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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Apr 06. 2021

7. 신부가 되어도 될까.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7

7. 신부가 되어도 될까.


"조니의 편지를 몇 개나 갖고 있지?"

나는 아침마다 세어 보는 조니의 편지 개수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받은 편지까지 합하면......(나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 아마 (일부러 모른 척도 한다) 10개쯤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재떨이에 필터 끝까지 피운 담배를 비벼 대면서 흘끗 나의 손을 쳐다보았다.


'조니,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나는 문득 그녀 안의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내 마음속에서 들었던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것 같게도 느껴졌다.


"조니는 잘 지내고 있어요."


재떨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회색 연기가 내 콧 속까지 스며들고 있을 때 나는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문득 담배 연기에서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그 고소한 맛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계피향에서 오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평소에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니의 소식이라면 내가 너 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나는 문득 그녀가 나 보다도 먼저 조니의 편지를 읽는다는 걸 기억했다.


"다음 달에 조니가 한국에 들어올 거다. 물론 너 때문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나는 조니의 귀국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조니가 한국으로 들어오건 말건 나는 어차피 감옥에 갇힌 신세기 때문이었다. 조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핑계를 대여 그 주제에서 살짝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쪽 분야에서는 대가겠지...... 나의 입가가 살짝 꺾여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요가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겠지?"

"저보다 저의 일상에 대해 더 잘 아실 텐데...... 안 물어보셔도 되지 않나요."


창가로 몸을 돌리려다 그녀는 아주 재빠른 동작으로 나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냥 확인 차, 아니 너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 물어본 거다. 너 요즘 좀 몸이 불은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눈을 잠시 쳐다보고는 바로 냉장고로 눈길을 돌렸다. 내 마음은 벌써부터 냉장고 문을 열어 캔 콜라를 뜯어 벌컥벌컥 마셔버리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는 제로 콜라를 마시도록. 앞으로 1달 후에 있을 데이트를 위해서 몸 관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남자들은 마른 체형을 좋아할 거야. 특히 살찐 사람들이 그득한 나라에서 오는 남자라면 더더욱. "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천천히 나에게 콜라와 빨대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 애를 아주 잘 알아. 나 보다 그 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서 콜라를 건네받을 때,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나의 손바닥을 살짝 스치고 지나감에 잠시 몸이 굳어가는 것 같았지만 곧 차가운 콜라가 나의 언 몸속에 들어오면서 그녀의 접촉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 애가 내 가족이라는 거...... 내가 말한 적 있었던가?"


빨대로 들어오는 콜라는 엄마의 젖인 양 마구 빨아대면서 나는 그녀의 말을 그저 흘겨 듣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게 뭐지? 나는 문득 가족의 의미가 무언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아니, 가족이라는 말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단어는 나에게 주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빌딩''이라는 단어만큼 차가웠다. 빌딩이 주는 표면적인 쇳덩이 같고 딱딱하기만 한 그 단어 만의 느낌. 그저 그런 느낌일 뿐이었다.


"그 애가 내 아들이라는 걸 내가 말했던가?..... 난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빨대에 주던 힘이 쭉 빠지면서 콜라 캔 속에 작은 기포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멍해졌는지 내 귀속은 콜라 방울들이 우글우글 거리며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그 싸움에 집중했다. 지금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나는 무언가 보고 싶어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멍멍했다. 그냥 귀가 먹먹했다. 갑자기 나의 귀에서는 윙 소리가 시작되더니 나의 뇌에서부터 가슴까지 그 소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 속에서 직접 낳은"


그녀가 한 발자국 나를 향해 섰다. 그리고 그녀의 발은 그대로 멈춰 선채로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녀의 군화가 나를 향해 한 발자국 움직임과 동시에 한 발자국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거짓말쟁이였을 뿐이야.'


나는 그녀가 정말 나의 상상대로 거짓말쟁이 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100프로 나의 가슴을 꽉 채웠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과연 그녀에게 무엇을, 그리고 그 무엇의 어디까지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녀가 고달프기만 한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하고 그 순간 잠시 그 떨림에 마음을 맡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누군가 나 대신에, 나의 인생을 살아가 주면 좋겠다고, 그래도 나는 나일 테지만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고 나의 몸을 조종하는 사람은 타인이기를 원하기도 했었다. 사실 나의 인생은 그런 소망을 품고 있었던 적이 더 많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른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이 많이 진 거지...... 나, 이제 당당히 내 속에서이지만 나를 '나'라는 다른 이들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였을까?

