을 점검했다.


‘흠, 데브다스의 할머니가 이렇게 가슴이 큰가요? 할머니치곤 너무 불룩하군요.’


라라는 데브다스의 할머니로 분장한 남자 재소자의 가슴이 너무 커서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데브다스의 술친구 얼굴이 너무 창백하군요. 볼을 조금 벌겋게 만들어야겠소.’


조니는 데브다스의 술친구 역을 맡은 여자 재소자의 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의 의견에 따라 남녀 미싱 부원들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 미싱 부원은 데브다스의 할머니 분장을 한 남자 재소자의 가슴에 걸친 브래지어에서 솜뭉치를 조금 뜯어내었고, 여자 미싱 부원은 데브다스의 술친구 역을 할 여자 재소자의 얼굴에 볼 터치를 넣기 시작했다. 라라와 조니의 팀은 일곱 번째로 쇼에 출현할 계획이었다. 곧 첫 번째 팀을 무대로 불려 나갔고 두 번째 팀은 무대 뒤로 대기하러 나갔다. 나머지 팀들은 중앙 홀에 앉아서 자신의 팀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는 중앙 홀 밖으로 나가면 펼쳐지는 허브 밭 옆에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첫 번째 팀은 마술쇼를 펼치고 있었다. 새로운 마술을 부릴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교도소 밖에는 좌석을 얻지 못한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100명이 넘는 경찰들이 교도소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했다. 무대를 향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앞사람의 뒤통수가 무대를 가린다며 불평해댔고 옆 사람이 입 안에서 사탕 깨지는 소리도 못 견뎌했다. 잠시 쇼가 끝나면 아이들은 엄마 품에서 달아나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어떤 사람들은 향수병에 담은 독한 위스키를 마셔대고 있기까지 했다.


‘너무 소란스럽군요. 일반인들이란,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요?’

‘맞는 말입니다. 라라 양. 하지만 우리도 예전에는 일반이 아니었겠소?’

‘그렇지요. 사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해요. 저도 일반인이었을 때는 재소자들을 벌레 취급하기도 했답니다. 얼마나 철이 없고 시간만 허비하고 살았는지.’

‘우리도 곧 그들의 굴레로 들어가 살게 되겠지요. 난 가끔 이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도 좋겠다 생각하오.’

‘조니군의 말처럼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죠. 다시 사회 속에서 일반인들과 아등바등 살 생각을 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돼요. 답답해서요.’

‘맞습니다. 정말 답답한 세상이지요. 휴.’


조니는 손에 들고 있던 터번을 머리에 두르기 시작했다. 라라는 주황색의 긴 천이 조니의 머리 위로 똬리 져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라라 양. 쇼가 끝난 후에 벌어질 무도회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라라는 대답 대신 조니의 터번을 손으로 마구 흩트려 뜨으렷다. 똬리가 풀어지면서 조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때 7번 팀을 무대 뒤로 부르는 방송이 들려왔다. 조니는 재빨리 터번을 두르고 라라의 손을 잡고 무대가 있는 허브 밭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들 뒤에 7번 팀의 그녀들과 그들도 뛰어서 무대로 향했다. 6번 팀의 인어공주 쇼가 끝이 나고 수지와 조니 팀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첫 씬은 데브다스가 빠로에게 팔찌를 걸어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씬이었다. 첫 호흡이었지만 라라와 조니는 정말 사랑하는 연인 사이처럼 달콤한 연기를 보이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라라와 조니의 힌디어에 조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힌디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곧 라라와 조니의 연기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조니가 라라의 팔목에 팔찌를 끼워주자 관객들이 입에서 작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빠로역을 맡은 라라가 남자이고 데브다스 역을 맡은 조니가 여자가 아닐까 추리하면서 그들을 몸매를 샅샅이 살펴보며 무대 후 퀴즈에 대비하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데브다스의 엄마가 나와서 빠로의 엄마의 청혼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빠로의 엄마는 빠로를 다른 남자에게 급히 시집을 보내고 만다. 빠로와 결혼하지 못한 데브다스는 술친구와 함께 술을 퍼마시다가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빠로의 대문 앞에 쓰러져 있지만 데브다스에게 뛰어가는 빠로의 코 앞에서 높다란 철제 대문이 턱 닫히고 만다.

