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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r 24. 2021

4. 신부 수업에 출석하다

감옥에 문도회가 열렸다 4

4. 신부 수업에 출석하다

매주 월, 수, 금의 아침 7시에서 8시까지 나는 인도인 요가 선생과 10여 명의 여자 재소자들과 함께 요가를 했다. 그리고 아침 9시가 되기 전까지는 독방에 누워 눈을 감고서 명상을 했다. 매주 화, 목, 토의 아침 7시에서 9시까지는 재봉틀 반에 들어갔다. 재봉틀 반의 강사는 우리 재소자들 중 한 명이라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재봉틀 소리를 내면서 온 감옥의 재소자들을 깨우곤 했다. 아침 9시에 나는 독방에서 혼자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매주 월, 수, 금의 10시부터 12시까지는 한식 요리 강습에 참가했고 매주 화, 목, 토의 10시부터 12시까지 제과제빵 과정에 참가했다. 요리 강습이 없는 날에는 독방에 앉아 교도소에서 배급하는 점심 식판을 들었지만, 요리 강습이 있는 주중에는 강습 시간에 만든 요리를 싸 들고 독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 후 1시부터는 대졸자가 되기 위한 시험공부에 홀로 매달렸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토플 강좌가 있었다. 6시가 되면 감방으로 날라져 오는 저녁 식판을 받았고 그 후 전기 불이 꺼지는 밤 10시까지 요리 이론 공부와 대졸자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너무 지루해지면 다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왼쪽 손목에 걸려 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 미에에게 말을 걸었다.


‘인도 사람들 중에는 우리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도 있대. 우리처럼 동양인의 얼굴을 가진 인도 사람들. 그 사람들은 거의 높은 산골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래. 그래서 내 친구도 가끔 혹시 인도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는 거야. 그 친구가 그랬어. 그건 만약 우리가 터키에 가면 혹시 카자흐스탄 사람이냐는 질문은 받는 거 같은 거.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우리처럼 생겼다나 봐. 난 인도 사람 하면 무조건 다 중동 사람 비슷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인도에는 그만큼 다양한 것들로 꽉 차 있다고 했어.’


“그 사람들 이쁘게 생겼대? 우리 보다?”


‘아니, 그냥 별론가 봐. 거의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 피부가 까맣고 기미가 잔뜩 끼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는 인도 사람이냐고 물으면 무조건 화가 났다고 했어. 인도 사람들은 동양인처럼 생긴 인도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한다고 해. 그래서 가끔 친구는 그게 화가 난대. 그래서 인도 사람들에게 그럼 너는 파키스탄 사람이냐? 하고 소리를 백 지르기도 한대. 인도랑 파키스탄은 원수지간이거든.’


미에가 해 주었던 인도 얘기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그녀가 건네주었던 사진을 노트 사이에서 꺼내서 한 참 바라보곤 했다. 깜깜한 독방 안에서 달빛에 의지하면서. 그 사진 속에는 20 대 중반의 남자가 입술만 살짝 올린 채 얌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회색 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 짧게 친 갈색 머리카락.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버터 향이 풍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동이 터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썼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요리 강습 후에 남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계피향이 도는 그녀의 방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문을 열어주고서 소파를 가리킨다. 이제 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그녀가 들려줄 줄리엣을 위하여와 콜라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먹었지?”

“오늘은 팔보채라는 걸 만들었어요.”

“맛있었나?”

“글쎄요, 처음 먹어 봐서 그냥 그런 것도 같고요.”

“나도 팔보채는 딱 한 번 먹어 봤지. 그저 그렇더군.”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담배 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익 타오르는 성냥불로 그녀의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 그녀의 익숙한 손짓이 타다만 성냥개비를 재떨이로 정확하게 날리는 동시 내 눈도 재떨이로 떨어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에 걸린 널찍한 시계 줄을 풀었다 끼었다 했다.


“사진 속의 남자는 맘에 드나?”


