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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r 17. 2021

1. 841번 버스와 교도소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1

1. 841번 버스와 교도소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고백에 나는 어떤 말투를 써야만 할까.


그녀 같은 딱딱한 어조를 쓴다면 건방져 보일 것만 같다. 그렇다고 나의 남편처럼 그녀 앞에서 어리광 피우는 목소리를 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에 냈던 그 말투 그대로를 내며 고백해 보기로 해야겠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여름이 막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되려고 했던, 에어컨이 이미 꺼져버린 시내버스 841번에서였다. 반쯤 열려 있던 창문으로 풋풋한 가을 해와 가을바람이 스며들던 그 버스 안에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세로로 죽 쳐진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졸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나한테는 꽤 적합했던 날씨였다. 작업에 들어서는 나조차도 하품이 나오려는 입을 손으로 잠시 막고서 서있어야만 했다. 그처럼 버스 안의 공기는 수면제 한 알을 삼킨 머릿속처럼 몽롱하게 흐르고 있었다. 여름이라고 하기엔 조금 바람이 상쾌했고 가을이라고 하기엔 햇볕이 덥게 느껴지던 때. 말 그대로 추석 느낌을 주는 날씨였다. 그때가 되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새 옷이 필요했다. 반팔 티셔츠를 입자니 간혹 가다 뽀드득 닭살이 돋아났고 긴 팔 티셔츠를 걸치 자니 겨드랑이가 축축해지면서 코 밑에서 땀이 새 나왔다. 나는 새 옷을 갖고 싶다 라기보다는 간절히 필요하다는 이유로 억지로라도 작업에 다가 정당성을 붙여 보았다. 버스의 출입구 바로 뒤의 널찍하고 위치가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여자의 뒷모습에 보이던 구제 칠 부 면 티와 구제 청바지 정도가 하나 필요하겠다, 생각하면서 밀려오는 하품을 참으려 입술을 오므려 대고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계피 향에 혀에 침이 고였다. 사실 나에게 당장 급했던 것은 주인 여자의 손바닥에 내놓을 한 달 치의 방세였다. 하지만 달달한 감과 먹기보다 보기 좋은 송편이 생각나는 그런 날씨에는 방세 보다 급한 것이 새 옷일 때도 있다. 나는 백화점을 돌고 돌아도 고르지 못한, 내 맘속에서 ‘바로 저 옷’이라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던 대학생 같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곤, 그리고 역시 대학생 같이 보이는 내 앞의 여자애의, 내 방의 네 달치도 넘어 보이는 명품 가방에 살살 손가락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 순간 그 대학생 코 밑의 옆에, 옆에 앉아 있던 그녀가 생각 없이 돌린 고개 짓에 나의 눈과 그녀의 눈이 살짝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바로 명품 가방 속에 들어가 있던 나의 검지로 까지 와 닿았다. 그때, 어쩌면 그녀는 나를 모른 체해주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녀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나의 손가락질을 관뒀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필 나의 손가락에 그 새하얀 얼굴의 대학생의 가죽 지갑이 만져졌다. 내가 그 검정 가죽 지갑을 반쯤 빼냈을 때, 그녀는 내 오른 손목에 철컥 수갑을 채우더니 수갑이 채워진 내 오른 손목을 끌어 그녀의 허벅지 위로 놓고 반대편 수갑에 자신의 왼쪽 손목을 걸었다. 단 2초간에 아주 날렵하게 이루어진 일이라 아무도 그녀의 수갑을 보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녀의 긴 팔을 뻗는 것만으로 나를 그렇게 낚아챘다. 그녀는 그저 한쪽 엉덩이만을 살짝 들었을 뿐이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대학생은 나의 몸에 뒤로 밀려서 잠시 쫑알거리더니 곧 반대편에 난 자리에 재빠르게 가 앉았다. 나는 그녀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보다 그녀가 뒷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더욱 놀랐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했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녀는 내 상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내 손목을 그녀의 손목에 매달고는 수갑을 보이지 않게 내 오른 손목을 끌면서 경찰서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를 경찰서로 던져 넣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때 나는 경찰의 심문을 받으며 그녀를 조금 원망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구제 옷이 그렇게 잘 어울렸던 그녀의 모습을 잠시 원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매치기 전과 2 범이라는 명찰을 달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내가 밋밋한 하늘색 옷을 입고서 끌려간 그 교도소의 과장으로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부교도소장으로 약간의 존경을 담아서 불리는) 나를 맞아 주었다. 그녀는 그때 푸른 제복을 입고 서있었는데, 구제 옷을 입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구제 옷을 사 입기 위해 감옥에 들어온 것처럼 그녀는 어쩌면 구제 옷을 사 입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목적은 비슷했다 생각했다. 나보다 조금 진한 청색의 제복을 입은 그녀에게 짧은 신고식을 마치고 나와 나는 나와 비슷한 정도의 죄목으로 끌려 들어온 다섯 명의 여자들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하루 3시간의 교도작업으로 잠시 야외에 서 보는 것 이외에는 조막만 한 바닥 방에서 밥 먹고 자는 일이 다였다. 다행히 한 감방에 들어가 있던 우리 여섯 명은 나이대가 거의 비슷했다. 우리는 막 20대에 들어선, 밖에서는 꿈과 가능성을 가졌다는 딱 그 나이였다. 들어오자마자 남자 친구의 면회로 우리의 아우성을 산, 전과 5범에, 나와는 2살 차가 나는 해자 언니, 명품 전문 털이 대학생인, 나와 나이가 같았던 전과 2범 미에, 18살 때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서 나와 거리를 헤매던, 나와 정말 비슷한 처지에 있던, 나 보다 한 살 어렸던 전과 3범 수녕이, 겁도 없이 빈 집에 담 넘어 들어갔다가 마당에서 바로 잡힌, 수녕 이와 동갑내기인 초범 미수 그리고 우리 감방의 막내인, 20 살에 겁도 없이 회사 돈을 횡령해서 잡혀온 초자 정인이. 감방 밖으로 나가면 고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그래도 마음에 맞는 식구들을 얻은 셈이었다. 가끔 해자 언니의 입에서 삐쳐 나오는 거친 말투에 막내 정인이가 들고일어나기도 했지만 그저 고만고만한 일과 같이 느껴졌다. 그 둘 사이에 오고 가는 입방아 질은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귀만 잠시 막으면 끝날 말싸움에 불과했다. 방장인 해자 언니의 입은 걸걸했지만 남자 친구가 넣어준 돈으로 근사한 한 턱을 쏠 줄 도 알았고 그러면 막내 정인이도 해자 언니 옆에 철썩 붙어 아부를 떨어댔다. 그럭저럭 순탄한 감방 생활이었다. 어쩌면 그때가 나의 두 번째 감방 생활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루 3시간 동안 밭을 일구는 교도 작업에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들은 거의 차가운 감방에 누워 수다를 떨곤 했다. 우리는 거의 바닥에 누워서 시간을 때웠다. 한 여름에도 얼어버린 호수 위에서 자는 것처럼 차갑게만 느껴지던 감방 바닥은 무서운 교도소장의 닦달에도 우리의 눈을 쉽게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감방 바닥에 눌어붙어 칙칙해진 껌 딱지처럼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 등을 붙이고 웬 종일 눈을 감고 지냈다. 수다를 떨 때도 우리의 눈은 쉽게 떠지지가 않았다.


