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락 Nov 22. 2023

모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날, 스스로 졸업했다. 

세상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말고도 수많은 학교가 있다. 퇴사학교에선 회사와 잘 이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인생학교에선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모유수유를 잘하고 싶다면? 모유학교에 입학하면 된다.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하느냐고?  그럼! 세상에는 무지하게 많은 모유학교가 있다. 모유수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겐 보일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 동네에 이런 데가 있었어?’ 하고 눈길을 멈추게 될 것이다. 드라마 <무빙>에 나오는 일상 속 초능력자들처럼 모유수유를 돕는 곳은 동네 구석구석에 포진되어 있다. 화려한 간판들 속에 숨죽이고 있다가 도움이 간절할 때 ‘모유’라는 두 글자를 간판에서 반짝이며 다가온다. 


문자도 마찬가지다. 매일 수십 통의 광고문자를 받지만, 오늘 어떤 내용의 문자를 받았는지는 기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문자 안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그것’을 발견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문자 속 몇 줄이 나를 위기에서 건져줄 동아줄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보건소에서 온 모유수유 클리닉 문자가 내겐 그랬다. 


“그거, 한 번만 가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요?” 

“여러 번 가야 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몇 주씩 가야 되는 거래요?”

“매주 수업을 하고, 혼자서도 수유를 잘할 수 있을 때 졸업을 시켜준대요.”

산후도우미의 말이었다. 이전에 일했던 산모도 모유수유 클리닉을 졸업했다고 했다. 그 곳은 ‘클리닉’이라는 이름을 단 모유학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10년 만에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아이와의 동반입학. 입학식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설렜다. 


학교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운전을 못 하는 엄마가 갓난쟁이와 차를 타고 외출하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다. 기저귀와 손수건, 쪽쪽이와 장난감을 넣은 가방을 챙기고, 외출복을 입히고, 이동형 카시트를 꺼내 아기를 앉히고, 시트 사이사이의 틈에 수건을 채워 넣어 아기를 안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한다. 블랭킷으로 카시트를 덮은 다음, 가방과 카시트를 들고 집 밖으로 나온다. 택시 뒷좌석에 카시트를 장착한다. 


목적지가 초행길이라면 이마에도 눈이 달린 사람처럼 아기를 돌보는 틈틈이 앞을 보며 길을 설명해야 한다. 모유학교 가는 길을 안내하다 길을 잘못 들었다. 낯선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가는 동안 한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아기에게 쏟아지는 햇빛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 칭얼대는 아기를 도닥였다. 산 넘고 물 건너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온 것 같았다. 고작 차로 20분이 조금 넘는 거리였는데.  


모유수유 클리닉에 왔다고 하자, 보건소 직원이 사무실에 딸린 방으로 안내했다. 좌식의자와 수유쿠션 몇 개가 놓인 작은 방. 오늘 학생은 아기와 나 둘뿐이었다. 

“어떤 점이 어려워서 오셨나요?”

“아기가 젖을 물자마자 잠들어서 많이 먹일 수가 없어요. 포기하고 분유를 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잘 먹고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모유를 먹었나요?”

“아니요. 병원에서는 수유콜을 두세 번밖에 못 받았고, 그마저도 수유하는 법을 몰라서 제대로 못 물렸어요. 조리원에서도 분유를 더 많이 먹었고요.”

“분유를 같이 먹는 아기들한테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제네요. 우선 젖을 한번 물려봅시다.”


낯선 수유쿠션 위에 아기를 눕히고 주섬주섬 가슴을 꺼냈다. 외출준비를 하느라 끼니를 거른 아기는 입을 더듬거리며 힘차게 젖을 물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우리 아기가 아주 똑똑이네. 자는 것마냥 눈 감고 있으면 조금 있다 분유를 준다는 걸 아는 거예요. 모유는 온힘을 다해 빨아야 나오지만, 분유는 조금만 힘을 써도 쭉쭉 나오거든요. ‘젖 먹던 힘까지’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똑똑이, 선생님이랑 잠 깨서 먹자.”


바닥에 아기를 눕힌 선생님이 아기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아기가 자면 기저귀를 한 번 갈아주세요. 몸을 시원하게 해주기만 해도 잠이 잘 깨거든요. 그래도 안 깨면 이렇게 스트레칭을 시켜주시고요.”

눈을 뜬 아기에게 다시 젖을 물렸다. 

“한쪽 손으로 아기 뒷목을 단단하게 잡으세요. 그런 다음, 아기 뒷통수를 힘 있게 엄마 젖 쪽으로 당기세요. 수유할 때도 손가락에 힘을 주고 뒷목을 받쳐야 아기가 중간에 젖을 빼지 않아요.”

