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상자 Mar 11. 2021

또박또박해지는 발음의 아쉬움

아이들에게 ㅅ발음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ㅅ이 들어간 단어를 발음할 때 너무 귀여운데, 순간 지나가버려 아쉽다. 그래서 현재 발음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기분 좋을 때 녹음해보기로 했다. 아직 글을 모르니 엄마랑 똑같이 말해보라고 하고 내가 먼저 말하면 아이가 그대로 말하는 식으로.


글에 쓴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녹음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자기가 말했던 상황이 생각나면 그때 일을 말하기 시작하는 아이 덕에 속도가 나질 않는다. 속도 따위 뭐가 중요한가. 이 과정도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인 것을.


ㅅ을 ㅌ으로 발음하는 게 귀여운 5세. ㅅ발음 잘하기 전에 이런 건 꼭 남겨놔야 해. ⓒ고양이상자(고상)



36개월이 넘으면서 ㅅ발음 외에 다른 발음은 많이 또박또박해진 편이다. 아는 단어가 많아지면서 정확성도 높아졌다. 기특하면서도 아쉽다. 그만큼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 벌써 그립다.


엄마, 누구 택비(택배)예요?
아빠가 휴주(휴지) 다 썼어요.
나무에 동지(둥지)가 있어요.
꼬꼬아(코코아) 주세요.
엄마는 포번(표범)을 좋아해.


모국어를 제대로 알아야 외국어도 잘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도의 외국어 학습은 안 하고, 취학 전에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가끔 영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를 말할 때 있다. 태권도 흉내를 내길래 "권투도 하겠네."라고 했더니,


원 뚜 뜨리 뽀 빠브



라고 해서 놀랐다. 권투랑 원투가 비슷하니까 생각났나 보다. 아무래도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언니오빠나 친구들에게 들었던 적이 있는 듯.


복잡한 공룡 이름과 생소한 바다 생물 이름을 거침없이 말한 건 오래됐다.  눈엔 무섭고 징그러운데 아이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혼잣말로 무섭다고 하면 남편은 뭐가 무섭냐고 하면서 놀리는데, 아이는 조그만 손으로 나를 잡으면서 자기가 지켜준다고 한다. 역시 딸 밖에 없다.


'응애'만 하던 아가와 하루 종일 붙어 있었을 때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너무 힘들었다. 귀엽게 옹알거리며 한 단어씩 말하다가 문장을 말했을 때 정말 신기했는데, 다양한 단어를 알아가며 여러 대화가 가능한 지금이 정말 좋다.


못하는 말이 없어서 놀라기도 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아이의 마음을 알기 수월해졌다. 어디가 불편한지, 뭐가 먹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등등. 카페에 가면 자기 몫의 음료까지 선택할 정도로 컸다. 살 무렵, 카페에서 남편과 내 커피만 산 적이 있는데 아이가 슬픈 표정으로,


내 건 없어요?



라고 말한 이후로, 꼭 아이 것도 같이 산다. 1인분이다. 중고로 사서 아낀 아이 물품비나, 학습 안 하며 아낀 교육비는 식비로 나갈 듯하다.


언젠가 자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가 때 말하고 싶은데 못해서 답답했어.



아가가 대체 왜 우는 건지 몰라서 나만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아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한다. 그걸 꼭 기억하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야겠다.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전 19화 날 닮은 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