“오늘은 창 밖으로 눈이 한가득 쌓였다. 올해 첫눈이지?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면서 몸을 녹여보는 건 어떨까. 자. 다 같이. 함께. 한 마음으로.”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어떻게 하면 공훈을 새길까 하면서 고민하는 교도소장이 국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교도소를 비우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늘 해오던 꽹과리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기상 방송을 접고서 가끔 우리에게 이렇게 몰래 방송을 했다. 그녀의 말투에 우리의 눈꺼풀이 꾸물꾸물 움직거렸다. 그녀의 방송은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서 투명 유리 벽 안에 갇혀 있는 70년대 디제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날이면 약간 리듬을 탄 그녀의 목소리 후에 이어지는 80년대 팝송이 잠시 교도소를 사로잡기도 했다. 차가운 감방 안에 상상할 수도 없이 따뜻한 난로라도 들어온 느낌 같았다. 어쩌다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은 차가운 교도소 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을 작은 창문으로 돌리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우리 중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틀어주던 80년대의 팝송에는 우리의 가슴을 잠시 달궈주는 성냥팔이 소녀의 난로 같은 무언가가 함께 흘렀다. 우리는 정말 난로라도 쬔 듯 잠시 나른함을 느꼈다. 기상시간마다 우리를 깨우며 들볶는 교도소장이 잠시 사라졌다는 안도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도 같았다. 그녀는 그녀의 직분 답지 않게 재소자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다. 모두들 그녀를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의 진짜 계급은 과장이었지만 모두들 그녀를 좀 더 높은 직급으로, 사실 현실에는 있지도 않는 부교도소장이라고 부르는 것만 해도 그랬다. 그렇다고 그녀가 우리 재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끼리만 있는 감방 안에서 그녀라면 인기가 있을 법도 했지만 역시 그녀는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동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우리들을 감시하고 지도하는 교도소의 교도과장이었고 우리는 재소자들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평소에는 별로 소리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교도소장이 자리를 비우는 날에만 들려오는 소리였을 뿐, 그 소리도 교도소장이 다시 교도소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사라지고 만다. 그 소리가 사라지면 그녀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우리는 그녀의 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교도소장의 눈치를 보며 우리 자신의 소리조차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리가 우리에게 난로 같은 안도감과 느긋함 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정말 성냥팔이 소녀의 난로처럼 잠시 환영처럼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감방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얘기 거리가 떨어지면 가끔 우리들은 냉기가 흐르는 지루한 교도소 바닥에 드러눕고서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왔다가는 그녀의 소리보다 늘 우리의 지진 어깨에 맴돌고 있는 교도소장의 고함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우리가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는 날도 그녀의 소리가 잠시 왔다가는 그 날 뿐이었다.


“오늘은 식판에 개미 한 마리가 서성댔다. 겨우 김치 쪼가리와 계란 프라이를 탐하는 개미 새끼가 무던히도 가련한 시간이었다. 아! 개미! 너는 나를 닮았다.”


문예 창작가를 다니다 상습적으로 명품을 훔치다 전과 2범이 된 미에가 그럴싸하게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면 우리들은 박수를 쳐 대면서 개미, 개미 하며 깔깔 웃어댔다.