“이렇게 세게 잡고 있어도 되나요?”

“엄마 생각보다 좀 더 단단하게 잡고 있어야 제대로 지지해줄 수 있어요.”

늘 하던 대로 젖을 몇 모금 먹다 얼굴을 뒤로 빼려던 아기가 움찔했다. 눈을 들어 의아하다는 듯 엄마를 쳐다보더니 다시 젖을 빨기 시작했다. 


“아기가 입을 ‘오’ 하고 작게 벌리네요. 이렇게 얕게 물면 젖도 잘 안 나오고, 유선염이나 유구염이 와서 엄마가 고생할 수 있어요. 아가야, 선생님이랑 재밌는 놀이 해볼까?”

아기를 받아 안아 방바닥에 눕힌 후, 선생님의 두 번째 손가락에 손수건을 감았다. 손가락으로 아기의 아래턱을 톡톡 치니 아기가 입을 벌렸다. 

“보이시죠? 이렇게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려서 젖을 물어야 돼요. 분유는 입을 작게 벌려도 먹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분유 먹는 아기들은 입을 크게 벌리는 습관이 안 돼 있어요.”


“젖을 물린 후에는 엄마 자세를 정돈하세요. 지금 몸이 왼쪽으로 틀어졌죠? 이런 자세로 계속 수유하면 엄마 몸이 이 모양으로 굳어져요.”
“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을 툭 풀려고 노력하세요. 어깨랑 뒷목이 뭉치면 나중에 풀기 정말 힘들어요.”

가르침을 받으며 젖을 물렸다 빼기를 여러 번. 수업이 끝날 때 즈음, 장장 한 시간 동안 모유로 배를 채운 아기는 기분 좋게 잠들었다. 


“오늘 말씀드린 거, 다 잊어버리셔도 돼요. 마음을 즐겁고 편하게 먹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 모유도 잘 나와요. 오늘 잘 안 되는 건 다음 주에 또 해보면 되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선생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다독여주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마음 먹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음 주 수업은 없다고. 


매일 아기와 짐을 챙겨 등교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와 함께 해도 진땀 나는 등굣길이었다. 산후도우미가 가고 나면 혼자서는 한 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카시트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다음 주 과제를 꼼꼼이 적어주는 선생님에게 차마 오늘이 마지막이라 말하지 못했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음 타임 학생들이었다. 딸기가 그려진 헤어밴드를 한 아기와 아기띠를 한 엄마. 

“벌써 다음 수업시간이 다 됐네. 어서 들어와요.”

부랴부랴 짐을 챙기는 내게 선생님은 말했다. 

“아기 안은 엄마는 뭐든지 천천히 해야 돼요. 우리는 수업하고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차근차근 짐 챙겨 나가세요.”

등 뒤로 익숙한 듯 안부를 묻는 학생과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기 일주일 사이에 많이 컸네. 이리 오세요. 선생님이 마사지해줄게.”

아기띠를 메고 걸어서 등교할 수 있는 학생이 부러웠다. 


다음 날 아침,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각 잡고 수유를 시작했다. 

“벌써 그만 먹으려고? 안 되지. 엄마가 꼭 잡아줄 테니까 더 먹자.”

아기 뒷통수를 꽉 잡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이 무색하게도 수유를 거듭할수록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아기의 입장은 다를 테지만, 조금 덜 먹이더라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고개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손에 힘을 빼도 뒷목을 받치고 있는 것만으로 아기가 수유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된 나의 수유자세. 한 손으로는 뒷목을 받치고 있다 아기가 잠들려 할 때 수시로 등과 다리, 발바닥을 꾹꾹 지압한다. 반대쪽 손으로는 엄지와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C자 모양을 만들어 물리는 쪽 가슴을 잡는다. 가슴을 잡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내게 필요했던 마지막 퍼즐, 아기가 젖을 깊이 물도록 가슴 잡는 법은 또 다른 학교에서 배웠다. 그 곳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어느 산부인과 꼭대기 층 가장 안쪽에 비밀처럼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데는 고통이 필요했다. 마음의 고통이 아니라 엄청난 가슴의 통증이. 통증은 일상처럼 무심결에 찾아와, 가슴을 후벼 파듯 나를 위협했다.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애절한 발라드는 더 이상 이별노래로 들리지 않았다. 내 구멍난 가슴에 흘러 넘친 건 추억이 아니라 몇날 며칠을 고여 있던 젖이었다. 

이전 05화 수유만 했다 하면 뮤지컬배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