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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Nov 22. 2023

마침내 결정의 날

익숙한 통증과 익숙한 가슴 위의 하얀 점. 한 달 반 전 모유관리사가 이야기했던 그대로였다. 유두백반은 몰래 온 손님처럼 소리소문없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사실, 가슴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괴롭힌 건 체중계였다.


50일까지 꾸준히 늘던 아이의 몸무게가 늘지 않고 있었다. 배부른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던 이전과 달리, 아기는 간신히 배고픔만 달랠 정도로 먹고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말 못 하는 아기의 단호한 거부였다. 막힌 유선이라도 뚫어 놓으면 조금이라도 더 먹일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두라는 모유관리사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치료법을 찾는 데 혈안이 된 건 그래서였다.


유두백반 치료법을 검색하다 맘카페에서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다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소아과에서 가슴 치료를? 의아해하며 동네 소아과 전화번호를 눌렀다. 

“산부인과로 가세요.”

짧고 굵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산부인과에서 가슴 치료를? 그래도 소아과보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다.

 

“유방외과로 가셔야죠.”

이번에도 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유방외과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이미 동네 유방외과를 찾아봤지만, 여자 의사가 진료 보는 곳을 찾지 못한 터였다. 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에 가고 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듯, 가슴이 아프면 유방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게 당연했지만 조금 남은 수치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고민하다 알아둔 유방외과에 전화를 했는데, 이번엔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 

“저희는 유방암 전문 병원이라 유구염 진료는 보지 않습니다.”

감기 전문 병원이라 중이염 진료는 보지 않는 이비인후과가 있던가? 다리 골절 전문이라 팔 골절 진료는 보지 않는 정형외과는? 황당했지만 진료를 보지 않는다니 별 수 없었다. 차를 타고 30분 거리의 유방외과에 다시 전화했다. 


“유두백반이요? 처음 들어보는데… 원장님께 여쭤볼게요.”

몇 분쯤 기다리자, 간호사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저희 병원에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시네요. 다른 병원에 전화해보세요.”

“벌써 네 통째 건 전화예요. 소아과, 산부인과, 유방외과 전부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전 어디로 가야 하죠?”

“글쎄요. 원장님께 다시 여쭤볼게요.”

몇 분 후 다시 듣게 된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병원에 오셔도 달리 해드릴 게 없으시대요.”

아파도 그냥 둬야 하는 건지 재차 묻자, 모르겠다고 했다. 간호사도 난감한 눈치였다. 


처음 봤던 댓글로 다시 눈을 돌렸다. 다행히도 치료받았던 소아과의 상호가 적혀 있었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전화를 걸자 드디어 치료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모유수유의사회 정회원인 의사가 하는 곳이라 가능하다고 했다. 모유수유의사회 정회원? 모유수유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라는 뜻인가? 그러면 내 고민도 같이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곧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기가 먹으면서 막힌 데를 꽤 뚫어놨네요. 제가 따로 뚫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음에도 같은 증상이 생기면 아프시겠지만 젖을 계속 물리세요.”

같은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준비한 질문지를 꺼냈다. 모유수유 총시간과 분유보충량, 태어날 때부터 아기의 몸무게 변화를 차례로 이야기했다. 

“체중이 적게 늘고 있긴 하네요. 그런데 말씀만으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워요. 시간이 되시면 아기를 데리고 매주 병원에 오세요.”


매주 아기를 데리고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동안 아기는 점점 덜 먹고, 더디게 컸다. 속이 타들어가는 사이, 일이 벌어졌다.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수유쿠션에서 원하는 만큼 모유를 먹이고, 수유시트에서 모자란 분유를 보충하던 생활을 더는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결정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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