“니가 개미처럼 될 라면 한 달은 굶어야겠다. 이년아.”


늘 핀잔을 입에 달고 사는 해자 언니였지만 그 날의 핀잔은 짧게 그치고 언니도 우리를 따라 슬쩍 웃어 주었다.


“근데 나는 말이야. 부교도소장을 그년이라고 해야 할지 그놈이라고 해야 할지 좀 헤 깔리거든.”


여자만 보면 년 자를 붙이던 해자 언니도 부교도 소장에게는 년 자를 붙이기 어려워했다. 그녀의 말투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가 언제나 미에가 흉내 내듯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침 조회에 몰래 디제이로 끼어드는 날이면 그냥 그녀의 말투에는 잠시 소설 속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건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것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인물. 그녀가 그랬다. 구제를 벗어야만 하는 교도소 안에서 그녀는, 카우보이들이 신는 그런 굽이 있고 모래바람에 쓸려온 것 같은 뽀얀 군화에 인디언 풍의 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허리띠 양쪽 편으로 은빛 권총이 빛을 내고 있었다. 상담 시간에 우리가 그녀의 사무실에 라도 들어가면, 그녀는 늘 굽이 있는 군화를 책상 오른쪽에 겹쳐 올려 두고는 소설책을 탐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문 밖에서부터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있다. 그녀의 군화 발 옆에서 발레 하는 소녀가 양 손을 위로 모아들고서 왼쪽 다리를 곧게 피고 서 있는 상자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녀는 늘 그 발레 소녀의 오르골을 켜 두고 있었다. 오르골에서 나오는 음악이 ‘줄리엣을 위하여’라는 것을 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문제를 일으켜 그녀 앞에 직접 불려 간 재소자들에게 오르골에서 흐르는 ‘줄리엣을 위하여’를 배경으로 깔고서 직접 소설을 읽어주었다. 그게 다였다. 그녀는 교도 소장처럼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무뚝뚝한 말투였다. 첫눈에 감격했던 디제이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평소의 말투로 우리에게 딱딱하게 소리 내어 소설을 읽었다. 그 딱딱한 말소리는 계속되다가 오르골의 음악 소리가 멈추는 즉시 사라진다. 그리고 태엽 감는 소리에 이어 흘러나오는 ‘줄리엣을 위하여’의 반주에 맞춰 그녀는 다시 소설을 읊어 댄다. 그녀는 한국 여성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어 주었다. 그녀의 방에 다녀온 재소자들에게는 늘 같은 계피 향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우리 교도소에 무려 10가지가 넘는 강습을 들여온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의례적으로 우리가 피아노 강습까지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감방에 앉아 있으면 그녀의 사무실 근처에서부터 피아노 소리가 통통 울려 퍼졌다. 내 코는 피아노 소리를 듣자마자 계피 향을 찾아 킁킁댔다. 바이엘 상권에서부터 바흐까지 우리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 준 강사도 재소자 중 하나였다. 그녀가 들여다 놓은 강습의 강사들은 모두 재소자들이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누구도 열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피아노 소리가 잠시 우리의 시선을 다시 감방 안의 작은 창문으로 옮겨다 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우리는 피아노 소리가 멎으면, 다른 기술을 배워도 쓸 데가 없다는데, 피아노 따위는 배워서 뭐할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교도소장도 그녀가 들여다 놓은 강습을 은근히 비웃으면서 조회 시간이 되면 우리들에게 미싱 질이나 배워도 밖에 나가서 일자리를 얻을까 말까 라면서 기대도 하지 않는 우리의 가슴에 암울함만 끼얹곤 했다. 그런 교도소장에 대항이라도 하고 싶었던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있던 취미 시간에 그녀가 강사로 있는 문예반을 신청하게 되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가운 감방 바닥에 누워 있으면 시간도 너무 더딘 것 같았다.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녀의 문예반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문예반에 든 재소자들에게 늘 들풀 같은 소재로 엮은 소설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천하의 고아가 여교사로 재탄생한다든지, 무료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가정주부가 벌이는 일탈이라든지. 그리고 우리도 들풀처럼 일어설 기회가 생길 것 같이, 언젠가는 그럴 날이 올 수 있을 거라는 어떤 꿈이 조금씩 마음속에서 싹을 트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싹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그저 상상 속의 꿈이었다. 어쩌면 교도소장에 대한 반항심이었 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교도소장처럼 막 피어난 싹을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프게 그녀의 굽 높은 군화를 비벼 대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를 곧잘 흉내 내던 미에도 교도소장의 비웃음에 미싱 반에서 우리 문예반으로 옮겨 들어오게 되었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다가 잠시 휴학을 하고 교도소로 들어온 미에는 우리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미에의 소설에서는 우리의 시퍼런 죄수복이 살짝 입을 벌린 튤립 모양의 소매가 달린 노란색 원피스로 변형됐다. 빨간 머리 앤이 꿈꿨던 소매에 퍼플이 들어간 노란 원피스를 입은 재소자들은 감방 속 푹신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대화 속에 감탄사를 연발해 대고, 재소자들의 가래침을 뱉기 전 거친 욕지거리는 마주 붙은 손바닥 안에 눌려 영원히 꺼져 버렸다.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는 콕콕 찍어대는 이곳의 말투 란 그곳엔 없다. 그건 아름다운 죄수복이 탄생시킨 아름다운 마음씨였을 지도 모른다. 미에의 소설 속에서, 재소자들은 미친년, 도둑년, 개 같은 년에서 어느덧 ‘그녀’로 승격되어 있었다.


