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이야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러너이기도 하다. 그는 전업 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이후 러너가 되었다.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장사를 했다는 것을 나는 이 수필을 통해 처음 알았다. 여하간 장사를 접고 소설가로 살기로 결심하고서 그는 체력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며 그가 부딪힌 첫번째 문제는 그 자신이 아주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너무 숨이 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담배를 끊었다. 세상에. 일단 여기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해서 일약 베스트셀러를 썼는데, 그리고 체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달리기에 방해가 되어서 담배를 끊었다니. 꼴초였는데!
달리기로 했으니 그는 꾸준히 달렸고, 꾸준히 달렸으며, 꾸준히 달렸다. 마라톤도 나갔고, 계속 달렸고, 계속 마라톤도 나갔다. 그리고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것에도 도전한다. 그건 100km를 달리는 경기다. 100km. 100km다. 그리고 완주한다. 심지어 100km를 단 한번도 걷지 않고, 아주 느릴 지라도 계속해서 달려서 완주했다고. 그는 이 100km를 계속해서 달리고 싶었다고, 결코 걷고 싶지 않았다고, 달려서 완주하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달렸다고 한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스스로를 '달리는 사람,' 즉 러너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을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달리기를 한 번도 권하지는 않는다. 자신으로서는 달리기가 맞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이야말로 각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는 태도다. 그러나 그 본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주 치열하고 성실하게 한다. 전혀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할까, 나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하루키는 달리는 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달리는 사람으로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말이지, 몹시 달리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평생 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고, 계속해서 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그게 정말 '달리기를 하는 일'의 의미에서도 그렇고,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의 의미에서도 그렇고. 그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이 소설가가 그러했듯이 나도 정말 열심히 달린 이후에 달리기가 내게 갖는 의미를 나 나름대로 정의해볼 수 있게 될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