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만에 조리원에서 일찍 나오기로 결정했다. 일정 부분의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애당초 24시간 모자동실을 선택한 나는 조리원에서도 싹이를 계속 데리고 있었다. 그게 가능한 조리원으로 선택했었다.
다만 원래는 받으려고 결제해둔 마사지가 있었는데, 임신 후기에 아이를 케어할 지침을 정하면서 마사지도 취소했었다.
조리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니 크게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은 명확하다.
1. 타인이 시간 맞춰 밥을 해준다.
2. 청소도 해준다.
3. 빨래도 해준다.
4. 유축 깔때기 및 젖병 소독까지 모두 해준다.
5. 이것저것 많이 일부러 물어보러 다니면서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 (아이 안는 법, 속싸개 하는 법 등)
다른 것보다 4번이 진짜 일이기 때문에 제일 편하다고 생각했다. 밥은 대충 먹으면 되고 청소도 집이면 루틴 따라 적당히 하면 되고 빨래는 워시타워가 하기 때문에 아주 높은 퀄리티의 살림은 못해도 살림 자체가 그리 힘들 것 같진 않은데 유축 깔때기는 내가 수십개 쌓아두고 쓰는게 아니고 젖병도 매번 관리하기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했다.
1. 사실 24시간 모자동실 하면서 조리원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나는 좀 유난떠는 사람으로 비치게 되고, (남들이 날 유난떠는 사람으로 보건 말건 그건 나로서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지만,) 아이를 먹이는 일에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내 방침은 (하쌤 말씀 따라) “먹는 양은 아이가 정한다”이고 아이가 먹고 싶은 양은 그때그때 다르다. 내 아이는 계속 모자동실 하면서 위를 많이 늘린 상태가 아니라 적게 자주 먹는데, 분유 먹이는 아이들 기준으로는 너무 자주 먹는다. 아이가 분유 조금 먹고 버리면 “이것밖에 안 먹었네?“ 식의 응답과 다음엔 조금 덜 주겠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아이가 늘 분유를 남기면 낭비이니까 조금 덜 받아오는게 맞는데, 직수로 아이가 먹은 뒤 어떤 날은 20을 먹고 어떤 날은 40을 먹는다. 나는 아이가 분유를 남기고 버리더라도 늘 40을 받아오는 것이 좋은데 몇 번씩 20만 먹고 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 20을 주시려고 한다. 게다가 분유를 자주 받으면 젖병도 그만큼 늘어나서 조리원 입장에서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늘어나고 어쩌면 손실도 늘어난다.
나는 아이를 위해 유난떠는 것이 아이가 배고픈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 아이가 더 먹을 때가 있으니 그냥 40주세요! 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 순간 오가는 미묘한 불편함이 있다. 집이었고 혼자 아이를 돌본다면 그런 것 신경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나는 병원에서 아이가 몸무게를 반드시 증량해야 하고 증량시키지 못하면 위험하다는 소견을 들은 뒤였기 때문에 아이가 충분히 먹고 싶은 만큼 자주 먹는 것에 몹시 예민한 상태였다. 남는 분유 얼마든지 버려도 상관 없으니 부족한 상황은 피하고 싶은데 거기서 한번 불편해야 하는 것. 이것이 나를 난감하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2. 내가 공부하고 세운 방침과 조리원에서 경험적으로 쌓여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간주되는 방침이 차이가 있을때, 나는 초보 엄마니까 그분들의 견해가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준비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때 불편했다.
가령 아이는 당연히 속싸개로 싸두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반드시 그렇지 않으니 아이가 밤에 좀 깨더라도 풀어 놔도 괜찮고 밥 먹을때 좀 번거로워도(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가끔은 풀어주는게 좋은데 그럴때 한소리씩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 같은 일.
가끔은 기저귀 풀어놓고 편하게 해주다가 채워주고 싶은데 방에 잠깐 들어온 누군가가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일.
등등.
3. 나는 조리원에 계신 분들께 속싸개 싸는 법도 배우고 아이 관리하는 법도 배우는 입장이지만 이모들마다 속싸개 하는 법은 다 다르고 아이 트림 시키는 법도 다 다르듯, 여러가지 배우고 내가 결국 선택하는 문제이며, 나도 이 부분을 준비하고 계획한 게 있는데 그것과 어긋나면서 듣는 이야기에 대한 불편함. 스트레스까진 아니고 정말 불편함 정도가 있었다.
4. 이건 조리원의 단점이라기보다 시스템과 내가 부딪히는 난점. 이미 병원에서부터 24시간 모자동실을 해서 그런지 아이를 남들 손에 맡기기 싫은 마음이 컸다. 아무리 친절하고 나이스하다고 해도 조리원에 계신 분들에게 내 아이는 일로 여겨지기 마련이니까. 신랑이 와있을때 잠깐 마사지 받으러 다녀왔고 뭐 프로그램 하나 참여했는데 그때도 신랑이 없었으면 프로그램과 서비스 마사지를 포기했을 것이다.
아이가 신생아실에서 잘 대접받는다고 해도 아이를 그곳에 맡기기는 싫었다. 내가 모두 케어하면 그럴 걱정은 없다.
기본적으로 대부분 나이스하시기 때문에 불쾌할 일도 없고 기분 상할 일도 없었다. 다만 조금 불편한 것이다.
여하간 퇴소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1의 이유였다. 나 속편하게 아이 맞춰 먹이고 싶었다. 엄마 집에 2주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선 엄마 집으로 왔다. 엄마가 많은 걸 돌보아 주고 도와 주지만 젖병 세척과 유축 후 세척 같은 일은 바로 해야할 때가 많아서 더 피곤하고 번거로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조리원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건 분유 버리더라도 아이를 맘 편히 케어하기 때문.
“그럼 몸조리는 언제 해?” 라는 말들 많이 들었다. 조리원 조기퇴소 결정했을때 그 안에서 특히. 나는 약 33년 살았고 앞으로의 일을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지만 이제 태어난지 일주일인 아이는 나밖에 없다고. 그런 생각이다. 어떻게든 나도 돌보고 아이도 돌볼 수 있고 그게 지금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나라고 왜 못할까? 도와주는 신랑도 있고 엄마도 있는데. (원한다면 산후도우미도 있을 텐데.)
다행인 건 이미 아이와 24시간 붙어있어왔고 아이를 내가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를 배워왔다는 것.
아직 수술 부위가 편하지 않지만 처음 병원에서 아이 돌보던 며칠에 비하면 몸도 많이 수월해진 편이다. 대부분 아이 먹이고 아이 잠들면 설거지 하고 나도 잔다. 유축할 때 남는 시간에 일기를 쓴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