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gry Traveller Apr 11. 2021

6. 나의 상상 속

감옥에 무도회가 열렸다 6

6. 나의 상상 속


‘미에야, 넌 나에게 새 인생을 주고 떠나갔어. 너 지금 어디 있니?’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사소한 일들이 너의 인생을 꾸려나간다고 생각했던 너, 지금은 어디 있는 거니? 감옥 안에서 멋진 무도회를 만들 줄도 알았던 너였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또 다른 무도회를 만들고 있는 거니? 너 날 원망하고 있는 거니? 너의 말처럼 내가 너의 일기장을 거짓으로 꾸며 쓰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이 변했겠지? 아니, 난 너의 인생을 변하게 만들을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교도소장도, 부교도 소장도, 어쩌면 이 지구 상의 모든 이들에게도? 이런 하찮은 나의 행동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자세를 바꾸어 배를 감방 바닥에 깔고는 무릎을 세워 다리를 살랑대면서 나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현재 나의 인생을 쥐고 있는 사람은


그녀다.


나는 토플 공부를 할까 하다가 그녀가 시킨 대로 먼저 조니에게 보낼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내가 조니에게 답장을 빨리 쓰게 하려고 일부러 토플 강좌까지 취소시켜 버리지 않았을까. 이번 답장에는 토플 강사에게 옷까지 빌려 입고 찍은 사진까지 같이 붙여질 예정이었다. 혹시 조니가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잠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니. 편지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내 생일도 축하해 주지 않을래요? 사실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점심에 미역국까지 먹었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이런 날은 무척 설레요. 오늘 오후 수업이 휴강까지 되어서 더 그런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어요. 조니는 착실한 사람이라서 휴강 같은 거에 기분 나빠지고 그런 타입 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가끔 이런

휴식시간을 기다리곤 하거든요. 과 친구는 휴강이라는 말에 무척 분해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애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머리를 잠시 쉬게 해주는 이런 행운들이 자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저 같은 사람들은 3시간의 휴강을 돈과 시간 낭비라며 화를 내는 다른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아. 그렇다고 제가 너무 노는 거를 좋아하는 타입 이라고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그런 시간들을 쉬는 시간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타입 이랍니다. 참. 저번에 말씀해 주신 친구분의 생각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자바를 배운다고 했었죠? 그 친구가? 자바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헤매는 거 같은 거라는 말이 무척 좋았어요. 사실 저도 자바가 어떤 건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사실 ''자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커피인 거 같은데...... 저는 다음 달부터 다른 컴퓨터 언어를 배울 생각이에요. 그런데 일단 졸업을 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배운다는 건 좀 무리겠죠. 천천히 하나하나씩 배워나갈 생각이에요. 조니는 여자 교도소에 관심을 많이 갖는 거 같은데, 맞나요? 여자 교도소의 분위기는 너무 쓸쓸해요. 삭막함도 느껴지고. 그런데 그거 알아요? 많은 죄를 짓고 들어온 사람들도 많이 착하다는 사실 말에요. 교도소 안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요. 생활계획표라도 머릿속에 넣은 것처럼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요. 물론 무서운 사람들도 많아요. 괜히 저만 보면 눈을 흘기는 여자들도 있고. 하지만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 인걸요. 저 여기서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그 애는 소설가예요. 늘 인도 얘기를 들려주는 그 애는 사실 인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인도 얘기를 할 때면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제가 꼭 인도에 가 있는 거 같은 착각을 받는 다니까요. 제 상상 속의 인도는...... 먼저 조니, 생각해 봐요? 인도하면 어떤 영상이 머릿속을 채우죠? 제 머릿속 안의 인도는...... 일단 제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수많은 말소리예요.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말소리들이 제 머릿속을 서서히 채워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뒤따라서 갈색 피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제 머릿속 안을 채워 가기 시작해요.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미소를 짓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소를 쓰다듬기도 하고 어떤 사람 들은 손으로 밥을 먹고 있어요. 여자들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수줍게 눈만 살짝 열고 있죠.”


조니와 펜팔을 하고부터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붙어 버린 것만 같았다. 사실 버릇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나는 내가 버릇이라고 단정지은 그 행동을 이번까지 딱 두 번째 하기 때문이다. 조니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나 아니면 내가 조니에게 답장을 쓴 후 에면 나는 나만의 세계에 빠져 들기를 원한다.


그렇다

나만의 세계.


사실 나는 '나'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를 꺼려하는 타입이다. 나는 감히 '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내가 혹은 나는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면 나의 이 황당한 발언을 듣는 그 누군가는 대뜸 나에게 도로 이렇게 되물을 것만 같았다 '나? 나라니? 나라는 말이 뭔데? 네가 지은 말이야? 나라니. 정말 이상한 발음인 걸.'