“철창 앞에 늘어진 오렌지 빛 커튼 사이로 아침 해가 감방 안을 살포시 비춰주면 그녀들은 조금만 더 자고 싶다고 잠시 어리광을 피우기도 한다. 그녀들은 살짝 기지개를 피고는 일어나 방짝들에게 간지럼도 피어 가며 좋은 아침을 함께 맞은 서로서로의 졸린 눈을 깨운다. 눈 꽃송이 같은 하얀 잠옷을 공동욕실 입구에 걸어 두고는 예쁘게 다리를 오므리고 나란히 수도꼭지 앞에 앉아 새침데기 마냥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꺾고 늘어진 긴 머리카락을 샴푸에 살살 문질러 거품을 내는 그녀들은 다소곳한 아침 수다로 하루를 연다.

‘나, 꿈속에서 무지개를 봤어.’

‘음, 일곱 빛깔 무지개? 아님 외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 아주 선명했어.’

‘그럼 행운을 준다 던데. 너한테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

샴푸 거품이 하나 둘 오르면서 공동욕실은 뽀글뽀글 빙빙 돌아간다. 그녀들은 거품 조명 속에서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털고는 샤워를 시작한다. 만약 공동욕실에 커다란 나무 목욕통만 있었더라면 꼭 아씨들이 목욕하는 장면 같을 것 같다. 재스민 향 샴푸로 감은 긴 머리카락들이 다 말랐을 즈음이면 감방에는 향기로운 홍차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녀들은 홍차 잔을 접시 위에 얹어 예쁘게 꼬아진 무릎 앞에 두고는 사과 향 물 담배 파이프에 숯불을 붙이고서 사색에 잠긴다. 물 담배가 서서히 타 들어갈 때면, 버터에 살짝 녹은 토스트 두 쪽과 스페인 식으로 요리된 오믈렛의 향이 식당을 누비고 그녀들은 피다 만 물 담배의 파이프를 내려놓고 타고 있는 벌건 숯을 숯 통에 넣은 후, 장미꽃 수가 놓아진 턱받이를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노란 죄수 복의 목선으로 살짝 꽃아 넣는다.

‘어머, 오늘은 계란 프라이에 파가 잠깐 들어갔다 나왔나 봐! 짭조름한 것이 내 가슴을 콕콕 찔러.’

‘오늘은 스파니쉬 오믈렛이 살짝 짜. 요리사가 눈물이라도 찔끔 흘렸나 봐.’

호호대는 웃음소리로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이어지는 수다와 함께 사과 향 물 담배 연기가 흘러나오고 그러면 그녀들은 슬슬 일어나 허브 밭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그녀들의 노란 원피스 죄수 복을 더럽히지 않게 해 줄 퍼렇도록 하얀 앞치마를 걸치는 것을 빼놓을 수는 없다. 허브를 키우고 허브 잎을 말리는 것이 그녀들의 고귀한 재소 작업이다. 푸른 허브 잎들 사이에 노란 원피스 죄수 복을 입은 그녀들에게서 빛이 난다. 그녀들이 키우는 허브는 교도소 근방에 있는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약초로 쓰이고 있다. 허브 밭으로 나가면 허브 밭 너머 과수원에서 이제 곧 끝이 날 복숭아 열매들을 따고 있는 남자 재소자들도 잠시 눈으로 흘겨볼 수도 있다. 그녀들은 우아하고 그들은 정중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들리는 야유 소리나 휘파람 소리는 없다. 대신 새들의 지저귐과 나비들의 날개 짓이 들려올 뿐이다. 새들이 울어 댈 때면 그녀들과 그들은 우는 새를 살피느라 잠시, 아주 짧게, 하지만 강렬하게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노란 나비 떼들이 줄지어 날아간다면 그녀들과 그들은 나비 떼들에게 길을 비켜주려 조금 비켜서면서 잠시 서로의 몸짓을 눈 속으로 넣기도 한다. 조금 설레기도 하는 아침 재소 작업이 끝이 나면 그녀들은 아쉬움을 느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각자 취미활동에 빠지고 다음에 이어지는 점심 뷔페의 메뉴를 점쳐본다. 오늘 점심은 일식이 나올까? 점심 뷔페는 어쩔 때는 중국식 같은 아시아 음식, 어쩔 때는 파스타 같은 서양식으로 구성되고 몸매를 생각하는 그녀들을 위해 모든 식단은 칼로리가 정확하게 계산되어 짜인다. 늘 메뉴가 바뀌어 예측불허의 점심식사 후에는 각자 고른 수강 교실로 향하고, 수강 교실 후에는 2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요가와 메디테이션에 참가해야만 한다. 밤이 되면 목이 기다란 유리잔에 보라 빛 와인을 담아 축배를 들며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들의 감방에서는 술, 담배가 허용되지만. 그깟 기호품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 거리는 하나도 없다. 그만큼 그녀들은 충분히 우아하고 세련됐다.”


