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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Nov 22. 2023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100일이 되면 아기가 결정할 거예요.”

“뭘 결정하죠?”

“모유를 먹을지, 분유를 먹을지요.”

모유와 분유를 함께 준다는 내 말에, 간호사는 말했었다. 다른 질문거리에 묻혀 잊었던 한 마디가 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0일이 가까워오면서 모유수유를 마치고 수유시트에 눕히면 아기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몸이 커져서 수유시트가 불편한가?’ 

무릎 위에 앉혀 먹여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배를 쑥 내밀며 연신 발차기를 하던 아기는 아랑곳 않고 분유를 먹이는 엄마를 향해 울음을 터뜨렸다. 분유 줄 시간이 되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번에도 안 먹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싫다는 아이를 어떻게 먹이나, 안 먹이면 또 그만큼 안 클 텐데 억지로라도 먹여야 하나. 모유를 먹이는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기가 분유를 거부하는 것 같은데?”

‘분유 거부’라는 말을 처음으로 꺼낸 건 주말에 아기를 보러 온 시어머니였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플 테니 남편과 나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한 후, 어머니는 30분 넘게 아기와 씨름하며 분유를 먹였다. 기진맥진한 아기는 방에서 나온 엄마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아기가 선택한 게 분유가 아니라 모유라니. 젖만 물리면 자지러지게 울다 젖병만 물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꿀꺽꿀꺽 분유를 삼키던 아기였다. 그런 아기가 모유를 선택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사실, 조짐은 이미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기에 외면했을 뿐. 


“아기가 모유를 좋아하나봐요. 분유를 주면 젖병을 몇 번 질겅질겅 씹다가 미간을 확 찌푸려요.”

산후도우미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이었다. 

“에이. 설마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 그때 좀 더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는데… 


이별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유두백반으로 진료를 받고 오던 길, 유난히도 길이 막히던 차 안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게 더는 아기를 위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주위에서 말려도 모유수유를 계속 해 왔던 건, 모유수유가 조금이라도 아기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조금만 검색해봐도 우수수 나오는 모유수유의 장점들. 거기엔 내가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면역물질이 잔뜩 등장했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기가 크질 않는데 그 물질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엄마를 믿고 이 세상에 온 아기를 어떻게든 키워야 했다. 모유수유는 서서히 줄이고, 아기가 빠르게 큰다는 분유를 점차 늘리기로 마음 먹었다. 


돌아와서 모유수유를 하다 남편을 불렀다. 

“휴대폰 좀 가져다줘. 아기랑 나 사진 찍게.”

“뭘 찍게?”

“젖 먹이는 거. 이제 곧 마지막일 것 같아서.”

젖을 먹고 있는 아기를 한 손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엄마가 몇 번이나 찍어주겠다던 기념사진을 한사코 거절했었다. 사진 속 아기를 몇 번이나 바라보면서 실감했다. 우리의 모유수유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이유도 모르게 슬퍼지려 할 때는 단유파티를 떠올렸다. 

“와인이랑 치즈도 사고, 막걸리도 종류별로 왕창 사자! 엄청 매운 떡볶이랑 야채곱창도 사고, 그날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진탕 마시는 거야!”

남편에게 말하면서 으하하 웃었다. 웃음 뒤에는 쓴맛이 났지만. 그러던 찰나, 아기가 선택을 해버린 거였다. 분유도 아닌 모유를. 


분유의 도움없이 모유만으로 아기를 배불리 먹이기엔, 내 모유가 턱없이 모자랐다. 모유를 적당히만 먹이고 바로 분유를 주는 리듬에 익숙해진 후로는 모유량을 늘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작게나마 꾸준히 늘던 모유가 더 이상 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정도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쓰고 있던 모유투쟁기도 이제 슬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유는 더 이상 내게 투쟁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혼자 믿었다. 아기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조리원 있을 때부터 다른 산모들처럼 세 시간에 한 번씩 유축할 걸. 조리원 나와서라도 좀 더 부지런히 먹일 걸. 모유량 늘고 있을 때 만족하지 말고 더 늘려볼 걸… 후회가 나를 에워쌌다. 며칠은 후회에 갇힌 사람처럼 지냈다.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다. 시간을 붙잡아서라도 아기가 먹고 싶다는 걸 먹이고 싶었다. 