미에가 죽은 후부터? 아니, 그녀가 나에게 새 인생을 주겠다고 지껄여 준 다음부터?


''너, 아직도 가끔 멍해질 때가 있어...... 예전에 너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나로 향했던 그녀의 군화가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의 발은 그대로 꿈쩍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끝까지 말하지 않을까, 아니, 네가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 때까지라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 요즘 너무 멍하니 있어. 다시......”


그녀는 이제 책상 쪽으로 천천히 발길질을 하더니 '엘리제를 위하여' 오르골의 나사를 조이다가 오르골을 옆구리에 끼고는 입에 담배를 넣었다. 탁하고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린 후 엘리제를 위하여가 그녀의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음악의 속도를 조정하는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렸다는 것. 하지만 그 음악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오르골부터 손안에 완전히 넣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예상은 했겠지만, 흠......"


나의 귀는 다시 그녀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나의 눈은 오르골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의 귀에는 그녀가 뿜는 담배연기가 그녀의 콧구멍에서부터 반쯤은 나오고 있을 거라는 걸 눈치챘다.


"조니는 내가 직접 낳은 아이는 아니다."


나의 눈이 조금 찡그려지면서 고개가 문가로 향해 돌아섰다. 나는 나의 표정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 보다 나는 내 얼굴이 왜 찡그려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찡그려질 때 라면 나는 분명 내가 그녀의 고백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일 거라는 신호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애에게 이런 말은 안 해 줬으면 해. 꼭 약속해 줄 거라고 믿어서 말하는 것뿐이니까."


나의 고개는 다시 그녀를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나가겠다는 표시를 하고 살그머니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나의 콧 속을 머물던 그녀의 계피향이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이런 고백 따위 듣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찌 되었든 고아란 슬픈 사람일 뿐인데...... 난 나 말로 또 다른 슬픈 인간을 만나고 싶지 않은데...... 고아는 왜 꼭 고아와 연결되어서 살아야만 할까. 나 정말 고아 따윈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 왜 또 고아지? 나의 주위에는 모두 고아들 뿐이었는데. 난 정말 고아들의 타령을 듣기가 싫단 말이야. 그게 얼마나 지겨운 일인데, 그건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소리들일뿐인데. 난 정말 고아들이 싫어.'


"어머. 언니. 어디 가요? 곧 토플 수업 시작인데, 지난 시간엔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앞에까지 왔다가......"


지나쳐 흘러 들어오는 말 중간에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토플 강사라는 사실에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그녀의 뒤통수가 먼저 내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손은 이미 토플 강사의 팔을 잡고 있었고, 그 둘은 이내 그녀의 방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시간이라면 토플 강사 쪽에서 먼저 펑크를 내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토플 책을 그녀의 방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그녀의 방 문 앞으로 걸어가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살며시 들어 주먹을 쥐었다. 문득 그녀의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물론 그녀의 방 속에 있는 사람은 그녀와 토플 강사일 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생각 없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열린 문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과 고개 숙인 토플 강사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는 저 애 앞에서 사적인 얘기는 꺼내지 말아 줘..."


나는 살며시 그녀의 방문을 닫았다. 내가 그녀의 방 속에서 마지막으로 마주친 물건은 오르골이었다. 발레 하는 소녀의 몸짓은 이미 정지상태였지만 나는 오르골의 나사를 조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르골에 사 은은하게 퍼지는 음악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오르골의 소녀를 내 맘대로 움직이고 싶어 졌다. 나는 오르골의 음악을 조정하고 싶어 졌다.


'오르골을 내 손에 넣고 싶어'


어쩌면 내 등 뒤의 나사를 그녀에게 맡기고 싶어 졌는지도 몰랐다.



그 후로 나는 그녀가 마련해준 신부 수업에 진정으로 열중해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기회는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따위 짓은 해서 무엇하냐는  속 삯 임이 가끔 나의 뇌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나의 육체는 나는 이번에는 결코 이런 기회를 앉아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듯이 규칙적인 시간표에 기대기 시작했다. 이런 결심이 서자 나는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일기장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일기장만이 내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일 것 같았다. 우선 일기를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조니에게 보내는 편지지의 끝을 잘라서 써볼까, 아니면 수업 노트의 뒷장을 찢어서 쓸까. 나는 여러 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어디선가 읽었던 말인 '경우의 수'라는 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읽었던 경우의 수라는 것이 이런 걸 의미했던 것일까? 나는 머리를 써야만 했다. 내 등의 나사를 그녀에게 맡기기로, 그녀의 맘대로 돌리게 마음을 먹었으니까 나에게도 작은 선물이 필요한 거라고.