미에의 소설 얘기를 들으면서 내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꺾였다. 나는 어디선가 떠다니는 노란 수선화 향기를 맡은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연거푸 다섯 번이나 이어진 재채기를 끝낸 미에가 다시 소설을 읊조리기 시작하려고 하자 잠시 떠났던 수선화 향이 취미반의 딱딱한 의자에 살포시 와 닿기 시작했다. 그 수선화 향은 부교도소장에세서 나는 계피향을 짓눌렀다. 나는 눈을 감고 미에의 소설을 듣고 더 싶어 졌다. 하지만 비릿한 된장국이 김치 냄새와 섞여서 섞은 내를 진동시키며 막 퍼져 오르려던 수선화 향을 누른 동시에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감으려던 눈을 다시 뜨고는 힘없이 공동식당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바퀴벌레가 들락거리는 공동식당 안에서는 매스꺼운 냄새가 진동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오늘 점심도 보나 마나 된장국에 김치 그리고 나물 하나가 나올 것이 뻔했다. 섞어가는 냄새에 입맛은 이미 떨어져 버렸지만, 식사시간을 놓치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시래기만 몇 가닥 들어간 된장국에 억지로 밥을 말아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우리가 지금 이 쓰레기 된장국을 공짜로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구. 왜 이런 애들 있잖아. 공짜로 밥 먹고 공짜로 잠재워준다고 일부러 일을 벌여 감옥에 들어오겠다는 애들. 세상에 공짜가 있어? 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는 지금 밥 먹고 잠자고 하는 거야.”


언제나 왼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둔 채 밥을 먹는 해자 언니는 밥을 먹을 때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해대면서 끊임없이 밥풀을 날려댔다. 해자 언니는 반찬 하나 남기는 법 없이 아주 깨끗이 먹어 치웠다. 자기가 날린 내 식판 위의 밥풀까지 아까워서 먹고 싶다는 기세였다.


“여기, 이런 것들도 사실 먹어줘야 하는 거야. 아깝잖아. 그동안 낸 세금이 얼만데.”


해자 언니가 손바닥으로 쳐내서 버린 바퀴벌레의 더듬이가 아직도 떨리고 있을 때 미에는 그 바퀴벌레를 하얀 운동화로 짝짝 찍어대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가 무슨 세금을 내? 평생 취직 한 번 안 해봤대 놓고선.”


막내 정인이가 살짝 쫑알거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해자 옳거니 하면서 다시 공짜 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꼭 직장에 다녀야 세금을 내니? 그러니까 니가 평생 코딱지만 한 회사에서 경리 보면서 공금횡령이나 해대는 거지. 이 년아, 니가 껌 하나를 사봐라. 거기에 세금이 안 붙나, 붙지.”


“아, 언니는. 매일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듣는 사람 생각도 좀 해 줘. 세금 생각만 하지 말고. 그리고 이년아 저년아도 좀 빼면 안 돼? 진짜 듣기 싫어 죽겠어. 어떻게 이년이랑 세금이랑 같은 입에서 나오냐?”


이쯤 되면 미에와 나는 반 정도 먹다 만 식판을 들고 식당을 빠져나온다.


“이년들아, 지금까지 낸 세금이 아깝지도 않냐? 하여간 저년들은 사람 말을 엿으로 듣지. 다 공짜라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남기게 된다니까. 야. 이년들아!”


우리는 해자 언니의 욕을 뒤로하고서 식판을 식판대에 놓아두고서 양치질을 하러 공동욕실로 향했다. 다행히 공동욕실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나는 맵도록 싸한 하얀색 럭키치약을 미에의 칫솔 위로 짜주면서 남들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를 냈다.


“그녀들은 어떤 향의 치약으로 이를 닦아?”

“왜? 왜 그렇게 소곤거려?”

“그냥, 재밌잖아.”


나는 내 칫솔 위로 치약을 짜 내면서 손 등으로 슬쩍 콧물을 닦아내며 큭큭 웃었다. 미에는 칫솔을 입 안으로 가져가서 이를 박박 닦아대면서 말했다.


“음, 글쎄...... 세상에는 어떤 향의 치약이 존재하지?”

“세상에는...... 맞아. 딸기향이라는 게 있잖아? 애들용 치약.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나도 미에와 보조를 맞춰서 이를 박박 닦아대기 시작했다.


“맞다. 전에 우리 동기 중에, 아니 여기 말고 대학 동기. 인도로 여행 갔다 온 애가 있었거든. 걔가 그러더라. 인도 사람들은 님나무 가지로 이빨을 막 긁어댄다고. 님이 치약을 만드는 성분이 들어갔다가나. 님향? 님도 향기가 날까?”

“님? 인도 사람들도 이빨을 닦는구나.”

“이빨이라니. 사람의 이빨은 이, 동물의 이빨이 이빨이래.”

“너 근데 이 그렇게 이빨을 빡빡 닦아?”

“너도 빡빡 닦으면서.”

“난 그냥 너 따라한 건데. 근데 그녀들의 이 닦는 소리는 어떨까? 삭삭삭삭? 슥슥슥슥? 근데 그녀들은 인간이긴 한 거야?”


미에는 내 말에 입 안의 치약 거품을 세면기로 뿜어대면서 웃어대기 시작했다.