빠로 역을 맡은 라라가 엉엉 울면서 철제 대문 대신 걸려 있는 검은 천을 두드리고 울고 있을 때, 교도소의 담을 타 넘고 몰려드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반인들은 담 위에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허브 밭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100명의 경찰력도 이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수지와 조니 팀의 그녀들과 그들은 잠시 어리둥절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도 멍하니 허브 밭 뒤 쪽 담에서 기어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이 하찮게 밞아 죽이는 바퀴벌레 떼들 같이 보였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꼬물꼬물 움직이며 담을 타 넘어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자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담을 기어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나가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있던 팝콘 부스러기를 던져대기도 했고 어떤 사람을 깨물고 있던 사과 알을 던졌다. 곧 양편의 사람들은 팸플릿 속에 돌멩이를 넣어 던져대기 시작했고 술 냄새가 풍기는 향수병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조니는 라라의 손을 이끌고 무대 뒤쪽을 통해 중앙 홀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라라는 7번 팀의 그녀들과 그들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대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8번 팀의 그녀들과 그들이 7번 팀을 쫓아 달려왔다. 7번 팀과 8번 팀의 그녀들과 그들이 중앙 홀로 들어서자 중앙 홀 문쪽을 지키고 서 있던 다른 그녀들과 그들이 힘을 합쳐 육중한 쇠문을 닫기 시작했다. 쇠문에 걸쇠를 건 후 그녀들과 그들은 각각 흩어져서 창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밖에서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해도 방탄유리로 끼워진 창문은 쉽사리 깨질 리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했다. 그녀들과 그들은 중앙 홀에 모여들어 신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중앙 홀은 곧 음악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녀들과 그들은 춤을 추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라라와 조니도 서로 손을 맞잡고 그녀들과 그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들과 그들의 의상으로 중앙 홀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서는 일반인들이 창문을 부수어보려고 의자로 창문을 쳐대고 있었고 서로 창문을 쳐보겠다고 싸움이 일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방음처리가 되어 있는 중앙 홀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싸움을 들을 수조차 없다. 그녀들과 그들은 그저 중앙 홀을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라라 양. 정말 즐거운 무도회지 않소?’

‘그렇군요. 감옥에 정말 무도회가 열렸군요.’”


감옥에 정말 무도회가 열리다니. 나는 미에의 소설 중 감옥에 무도회가 열린 부분은 감옥에서 나온 후 어느 중고 서점에서 팔던 여성 주간지에서 읽어 볼 수 있었다. 미에는 여성 주간지에서 주관하는 신인상에 당선이 되었고 신인상에 응모할 원고를 완성하기 전까지 거의 부교도 소장 방을 들락날락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한 달간 내가 미에를 마주 볼 수 있었던 시간은 잠을 잘 때뿐이었다. 부교도 소장은 문예반까지 접고서 미에의 소설에 매달렸다. 밤 아홉 시가 되어 미에가 감방 안으로 들어서면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미에의 손을 잡아끌곤 했다.


“소설 다 썼어? 언제 끝나는데?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어?”

“응, 오늘 내가 감옥에 무도회를 드디어 만들었어. 근데 너무 피곤하다.”


미에는 내 옆자리에 눕자마자 바로 등을 돌려 버렸다. 나는 미에의 등을 쳐다보면서 괜히 서운한 마음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담요에 찍어댔다.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나거든. 그럼 내가 너랑 매일 놀아줄게. 그 전처럼.”


나는 미에의 등에 치면서 정말? 정말? 하고 물었다. 하지만 미에는 벌써 잠에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미에의 등에 차갑게 얼어버린 코를 대고서 잠에 들었다. 미에는 부교도 소장의 방에 있는 컴퓨터에 자신의 소설을 옮겨 적고 있다고도 했다. 나는 이제 미에의 소설을 미에의 글씨체로 깨끗이 정리해 줄 필요도 없었다. 결국 감옥에 무도회가 열리는 부분부터 나는 미에의 소설을 읽지도 못한 셈이었다. 미에가 부교도 소장의 방에서 소설 작업을 할 때면 나는 다시 감방 바닥에 누워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미에는 밥도 부교도 소장 방에서 먹었다. 미에는 교도작업에도 빠졌고 한 달 동안 소설을 쓰느라 그런지 살이 부쩍 빠진 모습이었다. 미에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설 때면 오르골은 줄리엣을 위하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야 너를 먹여 살려 주지. 외롭더라도 한 달만 기다려.”