담배를 깊숙이 빨고 있는 그녀의 복이 움푹 파였다. 한 덩어리의 먹구름 같은 연기를 창가 쪽으로 쏟아부은 그녀는 군화를 신은 다리를 책상 위에 포개어 세웠다.


“그냥.”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영국 공군에 입대해 있어.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7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한국말이 조금 서툴긴 해도, 정말 맘이 착한 아이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콜라를 마셨다. 톡 쏘는 김이 내 숨통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 같았다. 독방에 갇혀 지낸 후부터 나는 콜라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애한테 펜팔 친구를 하나 소개해 준다고 했지. 너는 지금 명문대 영문과에 다니고 있고 가끔 이 교소도에서 자원봉사로 요리를 가르친다고 말해 뒀다. 다음 주까지 그 애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해서 들고 오도록. 참, 그 애의 이름은 조나단 조야. 친구들은 조니라고 부른다니까 조니라고 해도 좋겠지. 한두 장 정도로 편지를 써서 오도록 해. 미에의 글씨체를 써도 좋겠지.”


그녀는 나에게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편지지와 편지봉투 그리고 펜이 하나 들어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자연스럽게 써. 어차피 조니도 한국말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너무 잘난 체하는 말투는 더 거북할 수가 있어.”


나는 노란 봉투의 모서리 쪽을 손톱으로 살짝 접었다 피면서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셔 댔다. 그리고는 다시 시계 줄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기...... 전 한 번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면서 망설이더니 책상 서랍을 뒤적거리며 잡지 한 권을 꺼냈다.


“그럼 우선 이 잡지를 읽어 봐. 편지들을 모아둔 잡지니까. 사실 눈물을 짜내는 편지들이 많지. 너무 이 편지들을 따라 하지는 말고. 그럼 되겠나?”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녀가 내미는 잡지를 받았다. 나와 미에가 쓰던 노트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얇은 잡지였다.

간수가 자물쇠를 철커덕 거는 소리를 낸 후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나는 노란 봉투 속에서 편지지와 편지봉투 한 장씩을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펜을 두고 잡지를 펼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눈물을 짜내는 편지들 뿐이었다. 그중 나는 사랑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3장을 뜯어내 감방 바닥에 두고서 대충 형식을 파악했다. 처음에는 잘 지냈니,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로 시작되고 중간 부분부터 친구와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후반 부분부터는 언제 보고 싶어 등등의 이야기로 끝이 나는 형식이었다. 펜을 들고서 편지지에 조니라는 이름을 쓰려다가 문득 조니는 미에의 소설 속의 7호실 감방의 방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사진 속의 조니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미에의 글씨체로 노트에다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미에의 일기를 50장이나 작성한 경험이 있던 나는 이미 과거의 나의 글씨체를 잃어버린 후였다. 나는 미에처럼 길쭉한 글자들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미에의 글씨체를 써넣으면서 미에의 흉내라도 내 듯 그렇게 아기자기한 편지를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안녕, 조니. 저는 라라예요. 잘 지내죠?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려고 하고 있어요. 영국은 어떤가요? 거긴 비가 많이 온다는데, 해가 그립진 않나요? 저는 햇볕을 쬐길 좋아해요. 얼굴이 까맣게 타는 것 따위는 상관없어요. 그냥 저는 해를 마주 보고 서 있어요. 그럼 따뜻해지거든요.


나는 가끔 교도소의 마당에 홀로 서서 해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던 기억을 되살려 봤다.