“나도 생각해 봤는데, 그녀들이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잘 모르겠어. 그녀들이 한국인이 아닌 것은 분명해. 그렇다고 그녀들이 미국인이라는 말은 아냐. 그냥 그녀들은 선이 없어. 뚜렷한 선이 없다는 거지. 우리처럼 이렇게 대한민국 무슨 시 무슨 감옥에 잡혀서 미치도록 탈출하고만 싶어 한다 뭐 그런 명확한 선이 없다는 거지.”

“그녀들은 좋겠다. 그냥 소설 같은 일일 뿐이겠지?”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독일 어디 감방은 밥도 해 먹고 재밌게 살고 있다더라. 나중에 감방에서 나갈 때 눈물의 포옹을 나누고 뭐 그런다는 기사를 보긴 했어.”

“너 그거 아니? 니 소설 때문에 이 감옥 생활이 더 지긋지긋해진다는 거. 나 니 소설 속으로 좀 데려가 주라. 응? 미에야.”


나는 물에 씻은 칫솔을 미에의 얼굴을 향해 탈탈 털어대면서 웃었다. 미에도 재빨리 칫솔을 물로 씻더니 물이 뚝뚝 떨어지는 칫솔을 들고 내 꽁무니를 쫓았다. 막 공동욕실로 들어서는 다른 재소자들 사이를, 우리는 칫솔을 휘두르며 잠시 뛰어다녔다.


‘니 머릿속에는 장난꾸러기 고양이가 숨어 살고 있나 봐. 그 고양이도 너처럼 흐리멍덩한 죄수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을까?’


미에는 귀엽다는 듯 내 볼에 칫솔 끝을 조금 아프게 찌르더니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미에의 소설을 모르는 다른 재소자들은 나의 행동을 전혀 귀엽게 보지 않았다. 건조한 칫솔을 들고서 수도꼭지를 차지하기 위해 뛰듯이 욕실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우리와 몸이 부딪히는 재소자는 우리의 몸을 밀쳐 내기도 했다. 우리는 재소자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칫솔을 높게 들고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감옥은 100대 1이라는 경쟁률로 치열한 가을을 장식한다. 이 감옥의 합격자 명단을 발표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왔구나들 하게 된다. 1년형을 받은 재소자들이나 1년의 형을 남긴 재소자들이 경쟁하며 들어올 수 있는 이 감옥은 각각 남녀 120명씩, 즉 한 감방에 6명씩, 남녀 통틀어 고작 40개의 감방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참한 교도 생활로 선발되는, 2400명의 치열한 경쟁으로 선발된 남녀 재소자 240명은, 감옥에 들어오자마자 내년 가을에 열릴 무도회의 의상 담당을 위한 미싱반을 따로 구상하는 인터뷰로 설레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미싱반은 남녀 각각 12명으로 감방도 미싱반에서 각각 6명씩 감방을 따로 써야만 한다. 10개월간 그들은 미싱반에서 강의를 받고서 그 후에 남은 2개월간은 각 감방에서 요구하는 무도회 복을 그녀들과 혹은 그들과 상의하면서 미싱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제작한 의상이 최고의 의상상에 뽑히게 되면 그 의상을 만든 미싱 부원은 최고의 디자인팀으로 구성된 의류 계에 첫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미싱부에 들려고 하는 재소자들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감옥에서 선발하는 기준은 공평하기로도 유명하다. 선발기준에는 나이나 학벌 그리고 외모 같은 것들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너무 시시한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12개 고등학교 전교 꼴찌로 구성된 12명의 심사위원들은 재소자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열성 만을 갖고서 미싱 부원을 뽑는다. 손가락이 길다거나 하얗거나 그런 것도 상관없다. 재능 따위도 필요 없다. 이 감옥을 설계한, 고아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갖고 있는, 아무도 얼굴은 모르지만 긴 다리의 그림자를 가졌다는 후원자는 재능보다는 기회가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선발된 미싱부 12명을 제외하고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취미활동에 의해서 분산된 감방 안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이 감방을 졸업하면서 무언가 재능 한 가지 씩을 손에 쥐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감방 안에는 요리 반에서부터 컴퓨터 반까지 다양한 강습들이 있었고 왠지 재소자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을 것만 같은 힌디어 회화 반이나 발레 반까지 두루 갖추어져 있다. 그 외에 허브차로 배우는 다도와 전 호박 할머니에게 배우는 표정관리, 60대의 나이에 30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화제를 낳은 주부에게 배우는 피부 관리 비법, 인도인 요가 선생과 함께 하는 몸매 관리는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어 처음 이 감옥에 들어설 때와 나설 때에 외모가 많이 바뀌면서 재소자들이 점점 자신에 차서 사회로 나가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외모상으로만 따져본다면 살 빼기 전, 살 뺀 후 혹은 화장하기 전, 화장한 후의 ‘비퍼-애프터’ 현상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최고의 강사진들로 구성된 스킬 강의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학문이나 업종의 중간중간의 과제와 최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사회로 나갈 수가 있다. 만약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시 본래의 감옥으로 들어가 나머지 형기를 채워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지금까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죄수들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3개의 이층 침대가 놓여 있는 각 감방은 핑크색 벽과 붉은 양탄자가 깔린 바닥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돈다. 그리고 각 침대 옆 양쪽으로 스탠드가 끼어 있는 작은 갈색 책상이 놓여 있어 왠지 학구적인 향까지 가미된 것도 같다.”