미에는 부교도 소장의 방으로 들어갈 때면 시무룩해져 있는 나의 볼을 툭툭 치며 나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미에는 정말 신인상에 당선이 되었다. 상금은 천만 원이었고 미에는 그 상금으로 월세방을 잡아 놓겠다고도 했다. 미에는 다시 나와 함께 화장실 바닥을 닦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가끔 부교도 소장이 미에를 방으로 불렀지만, 미에는 그녀의 방에서 십 분 이상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미에는 복도에서 서성대고 있는 나의 팔짱을 끼고는 재빠르게 감방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여성 주간지에서는 미에가 복역 중인지는 모르고 있다고 했다. 미에는 아직 상금을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한 달 정도 후에 상금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에와 나는 화장실 바닥을 솔로 문질러대면서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면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일단 작은 월세방을 하나 얻어서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너는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도 뭐 너랑 일하면서 글을 쓰면 되지. 누가 아니? 내가 아주 유명한 소설가가 될 줄? 그럼 너 시집까지만 딱 보내줄게.”


그때 나는 공동욕실 뒤쪽에 열려 있던 창가에서 누군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언뜻 본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너 내 얘기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나는 다시 미에와 살게 될 월세방을 떠올렸다.


“미에야. 넌 복학 안 할 거야?”

“글쎄, 복학은 좀 더 생각해 보구. 일단 돈을 벌어야지.”

“너, 나 버리기 없기!”


나는 미에에게 새끼손가락을 슬쩍 내밀었다. 미에도 새끼손가락을 내 새끼손가락에 걸어 주었다.


“야, 너희들. 일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공동욕실 밖에서 간수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우리의 몸은 자동으로 구부려졌고 우리의 손이 재빠르게 솔질을 시작했다.


“야, 너!”


간수가 나를 가리켰다.


“너 이층으로 올라가! 이층 화장실 청소하던 애가 병원으로 실려 갔어. 너 이층으로 올라가서 청소해.”


나는 미에에게 살짝 눈짓을 주고는 솔을 들고 공동욕실에서 빠져나왔다. 이층에 있는 공동욕실은 아래층의 공동욕실보다 컸다. 화장실만 해도 15칸이나 되었다. 나는 욕실 바닥에 솔질을 해대면서 앞으로 미에와 함께 살 월세방을 상상해 보았다. 공동화장실을 써도 좋아, 부엌이 없으면 어때? 현관 옆에서 밥을 해 먹으면 그만이지, 미에는 월세방 근처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고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물품들을 정리하면 되겠지. 나는 15칸의 화장실에 물을 뿌리고 솔질을 해대면서 어서 빨리 공동욕실 청소를 끝내고 미에와 수다를 떨러 갔으면 했다. 미에는 지금쯤 네 번쩨 화장실에서 솔질을 하고 있을까? 내가 열 번째 화장실 바닥에 물을 뿌려대고 있을 때 갑자기 경보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공동욕실의 입구로 가 복도 쪽으로 고개만 살짝 빼보았다. 재소자들이 복도를 뛰면서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간수 한 명이 나에게 소리를 치고는 반대편 복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세면대 위에 벗어둔 운동화도 신지 못한 채 간수의 뒤를 따라 복도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마당에 모여서 웅성 웅성대고 있었다. 나는 미에를 찾아보았지만 그 많은 재소자들 중에서 미에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자! 다들 각자 감방으로 움직여!”


간수의 명령에 우리들은 각자의 감방으로 몸을 움직였다.

철커덕. 철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 안을 매우면서 경보음 소리에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감방 안으로 해자 언니가 뛰어 들어서자마자 철창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간수가 자물쇠를 걸었다.


“미에가 아직 안 들어왔어요. 소설 쓰는 애 있잖아요. 미에요.”


나는 두 손으로 철창을 잡고 흔들어 대며 소리를 질렀다. 교도소 안에 경보음이 울리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불이 났다거나 사건이 터졌을 때뿐이었다. 간수는 자물쇠를 걸고서 복도를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소설가 년은 어디로 간 거야?”


해자 언니는 씹고 있던 껌을 늘어뜨리면서 무심히 말했다.


“아까 그년, 너랑 같이 공동욕실 청소하지 않았어?”

