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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Apr 08. 2021

8. 꿈속에서......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8

     8. 꿈속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에게 도망치려면 어떻게 해야죠?”


“그거야......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를 쫓는 쪽을 기준으로 물으시는 건가요? 아니면 고소 공

포증이 있는 여자에게서 도망치는 쪽을 기준으로 하는 건가요? 먼저 그걸 알아야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로부터 도망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 편에서 말씀해 주시면 돼요.”


“그럼 제가 답을 하나 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미스터 커피는 항공사 잡지 속에서 항로가 표시되어 있는 세계지도를 펼쳤다.


“여길 봐요. 이 땅. 이 땅은 비행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이에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말이죠.”


“그래서요?”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에게서 도망치기에는 딱 좋은 나라죠. 고소공포증이 정말 심하다면 이 땅으로는 들어올 수 없으니까.”


“하지만 도망치는 여자도 심각한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다니까요.”


“그 도망치는 고소공포증 환자는 수영을 할 줄 아나요?”


“예. 물론. 아주 잘하는 편이죠.”


“그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쫓는 여자는요?”


“그 여자는 배 타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물속에 직접 몸을 담그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딱딱한 바닥에서 멀어지면 무조건 무섭다고 했거든요.”


“거 봐요. 그럼 도망치는 여자에게 이 땅으로 헤엄쳐 들어가라고 하세요.”


“이 땅이 어디죠?”


미스터 커피는 오른팔을 들어 손가락을 펴고 나의 오른쪽으로 펼쳐진 땅을 가리켰다.


“여기가 저기라구오?”


“네. 여길 보세요.”


이번에는 그가 왼팔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어딜 보라고요?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딜 가리키고 있는 건데요?"


나는 미스터 커피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서 고개를 돌려 미스터 커피를 향했다.


"대체, 어디를......"


나는 그 순간, 미스터 커피를 향한 눈을 꾹 한 번 더 감고서 힘껏 뜰 수밖에 없었다. 뜬 눈 속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면서 나의 입이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소리를 질러야 타당할 것인가. 나의 입은 그것을, 어떤 걸맞은 소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곧 나의 입은 비명소리 대신 알맞은 말을 내뱉기를 더 희망한다는 것을 나의 뇌가 알아챘다는 듯, 나는 다른 소리를 내고 있는 나의 입을 눈치챘다.


"미스터 커피가 사라졌어......"


그랬다. 그는 내 눈 앞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 것이었다. 처음엔 그의 머리가 그 후론 그의 가슴이 그리고 차례차례 아래까지 그의 모습이 스르르 지워져 간 것이었다. 그 대신 내 앞에 서 있는 건 처음엔 아주 밝은 빛이었다. 그 빛은 나의 눈의 끔뻑거림과 함께 서서히 어떤 물체를 내 눈 앞에 그려주기 시작했다. 하얀 천장에서부터 시선을 내려뜨리니 곧 나의 눈 앞에는 작은 쇠창살이 박힌 창문이 달린 누런 쇠문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문이 삐그덕 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든 건가?....."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힘 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나의 왼 팔도 스르르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려갔다. 나는 눈을 감고서 다시 잠을 청해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정말로 내 눈 앞에 미스터 커피의 얼굴이 그려지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아니 들어야만 해!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의 뇌에 그리고 나의 눈에 명령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사정했다. 나는 미스터 커피의 대답을 끝까지 들어야만 해 라고


"정신 차려.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건데 이러지?"


그녀는 나의 어깨를 조금 흔들어 댔다. 그녀의 팔에는 나의 정신 속의 것을 알고 싶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듯 나의 어깨를 꼭 잡은 그녀의 손아귀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살짝 뜰 수 밖에는 없었다.


"많이 안 좋은가? 식사가 너무 부실했던 건가......"


내가 완전히 눈을 뜨자 그녀는 내 어깨를 놓아주고는 양팔을 등 뒤로 가지런히 모으고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냥...... 잠시 어지러웠어요. 사실 저 빈혈이 있어요."


"빈혈이라고? 그런 줄을 몰랐어......"


사실 나에게 빈혈이라고는 없었다. 그건 내가 순간에 생각해 낸 핑곗거리일 뿐이었다.


"너...... 다시는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쓰러지지 마라...... 그러면...... 너의 외출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잊지 마라......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니까......"


나는 갑자기 기침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기침을 뱉어 내려는 순간, 그녀의 말이 나의 기침을 막고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 기침이 좀 더 빨랐다면 나는 그녀의 말을 막을 수 있었을까?


"시간은 엄청난 속도를 갖고 있지.


아직 20대 초반의 너는 그걸 알지 못할지도 몰라. 아니, 사실 나는 단언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나도 단언을 할 수밖에 없군. 시간은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게 빠른 거라고. 너무 시간을 믿지 마라...... 너에게 단언해 줄 수 있는 말,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니까. 그럼 몸조리 잘하고. 3-4시간 후에 네 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하나 더....."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서 잠시 서 있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제는...... 네 강좌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맘 편히 갖어도 좋다."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나간 후였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그녀에게 잠시 미안함을 느꼈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서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지는 몰라도 누군가 내 인생을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해 주고 했던 것이 있었던가. 나는 잠시 그녀가 고마웠다. 하지만...... 역시 난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나에게 그녀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오게 만드는지, 난 그 이유를 정말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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