"부탁이 하나 있어요."


영어회화 수업이 진행된 지 한 달 정도가 되던 때였다. 나는 나의 영어강사인 리치에게 무언가 묻는 척 노트에 이것저것을 써대는 때를 틈 타 리치에게 글씨로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비밀 요청을 하기 전에 한쪽 눈을 찔금 감아 먼저 리치에게 신호를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아, 이렇게 감정을 표현할 때는 수동형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be 동사 뒤에 감정표현을 과거로 표시해야 하는 거죠."


그녀는 여전히 헤드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가 영어를 모른다는 사실이 나에게 이렇게 이득을 줄 줄 누구든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작은 거면 좋겠어요. 바지 속으로 넣을 수 있을 정도로요.'


"아. 정말 잘했어요. 이제 겨우 한 달 가르쳤는데 보람이 느껴지는데요?"


'전 그냥 일기를 쓰고 싶을 뿐이에요. 혼자 간직할 일기요.'


"이제 '정말 놀랐어!'라고 표현해 볼래요?"


"i'm really surprised"


'정말 잘했어요. 그럼 다음 시간에도 꼭 복습을 해와야 해요. 그럼 상을 줄테니까!

"고마워요."


조금 이상했던 것이라면 그녀는 영어회화 강의가 끝나는 순간을 정확히 알아차린다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났다고 리치와 내가 작별 악수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리치의 수업종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탁자 위로 올렸었던 다리를 바닥으로 풀어 내리고 이내 입 구석에 물고 있던 담배에 라이터 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때에 그녀의 라이터 질은 한 번에 끝내지 않는다. 4-5번을 반복해 켜는 라이터 소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작별의 시간을 조금 허용하겠다는 표시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리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에게 손을 잠시 흔들어 보이고는 그녀의 방문 밖으로 향한다. 리치가 방문을 닫고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괜히 소파에 앉아 재떨이에 재도 묻어 있지 않은 담배를 털어 대면서 탁자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특별히 리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리치 또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지 않게 되었고 나는 그런 상황이 왠지 맘에 들었다.


"다음 달이면 조니를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녀의 말을 기다리다가 오늘은 상담이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문고리를 잡은 나의 등 뒤에서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나의 놀란 가슴을 눈치라도 챘다는 듯 냉장고 속에서 콜라를 꺼내 빨대와 함께 건네주었다.


'아...... 콜라를 마시는 걸 잊고 말았어......'


나는 늘 기다렸던 콜라를 잊을 정도로 일기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콜라를 안 주시는 줄 알고...... "


나는 늘 그랬듯 이번에는 일부러 조금 허겁지겁 콜라 캔 뚜껑을 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빨리 빨대를 넣고 콜라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조니가 한국에 잠시 다니러 올 거다. 영어 공부도 좀 더 해야 할 것 같고... 조니는 한국말 보다 영어에 익숙한 아이니까."


나는 콜라 캔 속의 빨대를 질근질근 깨물어 대기 시작했다.


"근데, 전 어차피 여기에 있는데...... 조니와 여기서 죄수 복을 입고 이렇게 만날 수도 없는데......"


사실 나는 조니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녀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줄 테지만 나에게 이 감방을 나갈 기회 같은 건 만들 수 없을 거라도 생각했다.


"다음 달에 외출할 수 있을 거니, 준비하도록 해."


콜라 캔 속으로 질겅거렸던 빨대가 툭 던져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할 거라고...... 그녀는 뭐라고...... 하지만...... 제 생각으론 이건 정말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인 것 같은데요......'


감방 바닥에 엎드려 영어 회화책에 턱을 괴고는 나는 수도 없이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녀 앞에서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조차 없었다. 그러면 그냥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라...... 내 맘 속의 두려움이 다시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생각 속에 갇혀 둘 생각이었다. 내가 한 마디라도 내 입 밖으로 그런 얘기를 꺼내면, 꺼내자마자, 바로 그 순간, 모든 계획은 시작도 전에 끝나 버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 불길한 느낌이다 라고 생각했다. 조니가 남자라는 사실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가 남자라는 사실에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그 낯섦에 잠시 떨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 나를 더 떨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모험'이라는 굴레에 나도 들어설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설렘을 동반한 모험.