제가 왜 해를 좋아하는 줄 알아요? 해는 공평하거든요. 얼굴이 예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다거나 그런 건 상관하지도 않아요. 해는 그저 마음속의 열성 만을 따져요. 저는 늘 해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해요. 가끔은 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해에게 이것저것 말을 시켜보기도 하고. 해에게 다짐을 해 보기도 하죠. 열심히 하겠다고. 저의 집 마당은 노란 수선화로 둘러 싸여 있어요. 그 향긋한 수선화 향은 가끔 어머님이 끓여 주시는 계피차에 묻혀지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계피차를 너무 좋아하세요. 부엌에서는 큰 주전자에서 계피차가 항상 끓어오르죠. 아, 영국에서도 계피차를 마시나요? 듣기로는 홍차를 주로 마신다고 했는데. 늘 인도 얘기를 들려주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영국인들도 인도인들처럼 늘 홍차를 마신다고 했어요. 저도 홍차를 즐겨 마셨는데, 요즘은 콜라를 더 좋아해요. 가슴을 펑하고 뚫어주는 것 같거든요. 뭐 답답한 일이라도 있냐고요? 아직 대학을 졸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지만, 저는 그 이후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어요. 사회에 나가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그래서 지금은 요리도 배우고 이것저것 배우려고 노력을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를 하죠. 인도인이 직접 와서 요가를 가르쳐 주는데, 그 사람 이름은 산지브예요. 한국인 아내가 있다고 했어요. 친구에게 늘 인도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저는 왠지 산지브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호기심이 많고 잘 웃고. 산지브와 직접 얘기를 해본 적은 없어요. 요가 선생님과 너무 친하게 지내면 요가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조니는 뭘 배우고 있나요? 비행기 조종술을 배우기에도 바쁘겠죠?

늘 비행기에 올라 구름을 지나쳐 날아다니겠지요?


나는 여기까지 한 숨도 쉬지 않고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 배가 살살 아파 와 나는 몸을 옆으로 뉘인 채 시계를 쳐다보곤 내가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지 한 장도 차지하지 못하는 이 편지를 쓰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편지를 쓰느라 허비한 1시간에 나는 오늘 밤 새벽 1시에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에 미에의 소설을 수정했 듯이 이번에는 내가 처음으로 써 본 편지를 수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까지는 어떻게 글을 이어 썼지만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왼쪽 손목의 시계에서 알람이 울려댔다. 5분 후면 토플 강습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쓰던 편지를 놓고 오늘 수업을 예습하기 시작했다. 토플 수업에 들어가는 재소자는 나를 제외하고 4명밖에 없었다. 그들 4명이 어떤 사연으로 감옥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들 4명 중 2명은 토플 강의에 나왔다 안 나왔다 했고 나머지 2명은 나처럼 꾸준히 토플 강의에 참석했다. 산업고등학교를 나온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수업이었지만 예전에 라디오를 붙잡고 팝송을 흥얼거린 기억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단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지만 나는 열심히 사전을 뒤적거리며 수업에 집중했다. 사실 독방에 혼자 갇혀 있으니 차라리 어려운 강의에라도 나오는 편이 더 좋았다. 토플 강사의 매일 바뀌는 옷차림새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 강사의 옷차림은 나의 타입은 아니었다. 그 여자 강사는 늘 정장 차림새였다. 꼭 결혼식장에 참석했다가 급하게 강의를 하러 온 것처럼. 짙은 화장과 하이힐에 핸드백까지. 미에 라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는 요즘 토플 강의에 나가고 있어요. 토플을 가르치는 사람은 여자예요. 조니는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나요? 이 여자 강사는 늘 정장 차림이에요. 혹시 캐주얼한 차림의 여자를 좋아하진 않나요?


