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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r 10. 2021

날 닮은 너

하원 후, 두 개의 인형에게 엄마와 아가 역할을 각각 주고, 둘이 대화하며 노는 '역할 놀이'를 하던 아이. 갑자기 아가 역할 인형이 떼를 쓰다가 소리를 지른다. 러니까 엄마 역할 인형이,


자꾸 소리 지르면,
□□(아가 역할 인형) 엄마 안 할 거다!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 전,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다가 너무 깜깜해져서 집에 가자고 하자, 가지 않겠다며 떼쓰고 소리 지르던 아이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다. 요즘 아이는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떼쓰며 소리 지르는 빈도가 많아 졌다. 집에서 그러면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나누지만, 늦은 저녁에 소리가 울리는 밖에서 그런 것이라 빨리 조용히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딱 한 번 했던 말, 입으로 뱉자마자 후회했던 말, 집에 들어와서 사과했던 말. 그 말이 아이에겐 기억에 남았나 보다.


아이가 혼자 집중해서 놀 때는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끼어들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인형)가 아가(인형)한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묻자,


아가가 너무 화내서 엄마도 화났어.



라고 했다. 정말 그때의 상황을 재연한 거였다. 화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급해서 강하게 말한 모습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가랑 엄마 둘 다 화 안 내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하고 나서, "엄마가 놀이터에서 ○○한테 했던 말이랑 비슷하다."라고 하며,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냐고 물었다.


슬펐어.
엄마가 ○○이를 떠날 거 같았어.



너무 미안했다. 그런 말 안 한다고 다시 사과했다. 아이는 자기도 소리 안 지르겠다고 하더니, 내게 아가 역할 인형을 줬다. 그리고 사이좋게 놀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도 놀이터에서 떼쓰며 소리 질렀다는 건 안 비밀. 아이는 무한반복, 나는 인내심 한계 임박. 날 잡아서 아이와 함께 놀이 규칙을 다시 정해야겠다. 육아는 너무 어렵다.


그나저나 요즘 아이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더 따라 한다. 내 말과 행동만 따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아이 앞에선 정말 조심해야지."라고 다짐해도 가끔씩 그런 실수를 하게 되니, 참 어렵다. 태어났을 때는 남편 판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커가면서 나를 많이 닮아 가는 아이.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다. 그럴수록 미래의 남편이 걱정된다.


아무튼, 따로 교육시킨 적이 없는데도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할 때면, '역시, 내 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워낙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라서 딸의 미래가 걱정되긴 하지만, 딸은 나와 달리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원래 위치

지난가을에 큰 리본이 달린 구두를 사줬는데 불량인지 걸을 때마다 한쪽 리본이 조금씩 돌아갔다. 크게 신경 쓰일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몇 발자국 걷다가 허리를 구부리고 리본 위치를 조정했다. 어렸을 때 그랬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하나씩 빼서 쓰고 쓰고 나서는 뚜껑을 꼭 닫아 원래 있던 자리에 넣기도 한다. 처음 샀을 때와 거의 같은 위치다. 그런데 장난감 정리는 안 한다.


핑크 외에도 다양한 색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산 여러 가지 색 사인펜. 산지 몇 달 됐는데 처음 위치와 거의 같다. ⓒ고양이상자(고상)



절약 정신

새 스케치북이 있어도 원래 쓰던 스케치북에 빈 페이지가 있는지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발견한 빈 페이지까지 쓰고 나서 새 스케치북을 쓰기 시작한다. 아빠보다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 남편이 물티슈 두 장 뽑으면, 딸에게 혼날 정도.

 


대칭 선호

삐쭉삐쭉 나온 부분만 다듬었을 뿐,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그래서 양갈래로 묶을 때가 있는데 양쪽이 대칭 형태로 묶이지 않으면 다시 묶어달라고 한다. 내가 그렇다. 귀걸이도 모두 대칭 형태다. 나중에 딸에게 모두 주면 되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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