그건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어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 후로 그녀는 나의 모든 강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내가 참석하는 강의의 수강생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감독이라도 하듯이 강의실 맨 뒷 자석에 털썩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내가 듣는 강의에만 참관했다는 건 아니다. 그녀는 시간이 되는대로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강의에 참석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한 달간 동안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준 한 달 동안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소화해 나가야만 했다. 그녀는 아침 요가 시간에서는 수강생이 되었다. 뻣뻣한 그녀의 몸에 요가 강사는 가끔 짜증스러우면서도 엄격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그런 표정은 하루에 단 한 번 정도뿐이었다. 그녀 때문에 요가 수련이 잠시 중단될 정도의 상태가 올 때가 그때였다. 그는 구부러질 기세를 보이지 않는 그녀의 등을 힘주어 눌러대면서 그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요가를 잘 따라 하는지 어쩐지 관심조차 없었지만, 나는 아주 가끔 그녀의 모습을 흘겨보면서 그런 표정이 되곤 했다. 그녀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모험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그녀에게는 어쩐지 사람을 질색하게 만드는 향이 있었다. 요가 시간에도 그녀가 앉은 구석 자리에서 풍겨 나오는 계피향. 요가 선생도 처음에는 계피는 인도에서도 유명한 향신료라며 그녀의 향수를 잠시 칭찬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의 계피향에 서서히 질려 갔다. 어쩌다 한 번씩 나올까 말까 한 계피차의 향도 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정말 싫어했다는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가끔 나는 사무칠 정도로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그건 언젠가 책에서 읽은 어머니의 향기 같은 것일 거라 생각했다. 어쩔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하기도 하지만 너무 심한 간섭에는 저항을 느끼게 되는 본능 같은 그런 느낌. 나는 그녀에게 그런 향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어떻게 이렇게 뻣뻣할 수가 있죠?"


요가 선생은 그녀가 교도소장이란 사실도 잊었는지 이날 아침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었다. 그의 말에 그녀의 몸이 더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요가 시간에 나는 그녀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요가 시간 만이라도 편안하게 수련을 하고 싶었다. 샨티샨티 하게. 요가 선생은 그 말의 뜻이 마음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이유는 그녀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읽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살아있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이 교도소로 온 후 그녀는 조금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전 교도소에서 그녀는 이렇게 딱딱하고 메마른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그녀가 했던 몰래 디제이 행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멍 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녀는 이 교도소에서 늘 저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녀의 그 표정을 본 순간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에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다섯 번이나 연거푸 기침을 해대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그녀의 눈이 살짝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녀의 표정은 나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하 듯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그 표정은 그녀의 얼굴에서 1초간 머물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요가 선생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요가 교실을 빠져나갔다. 허둥지둥 대는 몸짓도 없었다. 어쩌면 단호함 같은 게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후로 그녀는 요가 교실 안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렇다고 그날 아침 그녀가 요가 선생의 배를 머리로 쳐 버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요가 선생은 그대로였다. 요가 선생은 매일 아침 그녀가 앉아 있던 교실 구석 뒷자리를 한번 훑고는 요가를 시작했다. 교실 구석을 슬쩍 훔치듯 보는 그의 눈빛에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눈빛은 후련함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의 눈빛에 안도감이 서려 있어 보였다. 어쩌면 그의 눈빛에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뻣뻣한 몸 덕분에 나는 요가만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요가 선생의 뱃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옴~소리에 나는 눈을 감고 요가를 위한 명상에 빠져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혹시 그녀...... ''


나의 예감은 거의 적중한 것이 아니었을까? 요가 수업을 그만둔 그녀는 한 주의 텀을 두고서 다음으로 재봉틀 강의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맨 앞 정 중앙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는 강의 시작되기도 전부터 앉아 있었던 듯한 포즈를 하고는 재봉틀 실기 책을 열심히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그녀...... 자신이 직접 신부 수업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자 순간 나의 다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불안함에 속으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내 인생을 바꾸려고 한다...... 왜 그녀가 그러는 걸까. 나는 까만 세계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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