나는 여자 강사가 칠판에 단어를 적어 내려가는 틈을 타서 조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 어쓰 기도 했다. 무언가 생각날 때마다 적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소설가 미에도 말했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그 여자 강사의 옷을 빌려 입을 날이 오고야 말았다. 사실 나는 그녀의 옷을 빌려 입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가 토플 강사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를 주장했다. 덕분에 토플 강사는 입고 있던 정장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벗고 대신 새로 세탁한 죄수 복을 잠시 걸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일반인의 옷을 벗고 하늘색 죄수 복을 입은 그 여자의 얼굴은 전혀 화사하지 못했다. 그녀의 진한 화장에도 그녀는 그저 죄수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여자의 옷을 빌려 입고 카메라 앞에 선 나는 그녀의 강요에 따라 난생처음으로 화장까지 해야만 했다. 감색 스커트에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껑충 묵었던 머리는 매직 스트레이트로 쫙 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 앞에 시무룩하게 나는 서 있었다. 차라리 죄수복이 좋았다. 죄수 복을 입을 때는 귀찮고 거짓말 같은 화장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는 그저 나인 채로 솔직하게 모습을 드러내도 상관이 없었는데, 카메라를 든 그녀 앞에서 쉽게 미소를 만들 수 없었다. 그저 시계줄을 만지작 거리며 서 있었다. 사진을 찍자마자 나는 그녀 책상 위에서 휴지를 뽑아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닦아내려고 했다.


“잠깐. 사진이 어떻게 나왔나 확인을 먼저 해야지.”


그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나온 즉석 사진을 잠시 흔들어 대더니 사진이 선명해 지기를 기다렸다.


“너무 시무룩해. 다시. 조금이라도 웃어봐. 그리고 시계 좀 가만히 나 두고.”


나는 한 숨을 쉬고 다시 카메라를 향해 웃기를 시도했다.


조니는 잘 웃나요? 저는 예쁘게 웃지를 못해요. 특히 증명사진 같은 걸 찍을 때는 더더욱. 왜 꼭 억지웃음을 지으라고 야단들일까요. 그냥 솔직한 모습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교도 관장님을 통해서 조니의 사진을 봤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가 있죠?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재밌는 추억거리라도 끄집어내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친구 생각을 해 볼게요.


나는 미에와 화장실 안에 물을 뿌려댔던 기억을 떠올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물을 뿌릴 때면 우리는 늘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주고받곤 했었다. 아주 짧게 끊기는 대화였었다.


“오늘 아침에 성공했어?”

“아니, 아무리 힘을 줘도 안 나오더라. 미에, 넌?”

“나야, 늘 성공이지. 김치라도 많이 먹어. 그럼 늘 성공이야. 나처럼.”

“으,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이렇게 냄새가 나지. 코를 막지 않고는 서 있을 수가 없잖아.”

“어. 다 자연적인 현상인데, 뭘”

“다 니 냄새야, 뭐.”

“너!”


나는 미에가 나를 향해 바가지 물을 뿌려댔던 기억에 살짝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미소가 만족스러웠는지 옷을 갈아입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뒤를 돌아 창피한지도 모른 체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정장 차림을 벗어던지고 토플 강사가 건네주는 친숙한 죄수 복을 걸쳤다. 옆에 서 있던 토플 강사는 뒤로 돌아서지도 않고 죄수 복을 벗어 정장 차림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요즘은 너도나도 다이어트하느라 난리예요. 내 주위의 친구들도 다들 휴가 때 단식원에, 지방 흡입을 한다 그러거든요. 어머, 근데 언니는 정말 날씬하네요. 비결이 뭐예요? 당장 사회로 나가도 되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녀의 말이 너무 낯설게만 들렸을 뿐이었다.


“밖에 나가 봐요. 요즘은 옷값이랑 화장품 값으로 월급 다 나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교도소까지 나와서 용돈 벌잖아요. 사실 답답하기도 해요. 온통 그런 얘기들 뿐이니까.”

“그런 거 안 따라가면 되잖아요.”


내가 고개를 돌리고 살짝 중얼거리자 토플 강사는 작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요. 주위에 보이는 게 다 그런 거뿐이니까. 근데 갑자기 왜 사진을 찍고 그래요? 집에다 사진 보내려고? 다음에도 필요하면 내가 옷 빌려 줄게요. 미리 말하면 명품 걸치고 올게요.”

