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5
5. 가끔은라라가 되다.
안녕하세요? 라라라고 하셨죠? 전 조니입니다.
당신의 편지 잘 받아보았어요
한국말 서툰 저를 위해 조금 쉽게 썼다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저는 영국에서 사귄 한국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라라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아직은 그리 비밀스럽지 못한 편지라 미안해요.
라라, 공부는 잘되어가고 있나요?
교도소에서 요리강습을 하신다니, 정말 대단해요.
사실 이런 말 하기 뭐하기도 하지만 흥미롭기까지 하군요.
교도소는 일반인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소잖아요. 일반인 이라니... 웃기지만요.
여자 교도소에 가셔서 요리 강습을 하신댔지요? 여자들만 있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영화 속에서처럼 싸우고 무서운 분위기가 흐르는 그런 곳 일가요.
무섭지는 않나요?
혹시 라라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역시 교도소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라라의 착한 마음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저는 공군에 입대한 지 이제 2년이 되었어요.
하늘을 나는 일.
라라는 어쩜 상상을 못 할지도 몰라요. 제가 라라의 교도소 요리 강습을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하늘에 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럼 많은 일들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좋은 생각도 가끔 떠올리면서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요.
가끔 한국 쪽을 바라보려 노력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그렇게 한눈팔 틈은 그리 많지 않지만요.
저에게 있어 한국이란...
글쎄요. 전 어머니 외에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한국이 아직도 무척 낯설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라라 양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 비행 때는 라라 양이 살고 있는 한국 쪽을 보기 위해 비행을 무단으로 조금 늘려 볼까 하는 신나는 계획도 짜고 있습니다. 라라 양의 전공은 컴퓨터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듣기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저는 컴퓨터 쪽은 전혀 알지 못해서 라라 양의 전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친구의 말을 조금 들은 적은 있었어요. 이를테면 그 친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렇게 표현했죠. 그 친구는 자바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는데, 자바란 쉽게 말해 이런 거라고 말이죠
"나는 매일 큐브(영국 지하철)를 타고 학교에 온다. 1라인을 타고 30분을 가다가 2라인을 타고 다시 30분을 가는데, 1라인에서 2라인으로 갈아타는 길을 늘 헤매곤 한다. 그러던 나는 어느 날 1라인에서 2라인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 (사실로 말하자면 지하도 내의 표시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지만)을 1달 만에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현재 공부하는''자바''를 떠올리게 되었다. 1라인에서 2라인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일 그것이 바로 자바가 아닐까? 가장 간소하게 하지만 빠르고 편리한 길을 컴퓨터 언어로 풀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바이다. 이를테면 여기서 굳이 예를 들자면 내비게이션 같은 것. 혼잡한 지하도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신이 원하는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자바이다. 나는 자바를 떠올리면서 더 이상 1라인에서 2라인으로 넘어가는 길을 헤매지 않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내 머릿속에 내비게이션 같은 바자 프로그램을 넣어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후 나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지하철 티켓을 찍고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내비게이션 같은 자바 프로그램을 인식시켜 아무런 사고 없이 자신이 원하는 지하철까지 데려다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일.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은 세상 어느 곳에나 쉼 쉬면서 인간의 삶을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는 그런 기계 같은 세상을 만드는 것. 그래서 나는 자바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자바를 배우는 라라 양의 입장은 어떠한지요? 그 친구의 말을 곧이 믿어도 될까요? 너무 이상한 편지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이상한 편지......
이상한 건 나일뿐인데라고 나는 생각했다. 평탄한 가정에서 자란 부자 20대 청년. 그것도 영국에서 조기유학 과정을 밟은 남자에게서는 이상한 편지가 나올 수는 없다고. 라고 나는 단정 지었다. 너는 아마 이상한 것이, 이상한 상황이, 정말 죽도록 싫은 상황을 마주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쉽게 하는지도 몰라 라고 나는 생각했다. 너의 편지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어쩌면 너는 그냥 너 자신에게 잠시 귀염성을 느끼고 이상한 편지라 말하고 있는지도 몰라......
탕탕탕
국자로 둘둘 겨지는 철제문이 살짝 찰랑이는 것 같더니 문 아랫단의 구멍으로 식판이 들이 밀어 졌다. 나는 왠지 나 자신까지 귀여운 느낌을 받고서 귀여운 포즈로 살며시 기듯 문 쪽으로 기어갔다.
"오늘의 반찬은 미역국에 계란찜이구나. 간장 떡볶이까지 곁들여서..."
나는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푹푹 찔러보고는 계란찜에 계란 국물이 좀 더 들어갔으면 맛있을 텐데 하는 투정을 부려보기까지 했다.
"오늘은 네 생일이더군. 물론 법적인 생일을 말하는 거지만. 오늘, 네 생일이 정말 맞나?"
철제문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파고들어 왔다. 나는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서 미역 줄기를 미역국에서 들어 올려 다시 풍덩 하고 빠뜨려 보았다. 나는 그녀가 자리를 떠났는지 확인할 생각도 없이 식판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발자국 소리조차 흘리지 않는 그녀가 떠났는지 아직도 서 있는지 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감옥 안에서 나를 유일하게 살펴주는 사람은 그녀지만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친밀감조차 느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일상까지 봐주는 사람.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거부감을 쌓기만 하는 존재라고 느껴졌다. 특히 미에의 죽음을 어떻게든지 자살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던 그녀. 그리고 그것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나. 미에...... 미역 국물을 담은 숟가락이 손에서 스르르 떨어지면서 미역국이 바닥에 살짝 떨어졌다.
‘오늘은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나는 식판을 들고서 철제문 아래의 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고는 자리로 돌아와 다리를 모아서 세워 앉고는 양 손으로 오므려 세운 다리를 감싸 안았다.