그때, 내가 썼던 문장이 생각났다. 


내 아기에게 주고 싶은 것들의 목록에 하나쯤 추가되어도 좋은 것. 나는 모유수유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두 문장이 나를 후회의 구덩이에서 꺼내주었다.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건 모유 말고도 너무나 많았다. 아기는 한 살이 되고, 두 살이 되고, 열 살, 스무 살도 될 것이다. 모유와 분유를 먹다가 이유식도 먹고, 밥도 먹고 빵도 먹을 것이다. 기나긴 아기의 생에 비하면 생후 80일의 분유는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아기 키우면서 몰라서 못 해주는 게 얼마나 많겠어. 그때마다 이렇게 무너지고 힘들어할 거야?”

자책 중인 내게 남편은 말했다. 또다시 떠올렸다. 아주 작은 부분. 모유도, 지금 겪는 어려움도 아주 작은 부분.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맞춰주고 싶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노력을 시작했다. 하루에 한 컵도 마실까말까 한 물을 1.5리터씩 마신다. 내일부터는 2리터를 마실 생각이다. 분유로 대신하던 새벽수유를 모유로 바꿨다. 새벽 대여섯 시에 일어나 한 시간을 수유하고 나면 잠이 싹 달아난다. 오지 않는 잠을 부르는 대신, 유축기를 가지고 나와 부지런히 젖을 짠다. 


젖을 짜면서 생각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극적일까? 뭐 하나 한 번에 되는 게 없을까? 표준점수 없이 등급만 적혀 있던 수능 성적표. 한두 문제 차이로 미끄러진 등급을 받고 생각지 못한 대학에 가야 했던 열 아홉. 대학교 수업이 끝나고 중앙도서관에서 기출문제를 풀던 스무 살을 지나서야 다른 대학의 신입생이 되었다.  


처음 본 라디오PD 공채시험에서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1박2일 합숙까지 하며 미션하듯 본 면접의 결과는 불합격. 그 해 공채에서 라디오PD 합격자는 0명이었다. 채용공고에 적힌 ‘모집인원 0명’이 한 자리 수가 아니라 진짜 0명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돌고 돌아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닌 책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도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기회는 한 번에 오지 않았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유아책을 만드는 곳이었다. 업무시간엔 캐릭터에 입힐 옷 디자인을, 스티커북에 들어갈 말랑한 스티커 재질을 골랐다. 퇴근 후엔 아무도 봐주지 않을 인문서 기획안을 썼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야 원하던 책을 만들게 되었다. 


차곡차곡 준비했던 결혼을 앞두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감염병이 돌았다. 코로나19라는 낯선 감염병은 잠잠해질 만하면 다시 활개를 쳤다. 날짜를 세 번 바꾸고 네 번 만에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어.”

뭐든 한 번에 척척 해내는 친구의 한 마디가 아프게 와닿던 시절을 지나, 생각은 수유쿠션 앞으로 돌아왔다. 


‘포기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 

내 앞에 선 생각이 말해주었다. 수능을 망쳤을 때도, 처음으로 공채시험을 맞닥뜨렸을 때도, 생각지 못한 부서에 배정받았을 때, 결혼을 앞두고 감염병이 닥쳤을 때도 적당히 받아들이는 대신 맞서는 편을 택하지 않았느냐고. 늘 맞서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관되게 맞설 수 있다는 건 내가 가진 미덕이 아니겠느냐고. 


모유수유. 결국 못 하게 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주고 싶다. 내일 아기의 몸무게가 늘지 않고, 아기의 성장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면 백 번이고 포기하겠지만 일단 오늘은 노력하고 싶다. 오늘은 다행히도 아기가 조금 자랐으니까. 아기가 원하는 걸 주고 싶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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