갑자기 취미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에 나는 눈을 떴다. 노란 수선화 향도 어디론가 떠나버린 후였다. 노란 수선화 향 대신 계피향이 흐르기 시작했다. 부교도소장은 아무런 말없이 취미 반의 문을 열고 바쁜 걸음으로 나갔고 곧 계피향도 그녀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노트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갈 때 미에는 내 팔짱을 끼면서 살짝 중얼거렸다.


“몇 살일 거 같아?”

“누구 말이야?”

“부교도소장. 몇 살일 거 같아?”

“글쎄......”


교도 작업을 하면서 미에는 턱을 괴고 앉아 딴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감독하던 교도관이 미에에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등짝이라도 후릴 양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 기세였지만, 그 소리 없는 금속음을 자동적으로 캐치한 미에의 손이 자동적으로 호미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고 미에의 입은 홀로 중얼댔다.


“나보다는 당연히 늙었겠지?”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서 확실한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빠져있었다. 미소라도 질 때면 눈가에 미세한 주름들이 살짝 나타나곤 하지만, 그건 유전적으로 타고난, 청소년기 때부터 있었던 주름 같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20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나의 첫인상에 그녀가 그렇게 어리게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단지 우리는 그녀가 40대인지 50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전에 있던 교도소에서 부교도소장과 5년을 지냈다던 해자 언니 말에 의하면 그녀는 그 5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같은 헤어스타일만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축구선수처럼 부스스하게 날리는, 살짝 귀밑을 덮을 듯 말 듯한 머리 모양에, 어디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늘 구제바지에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가죽 가방을 메었다. 늘 계피 향수를 뿌리고는 신발은 군화를 닮은 목이 긴 스니커즈만 신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가볍고 경쾌하다.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가볍게. 그건 그녀가 군화를 신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녀는 소리가 없는지도 몰랐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그녀가 소리도 없이 우리 등 뒤로 다가와 우리를 엿보거나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늘 소리 없이 다가와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며 소리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녀에게서 흐르는 계피 향수로 우리는 그녀가 왔다 갔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했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그녀의 나이는 그녀의 직급에서였을 뿐이다. 부교도소장으로까지 올라섰다면 그녀는 아마 50대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고 우리는 그런 짐작 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에는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소설을 쓰느라 매일 밤 차가운 감방에 누워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후배에게 긴급 수배한 플래시로 노트를 비추면서 볼펜을 손에 쥐고 끼적거렸다. 나는 미에 옆에 누워서 미에의 공책을 슬쩍 눈을 가져다 대고 읽으면서 간혹 가다 갑작스러운 평을 내려주기도 했다. 미에가 잠시 감방 바닥에 등을 대고 쉬고 있으면 나는 미에에게 인도 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인도 사람들은 YES라는 말 대신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어 댄대. 그건 분명히 ‘응’이라고 말하는 건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NO'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야. 우리도 아니라고 표현할 때 고개를 옆으로 절레절레 흔들어 대잖아. 그게 정말 웃기대. 인도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다가 자기 목도 인도 사람들처럼 저절로 흔들리게 되었다나? 아, 너도 인도 춤 알지? 목뼈가 없는 것처럼 흔들어 대는 춤. 바로 그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목을 흔들면서 ‘YES'라고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거야.’