‘내가 들었던 인도 얘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얘기가 먼 줄 아니? 얼마나 웃었다고. 글쎄 인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한국인 여행자가 인도 들어오면서 그 뭐냐...... 위생장갑? 비닐장갑? 그거 있잖아 음식 만들 때 손에 비닐 끼우는 거. 암튼 그 비닐장갑을 300장 들고 왔다는 거야. 인도 사람들은 숟가락도 안 쓰고 휴지도 안으니까 300장 중 150장은 화장실 갈 때, 그리고 나머지 150장은 밥 먹을 때 쓰려고 갖고 왔다는 거야. 얼마나 웃겼던지, 정말 대굴대굴 굴렀다니까. 와. 정말 웃었어. 그때. 얼마나 웃었던지 1킬로는 빠졌을 걸. 아마?’
''에? 인도에는 정말 휴지도 없는 거야? 거기다 숟가락도 정말 없대?'”
'’하하하하. 아니. 있대. 그 사람도 인도에 휴지도 있고 숟가락도 있다는 걸 알고 비닐장갑은 인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는 거야. 그 사람 누굴까. 궁금하지 않니?’
''어떤 사람이래? 그 남자애가 알려줬어? 그 남자애도 그 사람 만나본 거래? 아님 그냥 들은 얘기래?''
'그냥 들은 얘기. 그냥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도는 그런 얘기 중 하나라는 거야.'
''인도에서의 전설?''
'응. 그거 말고도 여러 개 있었는데.... 가만있어봐. 또 뭐가 있었더라..... 아, 그리고 전에 어떤 한국인 여행자가 길에 쓰러져 있던 적이 있었대. 이건 남자애가 웃긴 얘기라며 떠들어 댔지만 나는 하나도 웃기지도 않았었거든.’
"하하, 그래?"
‘그 여행자가 사람 많은 시장 골목에 쓰러진 걸 발견한 사람은 여행자 상대로 문을 연 한국 식당의 주인아저씨였대. 그 아저씨는 쓰러진 여행자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서는 그대로 업어서 식당 안에까지 업고 들어왔다는 거야. 하루 정도 간호를 해주니까 그 여행자의 눈이 스르르 떠졌는데, 그때 그 아저씨가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대. 그랬더니...... ''백숙'' 이러더래. 백숙을 한 솥 끓여다 주니까 국물까지 핣아 대던 그 여행자는 다음 음식으로 ''수박......''을 골랐다는 거야. 그래서 수박을 잘라다 주고 사연을 물었대. 그랬더니 그 여행자는 인도에 와서 동냥을 하면서 여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길거리에 앉았다가 쓰러져 버렸다는 거야. 정말 비행기표와 용돈 조금만을 들고 인도로 들어왔더래.
어때? 이 얘기가 웃겨? 웃음소리가 안나는 걸 보니 하나도 안 웃겨하는 거 같은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했다. 하나도 안 웃겨하는 표시로.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도 정말 웃긴 얘기를 들어야 할 때는 정말 난처해. 억지로 그래? 그렇구나. 하하 웃어 주기도 해야 하고. 그 남자애는 이 얘길 들려주면서 ''백숙''이 나온 부분과 ''수박''이 나온 부분에서 나의 웃음을 기대했었던 표정이었어. 그 남자애는 그 단어들을 내뱉으면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내가 웃나 안 웃나 확인까지 할 줄 알았던 남자애였거든. 자기가 그렇게 웃기면 자기만 웃으면 그만인 것을. 나도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내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 날로 나는 그 남자애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니? 내가 그 순간 왜 그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만약 내가 그 애가 원하는 행동을 억지지만 성심껏 행동해 주었다면 더 좋은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순간. 내가 만약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려 주었더래도 그 남자애가 나를 떠났을까 하는. 내가 만약 명품을 훔치지 않았으면 감옥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순간 말고 좀 더 사소한 일들에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아. 그렇게 해 주었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너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은 없니? 예를 들면 이런 사소한 상황에서부터. 시집간 언니네 가족에 끼어 살다가 어느 날 조카가 이런 말을 하는 때, 오늘도 내 양말 신고 가요? 내가 그때 그냥 웃으며 넘어갔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했던. 애가 하는 말을 뭘 그리 신경 써!라는 언니의 말에 그냥 큰소리로 웃음 지어 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사소한 일상 말이야. 난 가끔 그런 후회가 들어.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내가 좀 더 예의 바르게 남을 배려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좀 더 밝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거. 넌 그런 적 없었어?’
''나... 나는?''
드르르륵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이미 멈춰버린 문 쪽에는 내가 손대다 만 식판이 밀려들어와 있었다.
'난 가끔 그런 후회가 들어.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내가 좀 더 예의 바르게 남을 배려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좀 더 밝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거.’
나는 팔을 풀어 무릎을 바닥으로 놓아주고는 다시 문 쪽으로 슬슬 기어갔다.
'나의 인생은 좀 더 밝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거'
나의 얼굴은 억지 미소를 짓고 나의 손은 미에의 말을 따라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나의 입 속으로 친절하게 밥을 넣어 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의 입 속으로, 나의 위장 속으로 밥을 넣어주는 나의 팔이 나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 줄지도 몰라...... 나는 이제 나의 의지로 팔을 움직여 간장 떡볶이를 입 속으로 살며시 집어넣었다. 나의 이런 행위들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거라는 확신이 들면서 나는 허겁지겁 밥을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미에야...... 사실 나 살아가면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
이제는 말끔히 비워진 식판을 자신 있게 문 밖으로 밀어 놓고 나는 감방 바닥에 누워 세운 무릎 한쪽 위로 다른 다리를 올려 두고 기분 좋게 다리를 살랑이며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을 조용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