나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질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나'라는 말로 표현하면서도 그들이 자기 자신을 '나'라고 지칭했는지 이미 까맣게 잊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보통 인간들에게서 나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인



나는 왜 나를 표현할 때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 나도 '나'라는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조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녀 때문인지도...... 나는 '나'만이 주인공인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 일단 감방 바닥에 누워서 감방이라는 공간을 잊기 위해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감은 눈 위에 왼쪽 팔로 덮개를 씌운다. 왼쪽 팔로 덮개를 씌울 때면 나는 무척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왼쪽 팔의 덮개는 그 날의 공간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왼쪽 팔로 감은 눈을 지나치게 눌러버린다면 그날의 30분 간의 '나'만의 세상에 내가 들어서지 못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너무 가볍게 눈을 가린다고 하면 나는 내가 차갑고 딱딱한 감방 안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바로 기억해 버릴 것이다. 일단 눈을 감으면 딱딱하고 차가운 감방 바닥부터 떠나보내야 했다. 바닥의 그 축축한 느낌에서 일단 벗어나야 그 날의 상상이 성공리에 끝나게 되는 것이다. 적당히 힘을 주어서 왼쪽 팔로 감은 눈덩이 위를 누르고는 나는 일단 헛기침을 한 번 시작한다. 길고 강렬하게. 그런 헛기침은 마술사의 유연한 팔짓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공연장을 제압할 수 있는 마술사의 신비로운 팔짓. 나는 헛기침을 내뱉은 동시에 바로 상상의 나라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라라'로 되어 있다. 미에의 소설 속에서처럼 라라는 감방 안에 머물고 있지 않다. 라라는 주로 뉴욕시티를 활보하고 다닌다. 상상 속에서 라라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삼인조 그룹과 동거 동락을 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도 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그릴 수 없다. 나는 라라를 어쩔 수 없이 고아로 만들어 버릴 수 밖에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한국에서 그럭저럭 지내온 고아 라라는 18세 때에 드디어 그 삼인조 그룹의 방한 콘서트 장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는 맥스와 눈이 마주친다. 라라의 손에는 이미 슈트케이스가 들려 있고 맥스는 라라와 이미 약속이나 한 것처럼 라라를 그들의 전용기 안으로 초대한다. 라라는 그들의 삼층집 중 이층에서 지내게 된다. 라라의 방은, 내가 전에 보았던 미국 영화 속의 여주인공의 방을 그대로 빼닮아 있다. 나의 상상은 꼭 '키다리 아저씨'의 내용을 연상시키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태어난 ‘쥬디’와 별다를 수 없다는 걸 안다. 따라서 그 삼인조 그룹의 방도 라라의 방과 다를 바가 없다. 삼층집에 있는 방 3개는 구조도 가구도 이불 색깔도 모두 똑같다. 라라의 취미는 바다색 오픈 카를 몰고 해변을 달리는 것이다. 뉴욕시티에 바다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지만 어쨌든 라라가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갈 때 그 길목에는 10킬로 정도 펼쳐 있는 푸른 바다와 낭떠러지만을 사이에 둔 길고 긴 해변도로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가파른 해변도로를 달릴 때면 라라는 항상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면서 오른 팔만을 가지고 아슬아슬한 운전을 즐긴다. 그렇다고 라라가 음주 운전을 하거나 쾌속 운전을 즐긴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라라가 그 가파른 도로를 가로지를 때면 그 도로에는 어떤 차도 라라를 방해하지 않는다. 라라는 사막을 닮은 그 길의 고독을 홀로 질주한다. 그런 고독 속에 있다면 누구나 한 손은 턱을 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특별한 고민에 빠져 있지도 않는 라라는 그 길을 달릴 때면 늘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한 속으로 턱을 괜 채, 자신도 모르게 질주에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면 팔이 저려 와 나는 왼팔을 바닥으로 살며시 내려 현실 속으로 돌아와야 했다. 감은 눈으로도 진짜 세상은 너무 눈이 부셨다. 그 눈부심은 그리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빛이 눈 속을 스며들면서 나는 바로 차가운 감방 바닥을 떠올리게 되고 딱 붙여버리고 싶은 눈을 억지로 떠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만약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뉴욕시티라면, 내가 좋아하는 그 상상 속의 집이라면 나는 아마 영원히 눈을 감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뜬눈을 하면 나는 우선 조니의 답장과 내가 조니에게 쓴 편지를 정성껏 접어 놓고 책을 펼친다. 오늘 목표는 10장이야. 나는 독학사 시험을 위한 영어 교재를 펼쳐놓고 무조건 외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토플 수업을 듣고 영어회화를 듣고 해도 영어 문법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외우기였다. 나는 머릿속 안에 감방 안에서 배운 지식을 집어넣는 게 좋았다. 이렇게 한 자 한 자 한 문장 한 문장 집어넣으면 내가 영원히 잊고 싶어 하는 기억을 스르르 몰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했다. 오늘 외울 단어는 10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잊고 싶어 하는 기억 중의 10 단어를 잊어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라고.



이전 06화 5. 가끔은라라가 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