다시 한번 거울에 서서 전신을 뚫어지라 훓터 본 후 토플 강사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그녀의 소파에 앉자 즉석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콜라 병을 내밀었다.


“편지는 다 썼나?”


나는 토플 책 사이에 끼어 두었던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그녀가 편지를 읽을 동안 나는 빨대 끝을 살짝 깨물어 대고는 되도록 천천히 콜라를 빨아 마시려고 애를 썼다.


“그런대로 재밌군. 이 편지는 내일 우체국으로 가서 내가 직접 붙이겠어. 사진은 다음 편지 정도에 넣으면 될 것 같은데. 참, 다음 주부터는 영어회화도 시작해봐. 다음 주에 영어강사를 하겠다고 지원한 두 명의 외국인이 오기로 되어 있어. 그들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자청한 사람들이지. 내가 만나보고서 결정하기로 하지.”


저녁 식사를 마친 후부터가 가장 힘든 시간이 된다. 나는 대졸자 시험 준비를 하다가 너무 지루해지면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미치도록 답답해지면 괜히 감방 문을 두드려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한다. 화장실 변기 뚜껑을 접고 앉아서 20분 정도 멍하니 문만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변기 뚜껑을 열고 오줌을 눈다. 독방까지 가는 복도는 되도록 천천히 걸어가며 감방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완전히 채워질 때까지 나는 감방 문에 귀를 대고 무언가 소리를 들어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창문 밖으로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바닥에 누울 수 있었다. 그렇게 2-3시간을 잔 후 나는 요가 교실로 향한다. 일요일이 되면 주중에 못 잔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잤다. 요가 외엔 아무런 강습이 없는 일요일은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일요일이 되면 내 몸은 자동적으로 수면상태로 들어가 주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잠을 잤다. 저녁식사 시간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다행스럽게 눈이 스르르 감겼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월요일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꿈속에서도 나는 강습을 받거나 그녀의 방에서 상담을 받았다. 미에가 내 꿈속에 잠시 나타나기라도 하면 나는 잠시 깨어나 왼쪽 팔목의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다시 잠에 빠졌다. 목요일 아침, 나는 두 명의 서양 사람이 마당을 가로질러 교도소로 들어오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요가를 끝내고 남은 시간에 한식 요리 이론 책을 보면서 계속 복도의 창문 가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 명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로맨스 소설에 나올 만큼 큰 키에 잘 생긴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뚱뚱한 아줌마 같은 여자였다. 나는 속으로 뚱뚱한 서양 아줌마한테 영어회화를 배우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별안간 들어온 미남 서양인으로 인해 교도소 창문 가는 갑자기 많은 재소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미남 서양인은 우리들을 향해 살짝 윙크까지 보여 주었다. 창문 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왼쪽 손목을 보며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제과 제빵 강습을 받기 위해 복도를 뛰었다. 나는 제과제빵 강습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기름에 튀겨내는 빵 만드는 법을 배울 때는 손목시계를 벗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튀김 빵을 만들지 않았다. 그날은 노란 크림빵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크림빵 2조각을 점심으로 때운 후 나는 그녀의 방문을 노크했다. 여전히 계피향은 흐르고 있었지만 오르골은 조용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나에게 일대일 교습을 해줄 상대는 남자 서양인이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온 여행자였고, 한국 여행을 하면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매일 오후 1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나와 그의 일대일 영어회화 수업은 그녀의 방에서 진행되었다. 그녀는 우리를 위해 소파 쪽에 앉아 탁자 위에 군화 발을 올려 두고는 머리에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는 우리를 감독했다. 그는 그의 본명은 리처드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리치라고 불려 왔다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나를 ‘라라’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리치는 나를 라라라는 이름 대신 ‘크림’이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자신의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코에는 노란 크림이 살짝 묻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헤드폰에서는 아무런 음악도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 짐작했다. 리치도 안녕하세요 외의 한국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리치에게로부터 알파벳의 발음법부터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B와 F, L, M, R 자 발음에 아주 약해요. 한국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B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B를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다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완전히 부딪히며 발음해 봐요.”