미에가 다시 소설 쓰기에 몰입하면 나는 얇으면서 길쭉한 미에의 글씨체를 그대로 따다 소설 비슷한 것을 써보기도 했다. 미에의 글씨체는 글씨가 각각 따로 노는 듯하면서도 정갈해 보이고, 들쭉날쭉하면서도 귀여웠다. 나는 미에에게 가나다라를 써달라고 부탁해서 따로 내 공책에 써달라고 하고서 글씨 연습에 들어갔다. 시간이 나면 미에는 창작에 매달리고 나는 미에 글씨체 베끼기에 매달렸다. 내가 어느 정도 미에의 글씨체를 따라 쓰게 되었을 때, 미에의 중편소설도 완성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미에의 부탁으로 미에가 소설을 늘려갈 때면 미에의 글씨체를 흉내 내어 새로운 노트에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대로 베껴 내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수정도 해주고 평가까지 내려주게끔 되었다. 미에는 내 글씨체가 더 깔끔하다며 이제는 자기가 내 글씨체를 따라 해야겠다고 했다. 사실 미에의 글씨체와 내가 미에의 글씨체를 흉내 낸 내 글씨체는 거의 비슷하게 보였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내 글씨가 미에의 글씨보다 좀 더 깔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미에의 길쭉한 글씨체를 조금 짧게 만들어서 썼기 때문이었다. 미에는 나와 함께 화장실 바닥을 솔로 문질러 대면서 문예반에서 부교도소장이 자신의 소설에 어떤 평가를 내릴지 무척 긴장된다고 했다. 미에는 오른손에는 솔을 들고 화장실 바닥을 박박 닦아대면서, 왼 손에는 내가 정리해 준 자신의 소설이 적힌 노트를 들고서 읽는 연습을 했다. 영화에서 보면 작가들이 서점에서 자신의 소설을 청중들에 읽어주는 그런 기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녀들은 내일 밤 개최될 감옥 무도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무도회에는 특별한 손님들도 초대되었다. 작년 무도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제5회 감옥여와 감옥남이 그들이다. 어쩌면 이 감옥은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감옥 무도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같았다. 매년 가을, 이 감옥으로 들어오는 재소자들은 이 감옥에 들어서자마자 무도회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감옥의 재소자들, 즉 ‘그녀들과 그들’은 무도회 3개월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무도회를 위한 쇼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팀은 남녀 방들이 1개씩 섞여서 이루어지는데 남녀 감방 사이에는 1킬로미터에 걸친 허브 밭이 펼쳐져 있으므로 그녀와 그들은 직접 마주대고서 쇼를 연습할 수는 없다. 그 대신 그들은 전서구를 이용한다. 서로의 감방으로 발가락에 편지를 단 회색 비둘기들을 날려 편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간단한 편지는 전서구를 이용하고 좀 더 세밀한 계획이 적힌 편지들은 감옥 안의 특별한 부서인 우편 부를 통하여 전달된다. 우편배달부를 맡고 편지를 전달해 주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은 부교도소장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은 듯 보이는 부교도소장이 편지를 전달받고서 각 감방으로 전해주는 임무를 맡는다. 의상은 각 감방 별로 준비해야 했기에 그들은 두 달 전부터 이 파티를 위해 손수 무도회 복의 기본 콘셉트를 궁리하고 있었다. 각 감방의 인원들 여섯 명은 파티 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제를 하나씩 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꼭 남장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 신데렐라를 주제로 정했다면, 신데렐라와, 요술 할머니, 새엄마와 새 언니들 그리고 왕자가 있어야 하는데, 왕자로 변신을 할 사람이, 즉 남장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남자 교도소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여장을 하고 오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남장과 여장을 한 몇몇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진짜 성별을 확실하게 알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흥미 거리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번 파티는 큰 화제를 만들었고 급기야 생방송으로 진행되기로 되어 있었다. 내일 밤, 생방송 중에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함께 시청자들의 즉석 투표로 스타가 될 열두 명의 재소자들도 탄생될 터였다. 즉 감방 별로 경합을 벌여 남 녀 각각 한 감방이 선택을 받는 것이다. 스타가 될 열두 명의 재소자들은 후에 영화배우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져서 현재 그들은 모두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 하면서 감방 별로 모여서 비밀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심사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의상과 연기 그리고 인터뷰에 있다.”


노트를 들고 선 미에와 시멘트로 덮여진 긴 세면대에 걸터앉아 긴 솔 자루에 목을 누르고 있던 나는 계피향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팔짱을 껴 가슴께를 가리고 선 부교도소장이 입술 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미에는 노트를 바지 뒤춤 속에 넣었고 나는 세면대에서 풀짝 뛰어서 괜히 솔질을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리고 신발 끄는 소리도 없이 공동욕실 입구에서 사라졌다. 내 가슴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솔질을 시작했다. 공동욕실 안이 울리기 시작했다.


“혹시 귀신 아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겠잖어.”


나는 미에에게 살짝 속삭였다. 미에도 솔에다 비누거품을 묻히더니 공동욕실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우리 이거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 우리끼리 있어야 재미나잖아. 내 소설이.”


나는 미에가 나를 미에의 소설 작업에 참가시켜 주는 것이 너무 신이 났다. 첫 번째 감옥에서는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감방 안으로 들어서는 것조차 끔찍했다. 나는 늘 한 평 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지내며 발조차 맘대로 뻗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미에라는 감방 친구가 생긴 것이다.


“미에야. 고마워.”

“뭐가? 뭐가 고마운데?”

“그냥, 너 때문에 재밌어. 사는 게.”


미에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있을 때 나는 너무 쑥스러워서 그저 솔질만 해댔다. 미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고마워. 우리 나가면 같이 지낼까?”

“뭐? 넌 대학생이잖아?”

“대학생이 뭐 별거니. 너도 나도 여기서 나가면 갈 데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넌 대학에 가면 친구도 많을 거 아냐?”

“아니, 나 친구 없어. 가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난 돈도 없는데?”

“나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같이 살아?”

“일단 나가서 보는 거지, 뭐! 너 2년 남았지? 그럼 내가 먼저 나가서 방이랑 돈이랑 준비해 보지, 뭐.”


우리는 화장실 문을 하나씩 열어재끼고서 코에 손을 쥐었다. 우리는 각자 한 칸의 화장실로 들어가 재빠르게 솔질을 하기 시작했다. 옆 칸에서 미에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약속했다?”


나도 얼른 코맹맹이 소리로 답했다.


“배신하기 없기.”

“너도.”


우리는 10개도 넘는 화장실 한 칸씩을 재빠르게 솔질하고 물을 뿌려댔다. 비누거품들이 하수구 쪽으로 졸졸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공동욕실 바닥에 물을 뿌려댔다. 그리고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물을 뿌렸다.


“그런데, 감옥에 무도회가 열려?”


내 목소리가 물소리에 묻힐까 봐 나는 미에에게 소리를 질렀다. 미에의 큰 목소리가 화장실 옆 칸에서 흘러나왔다.


“응,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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