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단잠 자던 아기가 몸을 떨더니 눈을 번쩍 뜬다. 입 안에 고인 젖을 몇 번 삼키던 아기는 이내 스르르 눈을 감기 시작한다. 자동 셔터문처럼 빠르게 닫히는 눈꺼풀.
“안 돼!”
뒤늦게 외쳐보지만, 이미 늦었다. 수유쿠션 위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잠든 아기의 입술 끝에 얼핏 스치는 미소.
‘오늘도 네가 이겼다.’
씁쓸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여민다.
모유수유매니저가 다녀간 후, 수유시간에 늘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가 멈췄다. 대신 뮤지컬 <영웅> 속 주인공을 빼닮은 굵직한 목소리가 안방을 가득 채운다. 젖만 물면 잘 준비를 시작하는 아기를 깨우기 위해서다.
“산모님, 무슨 일 있어요?”
별안간 치는 천둥처럼 큰 목소리를 듣고 산후도우미가 안방으로 달려온다.
“아니에요. 아기가 자려고 해서…”
멋쩍게 웃으며 산후도우미를 보낸 후, 다시 배에 힘을 모은다. 다정한 엄마 목소리로는 아기의 잠을 절대 깨울 수 없다. 오히려 아기에겐 잘 자라는 자장가로 들릴 터. 한바탕 수유를 끝내고 나오면 어깨보다 더 아픈 건 목이다. 찬물을 들이키며 갈증을 달랜다. 관객은 잠들어가는 아기뿐인 뮤지컬. 여러 번의 묵직한 실패 끝에 찾은 나만의 노하우다.
사실, 아기가 졸기 시작한 건 오래 전부터였다. 그동안 불편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우느라 조는 걸 잠시 잊었을 뿐.
“젖만 물면 아기가 자는 척을 해요.”
수유는 잘하고 있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는 내게 산후조리원 실장은 말했다.
“자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젖 빠느라 힘들어서 잠든 거예요.”
그날 이후, 젖을 물리자마자 눈 감는 아기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수유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은 ‘수유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먹다 잠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깨워 먹이셔야 돼요.”
조리원 퇴소 후, 수유시간이 되자 집 안 가장 구석진 곳으로 숨어든 내게 산후도우미가 다가왔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는 눈을 감은 아기의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놀란 아기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아기가 잠든 상태라면 젖을 물고 있어도 수유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빨대를 가만히 물고 있는다고 해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젖만 물면 자는 게 습관이 됐네요. 데려가서 잠 좀 깨워 올게요.”
그는 이내 눈 감은 아기를 안고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큰 소리를 내며 잠을 깨우길 여러 차례. 눈이 말똥해진 아기를 다시 안아 수유쿠션 위에 눕혀놓았다. 눈을 뜬 아기는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젖을 준 30분 중 제대로 된 수유시간은 고작 10분. 잠을 깨우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산후도우미가 있을 때는 그가 아기를 깨우고 나는 수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퇴근한 후였다. 한 손으로 젖을 물리고, 다른 한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아기의 귓불을 만지고, 척추를 따라 허리를 주물렀다. 주먹을 꼭 쥔 손과 팔다리를 꾹꾹 누르고, 그래도 젖을 빨지 않으면 발바닥을 간지럽혀 정신을 차리게 했다. 잠들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도 걸었다. 사정사정해도 결국엔 감기고 마는 아기의 눈. 늦은 새벽, 자려고 발버둥치는 아기와 나란히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깨워야 한다. 나는 이 아기를 먹여야 한다.
다른 엄마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검색창에 ‘모유수유 잠 깨우기’를 검색하자, 나와 같은 고민을 거친 엄마들의 경험담이 줄줄이 나왔다. 아기 귀를 쭉쭉 펴듯 만져준다는 엄마부터 코 만지는 걸 싫어하는 아기의 콧잔등을 쓸어준다는 엄마, 손수건을 적셔서 아기 얼굴을 닦아준다는 엄마까지.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얼굴에 물을 뿌린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지만, 실제로 엄마들뿐 아니라 많은 전문가가 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모유수유전문가들의 유튜브를 찾아봤다. 이 중 귀가 솔깃해진 방법은 아기가 잠들려고 할 때 재빨리 아기 입에서 젖을 뗀 후 아기를 침대에 눕히라는 것. 엄마 가슴에서 떨어져나오면 아기는 금세 눈을 뜬다고 했다. 아기가 눈을 뜨면 다시 수유쿠션에 눕히고 수유를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날 바로 수유의자 옆에 아기침대를 두고 따라해봤다. 아기 눈에서 흰자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다 지는 해처럼 검은 눈동자가 눈 밖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때. 그 찰나를 포착해 가슴에서 아기를 떼어내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 웬 걸. 우리 아기는 그 길로 깨지 않고 쭉 잤다. 편히 재워줘서 고맙다는 듯 입가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산모님이 내 아기의 전문가가 되어야죠.”
조리원 원장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나중에는 산모님들마다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방법을 써도 아기가 계속 잔다는 말에, 산후도우미가 들려준 이야기도 생각났다. 어떤 산모는 울컥하는 마음에 젖을 슬쩍 빼려고 했더니, 아기가 아쉬운지 갑자기 젖을 빨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아기과 밀당하듯 매번 젖을 뺐다 물리기를 반복하며 수유한다고 했다.
한 쪽 가슴 수유하는 데 10분, 잠들려는 아기의 기저귀를 가는 데 10분, 다른 쪽 가슴 수유하는 데 10분, 중간에 아기가 또 잠들면 노래 부르고 마사지하며 깨우는 데 20분, 처음 수유했던 쪽 가슴을 다시 수유하는 데 또 10분. 모유수유를 하는 데만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아기를 트림시키고 분유를 탄 후, 먹이고 다시 트림시키면 한 시간 반이 훌쩍. 한 시간쯤 숨 돌리고 나면 곧장 다음 수유시간이 다가오곤 했다.
숨 돌릴 틈이 한 시간이라도 있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유양은 조금씩 늘어, 수유시간이 다가오면 젖이 부풀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수유를 시작하지만, 아기가 다 먹지 못하고 잠들면 수유 후 유축기로 남은 젖을 짜내야 했다. 온통 젖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꿈에도 젖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