우리는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그의 의미를 파악해 나갔다. 가끔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사정없이 내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 리치는 나를 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라라는 어떤 커피를 좋아하죠?”

“프림 커피요.”

“프림 커피? 그게 뭐죠?”

“어, 프리마? 프림? 음, 커피에 하얀 가루만 넣고, 설탕은 빼고.”

“아, 크림?”

“예. 크림.”

“블랙커피는 좋아하지 않나요?”

“블랙커피는 배부를 때만 마셔요.”


나는 손을 배에다 대고 큰 원을 그리며 대충 영어로 설명해 나갔다.


“하하하. 임신 중엔 커피는 안 좋죠.”


나는 이번엔 먹는 시늉을 하고 배를 쳐 댔다.


“그저 농담이에요. 농담.”


나는 그의 농담에 웃지도 못하고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찡그리고만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사이코들은 이 블랙커피에 설탕을 잔뜩 넣어서 마시곤 하죠. 저는 설탕을 뺀 블랙커피를 마시지만 가끔 그런 영화들을 보면 설탕을 잔뜩 넣어 마시고 싶어 져요.”


우리는 그렇게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끔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나는 노트 위에 그녀 쪽으로 화살 표를 그린 후 그녀도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리치에게 물었다. 리치는 노트 위에 NO라고 적어 주었다. 내가 정말?이라고 소리 없이 입술 모양을 내자, 리치는 눈을 살짝 깜빡여 주었다. 규칙상 우리는 사적인 얘기는 전혀 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프림 커피를 좋아한다던가 설탕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커피에는 절대로 설탕을 타지 않는다든가 하는 그런 얘기를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내가 무슨 죄목으로 교도소에 오게 되었고, 리치가 현재 여자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던가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가끔 노트에 그런 정보들을 그녀 몰래 적어 대면서 킥킥거리곤 했다. 리치는 소매치기였다는 나의 말에 아주 용감한 여자라며 감탄을 해댔고 나는 그에게 마유미라는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약간 더듬대면서 가끔은 손짓을 해대며 영어로 미에가 들려준 인도 얘기를 했다.


“제 친구의 친구가 인도에 갔었는데, 그 애는 돈을 아주 아껴 쓰는 여행 자였데요. 매일 같이 생수를 사 먹기도 아까워서 호텔이나 식당에 갈 때마다 생수 병에 든 물 말고 현지인들이 받아 마시는 공짜 물을 달라고 했댔어요. 인도에 시체 태우는 강가가 있다는 곳 있죠? 그 도시에서 호텔 방을 구하다 너무 목이 말라서 다시 공짜 물을 달라고 했더니 카운터에서 일하던 인도인이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면서 좌변기 물을 내리더래요. 쏴 하며 내려가는 물을 가리키더니 이 물은 언제든지 공짜라며 마시라고 했다나요?”


리치는 나의 말에 웃음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살아 있나요?”


나는 잘 모르겠다는 몸짓으로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 정말 그 친구는 살아 있을까? 나는 왼쪽 팔목의 시계 줄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왼쪽 팔목에 그어진 흉터 아래로 뜨거운 기름불에 덴 흉터를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커다란 흉터 하나가 더 있다면 나는 내가 내 팔목을 스스로 그었던 흔적을 그저 제빵 교육을 받다 기름에 덴 흉터이라고 속일 수 있지 않을까.


“등산용 시계군요. 등산을 좋아하나요?”


리치가 손가락을 들어 내 시계를 가리켰다. 나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다행히 바닥으로 굽 있는 군화가 내려서는 소리가 들렸다. 회화 강습이 끝났음을 알리는 그녀의 신호였다.

리치가 손을 흔들어 대며 방문을 나서자 그녀가 머리에서 헤드폰을 벗더니 나에게 이미 뜯긴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조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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