“같이 청소하다가 나는 이층 공동욕실 청소하러 올라갔어. 이층 청소하는 애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실려 갔대서.”

“그럼 미에 년 혼자서 탈출한 거 아냐? 그러고도 남을 년이지, 그 년은. 의리 없는 년. 매일 부교도 소장 방에 붙어서는.”


그날 밤, 미에는 감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작은 창문에 기대어 서서 희미한 별빛을 바라보다가 철창 앞에서 서성이다가 바닥에 누웠다가 하며 밤을 새웠다. 미에가 정말 탈출이라도 한 것일까. 미에는 나랑 같아 살기로 했었는데, 나 보다 6개월 먼저 나가서 방도 구하고 돈도 모은다고 했었는데. 나는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서 미에의 글씨로 쓰여진 소설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때 누군가 철창을 손톱으로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교도 소장이었다. 그녀는 검지를 들어 입술을 누르고서 소리 없이 자물쇠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보고 따라오라는 신호로 다시 검지를 들어 나를 가리키더니 다음번엔 복도 쪽을 가리켰다. 나는 미에의 노트를 들고서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다. 그녀가 다시 자물쇠를 채우고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굽 있는 군화를 신은 그녀는 맨발로 걸어가는 나처럼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뒤 굽을 바라보면서 살그머니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서도 불을 켜지 않았다. 서쪽으로 크게 난 창문 사이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1분쯤 말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서랍을 열더니 하얀 양초를 꺼내 성냥불을 붙였다. 그녀의 오르골 속의 발레소녀가 촛불 속에서 노랗게 빛을 냈다.


“일단 좀 앉아.”


나는 그녀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철제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러다가 다시 허리를 펴고서 꼿꼿하게 몸을 세워 앉아 책상 위에 군화 발을 올려두고 몸을 의자에 맡겨 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감긴 그녀의 눈이 떠지더니 그녀의 입에서 한 숨이 세어 나왔다.


“미에가 갔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미에는 정말 해자 언니의 말처럼 혼자서 감옥을 탈출했다는 것일까.


“미에가 자살을 했다.”


그녀가 성냥불을 긋자 무표정한 그녀의 표정이 슬쩍 비쳤다.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그녀가 푸른 담배 연기를 달빛을 향해 뿜어대기 시작했다.


“미에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너는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불렀다.”


그녀의 담배가 반쯤 태워지고 있었을 때 나는 이로 깨물고 있던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미에가 왜 죽었다는 거죠? 그럴 리가 없어요. 미에는 나랑 같이......”


나는 울음이 터지려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잠시 흐느꼈다. 그 사이 미에의 노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에가 자살을 할 이유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자살을 하면 내가 했지 미에가 자살을 할 이유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미에의 노트를 집어 들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방 안에는 노트가 펼쳐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오르골을 쳐다보았다. 발레 하는 소녀는 정지 자세로 팔을 들어 올리고 서 있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너도 알지 못하는 그런 이유가 말이야.”

“혹시, 누군가……. 미에를 죽인 건 아닐까요? 살해당한 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미에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너인가?”

“저는 그때 미에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2층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갔고......”

“그렇다면 너도 형사의 심문을 피할 수는 없을 거다.”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미에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건 나고, 만약 내가 미에를 죽였다고 의심을 사게 된다면……. 나는 미에의 죽음보다 나의 미래에 덜컥 겁이 나가 시작했다. 나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부교도 소장은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어 버리더니 내 옆으로 와서 섰다. 나는 아직 꺼지지 못한 재떨이 속의 담배꽁초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부교도 소장이 떨리는 내 손을 잠시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네가 미에를 죽인 건가?”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미에를 정말 좋아했어요. 우린 감방에서 나가면 같이 살기로 약속까지 했단 말이에요.”

부교도 소장은 갑자기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같이 살기로 했었다고?”


 나는 허둥지둥 터져 나오는 소리를 멈추었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말인가?”

“저희는 그저……. 친구사이였을 뿐이에요. 전 여자를 사랑하거나 하진 않아요.”


부교도 소장은 다심 새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불을 그었다.


“네가 여자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들만 있는 감방 안에서는 특히,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인 거지.”

“저는 미에를 죽이지 않았어요.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어요.”

“그런 고백은 내일 아침 형사한테나 하면 되겠군.”


나의 몸은 형사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턱을 잡고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에게 새 인생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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