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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Jun 25. 2018

순한 아가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야

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2017.11.27. 작성)

                          

우리 아가는 순한 편이다.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엄마가 순해서(순하게 생겼을 뿐) 그런 것 같다는 분도 계시고, 태교를 잘해서 그런 것 같다며 어떤 태교를 했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함 때문에 내 노력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토닥토닥하면 잠드는 아가


아가와 함께 외출하게 되면 밖에서 낮잠을 자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어딘가에 눕혀놓고 토닥토닥하면 조금 찡얼대다가 잠든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아가의 찡얼댐이 멈추길 기다리지 못하 안아서 재우라고 재촉한다. 이렇게 잔다고 하면서 재우고 나면, 신기하다고 하면서 한 마디씩 더 한다. 아가가 순해서 좋겠다며 효녀라고 해주는 말이야 좋게 듣지만, 그렇게 재울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엔 관심 없고 잠든 결과만으로 이런 말을 할 때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가가 순하니까 가능한 일이야."

"힘들다는 소리 하면 안 되겠네."

"편하게 키우는 거야."


신생아를 키우다 보면, 보통 100일의 기적을 기다린다고 한다. 거의 2~3개월까지는 아가가 2~3시간 간격으로 깨기 때문에 잠이 모자란 부모는 다크서클을 달고 살게 다. 그때까지는 아가가 그리 무겁지 않아서 안아 재웠다. 손탄다는 말이 있지만, 안아줄 수 있을 때 많이 안아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아가의 새벽잠이 길어진 후에는 눕혀서 토닥토닥하며 재웠다. 아가가 많이 울어도 나도 같이 울면서 재웠다. 놀고 싶어서 계속 일어나는 아가를 계속 눕히면서 재웠다. 내가 일어나면 더 일어나고 싶어 해서 어설프게 누운 상태로 아가를 눕혔더니 내 손목과 어깨가 남아나질 않았다. 아가와 나의 노력으로 그런 행동이 자리 잡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과정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다.



| 이유식을 잘 받아먹는 아가


아가가 커가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이유식이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귀찮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젖병 닦고 소독하는 것만도 귀찮고 그밖에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유식까지 해야 하니, 정말 자신 없었다. 하지만 아가가 지금까지는 잘 먹어주고 있어서 열심히 만들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식사하는 자세다. 기본적인 식사 예절이 없는 사람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쩝쩝대며 먹는 사람, 식사 중에 다른 것을 보는 사람, 혼자 너무 빨리 먹는 사람, 같이 먹는 음식에 개인 수저를 대는 사람, 음식을 과하게 평가하는 사람 등. 뒤에서 손가락질받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식사 예절을 잘 가르치고 싶었다.


이유식 초반에는 호기심이 왕성한 아가와 먹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 사이의 갈등이 생긴다. 바스락거리는 턱받이를 자꾸 만지고 싶어 해서 한참 만지게 뒀었다. 턱받이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고 나니, 그다음에는 턱받이에 흘린 이유식을 잡아서 범퍼 의자 탁자에 비비기 시작했다. 아가와 탁자는 금세 지저분해졌고 아가는 식사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식사 시간은 엉망이 됐다. 그 후 어지럽혀진 것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하다가는 나도 아가도 지쳐서 식사 시간이 끔찍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유식을 먹일 때 손수건을 목에 두른 후 턱받이를 했고, 턱받이를 제외한 다른 곳에 이유식이 묻으면 바로 닦았다. 그냥 확 닦는 것이 아니라 아가한테 잘 먹는다는 칭찬을 하면서 닦았다. 아가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이유식을 먹였다. 식사 시간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나도 심적 여유가 생겼다. 물론, 음식물을 손에 쥐고 여기저기 묻히면서 먹는 것이 아가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활동은 놀이를 통해서 하면 된다. 아가에게는 모든 것이 놀이다. 하지만 적어도 식사와 놀이는 구분해야 외식을 할 때도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더 커서 아가 스스로 음식을 집어 먹을 경우에는 또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유식 초기부터 음식은 깔끔하고 편안하게 먹는 것이라 인식하면, 그때도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잠재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난 아가를 믿기로 했다.


이유식 초기에는 엄마가 아가에게 숟가락을 뺏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숟가락으로 스스로 먹는 연습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유식을 주는 어른이 숟가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번 뺏기고 나면 식사 때마다 뺏기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 뺏겼다면, 뺏길 숟가락과 먹이는 숟가락을 따로 준비해서 먹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처음부터 안 뺏기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몇 번 뺏길 뻔했으나, 정말 집중해서 숟가락은 꼭 사수하고 있다.


순한 우리 아가도 식사 중간에 갑자기 버틴다. 왕성한 호기심에 놀고 싶은 마음이 큰데, 범퍼 의자에 앉아서 같은 자세로 받아먹기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이유식이 식어서 그런지 살펴보고, 온도가 괜찮으면 혹시 응가를 했는지 본다. 만약 응가를 한 것이라면 앉아 있어서 찜찜한 것일 수 있으니, 식사를 중단하고 기저귀부터 갈아 준다. 아무 일도 없으면 안아주는 시간이라도 가져야 한다. 말은 못 해도 분명 뭔가가 불편해서 그런 것일 테니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식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입 안에 이유식이 있으면 더 넣어 주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더 달라고 해도 다 먹고 나면 새로 넣어 줬다. 너무 고맙게도 아가가 잘 따라주고 있다. 입을 다물고 오물오물 끝까지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이런 태도가 잡힌 것이지, 처음부터 잘 받아먹은 것이 아니다. 제발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낯가리지 않는 아가


우리 아가는 잘 울지 않는다. 물론, 밤잠 자기 전의 잠투정이 심하기도 하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크게 울기도 하지만 다른 아가에 비하면 울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밖에서 우는 아이 달래느라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가가 순해서 가장 힘들고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해도 울지 않을 때다.  


돌아다니다 보면 "요즘 아가가 귀하다"며 아가를 조물조물 만지려는 어르신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땐 아가가 좀 울었으면 좋겠다. 우는 아가 핑계되면서 피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아가가 이쁘고 귀엽다면서 그러시면 좀 괜찮은데, 아가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면서 여기저기 만지는 분들은 너무 불편하다. 엄마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아가는 방긋방긋 웃는다. 게다가 조금 눈 마주치다가 낯선 사람에게 두 팔 벌려 안기기까지 한다. 이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아가가 울 때면, "순해보였는데 아니네"라면서 우는 아가를 달래고 있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가가 우는 것은 당연한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공원에서 어떤 여자 아이가, 아가가 귀엽다며 곁에 있다. 집에 와서 보니 그 아이가 잡았던 팔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아프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너무 꽉 잡았나 보다. 꽤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팠을 텐데 그때도 아가는 울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조금 찡찡대긴 했는데 졸려서 그런지 알았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확 울었으면 좋겠다. 그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예전에 우리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순해서 속상했다고. 커 가면서도 분명 아플 텐데 아픈 내색을 안 하고, 힘들 텐데 힘든 내색을 안 해서 마음이 아팠던 적이 많다고. 우리 아가도 나의 그런 부분을 닮아서 웬만하면 참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요즘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학습 부분이 아니라, 안전 교육. 특히, 사람을 좋아하고 잘 웃는 우리 아가에게는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 불신을 심어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세상이 너무 험하니 너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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