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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Apr 25. 2018

모성애 부담① 자연분만vs제왕절개

임신부터 출산까지 (2017.04.06. 작성)

|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는 모성애라는 단어


모성애(母性愛). 참 부담스러운 단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본성)적인 사랑"으로 정의한다. 어머니는 모성애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 모성애가 뿅 하고 생기는 걸까?


만삭인 상태로 헉헉대며 출퇴근을 하고 있는 나는, 모성애를 느낄 여유가 없다.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힘든 마음이 더 크다. 남편과의 입장이 비교되면서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한다. 아가는 둘이 만들었는데 나만 고생하고 있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의 임신 전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내가 입덧 때문에 먹지 못하고 남긴 음식을 먹어서, 더 살찐 것 밖에. 내가 커진 배 때문에 뒤척이며 잠을 설치고 있는데 옆에서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 정말 막 때리고 싶다(실제로 때리기도 했......).


나는 모성애가 본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원하는 현모양처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미화시킨 것이지, 여성이 꼭 갖추고 있는 본능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이 꼭 갖춰야 할 덕목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이 사회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가정 일을 여성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 남성이 바깥사람, 여성이 안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원하는 사회에서 만든 편견일 뿐이니까.

모성애가 본능이라면, 딩크족이나 비혼 여성은 본능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한 저출산 역시 여성의 탓(저출산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이 되고 만다. 임신·출산·육아는 '모성애를 가진' 여성의 몫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모성애가 별로 없는 나는, 여성이 아니게 된다. 응??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남성으로 하여금 아이와 관련된 일은 여성의 일이기에 자신은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모양처의 역할을 원하는 여성도 있다. 그런 분은 원하는 모습대로 살면 된다. 문제는 그 역할을 원하지 않지만 이를 강요받는 여성과, 그 역할을 원하지만 할 수 없는 남성이다. 아가와의 신체적 접촉과 정서적 교감을 통해 주양육자에게 책임감이 길러지는 것이지, 이러한 감정은 여성만이 가진 것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아가를 돌보는 누구라도 생기게 되는 감정일 테니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헌신이나 희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자기 아가를 낳으면 예쁠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그건 아니다. 나도 아가를 좋아하지만 내 아가가 안 예뻐 보일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 아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가가 싫다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자기 아가이기 때문에 예쁘다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입양 가족이나 보육원 출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핏줄만 중요하게 여기면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관심 없는 그런 사람이 참 별로다.



| 모성애의 가장 큰 피해자, 신사임당


2017년 초,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신사임당'이 시작되었다. 줄거리를 봤더니, 신사임당을 얼마나 또 왜곡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정치인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진 현모양처 신사임당. 역사 학자들이 목 터져라 외쳐도 신사임당은 그저 현모양처일 뿐이다. 신사임당 자체로 너무나 멋진 여성(글과 그림에 능통했던 지식인이자 예술인) 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능력이 부족한 남편의 뒷바라지를 잘한 내조의 여왕이자, 율곡 이이와 같은 천재를 낳고 길러낸 어머니로만 묘사된다.


율곡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다. 남존여비 조선 시대에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에 대한 글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신선하다. 물론, 그럴 정도로 율곡이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글에서 보이는 신사임당의 모습은 흔히 알고 있는 현모양처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신사임당은 결혼 후 약 20년 간 본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율곡을 낳고 키웠으며 남편이 실수했을 때에는  꾸짖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조선 전기까지는 참 괜찮았는데.


이런 신사임당은, 우암 송시열을 비롯해서, 율곡을 드높여 자신의 세력을 안정화하려던 서인에 의해 현모양처로 포장되어 떠받들여지기 시작했다. 조선에 성리학을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선택된 모자. 조선 후기부터 신사임당은 그녀 개인이 아닌, 대단한 아들을 낳고 길러낸 '어머니'로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율곡의 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신사임당이 그런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 신사임당에게는, 일제강점기 땐 개인을 희생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이미지가 더해졌고, 독재 정권 땐 그런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영부인에게 얹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모성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신사임당이 아닐까? 후대가 자신의 이미지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면 신사임당은 정말 황당해할 것 같다. 자신 역시 부성애가 넘치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자유롭게 교육받으면서 자랐는데, 모성애와 현모양처의 대표주자가 됐다니 황당할 수 밖에. 물론, 신사임당이 인본주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키워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이 무시된 채,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부각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5만원권에 인쇄된 신사임당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지금 시대의 사람에게 현모양처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그러나 5만원권은 많았으면 좋겠다.).


정말 황당했던 '공익' 광고가 있었다. 2012년 대한민국 공익광고 공모전 학생부 당선작. 이 광고에서는 신사임당이 양육비 걱정 따위 하지 않고 출산을 해서 위대한 두 모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육비 때문에 출산을 하지 못하겠다는 세대를 비판하고 싶었는지(임신·출산·육아는, 결국 돈돈돈), 저출산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유복한 명문가의 딸이었다. 남편 집보다 더 잘 살았던 집안이다. 그런 그녀가 웬 양육비 걱정? 게다가 이 광고는 신사임당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시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광고다. 그 시대의 자녀 출산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래저래 고통받는 것은 신사임당이다.


▲ 문구에서 1차 충격. 학생이 만들었다는 것에 2차 충격. 광고 화면 갈무리.



| 출산 방법 선택,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서론이 길었다. 역시, 모성애는 할 말이 많은 소재다. 할 말은 더 많지만 다음 기회에.


임신을 하고 나서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모성애 강요를 받는다. 벌써 둘째 계획을 묻기도 하고, 휴직 기간을 물어보면서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도 듣는다. 벌써 나는 없어지고 있다. "만삭인데 힘들겠다. 수고 많다. 몸은 괜찮냐." 이런 말을 더 듣고 싶은데.

 

이제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출산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내가 겁이 많기 때문에 막연히 남편을 옆에 두고 출산하는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매스컴에서 많이 보인 수중 분만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분만할 곳을 꼼꼼하게 비교할 여력도 없고, 상황이 안 좋다면 굳이 자연분만을 고집하고 싶지도 않고,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산 방법에 크게 연연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출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자연분만은 아가가 산도를 빠져나오면서 피부에 좋은 자극과 뇌 기능에 영향을 받고, 유익균과 접하게 되면서 태어난 직후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좋은 이야기는 자연분만에 모두 들어가 있다. 제왕절개는 아가의 머리가 엄마의 골반보다 클 때, 엄마가 임신 중독증 증상이 있을 때, 아가가 거꾸로 있을 때(역아) 등 자연분만을 할 수 없을 때 하게 되는 출산 방법이다. 자연분만을 하다가 제왕절개로 넘어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출산 상황이 다를 뿐, 고통은 둘 다 있다고 한다.


▲ 혹자는 자연분만을 카드 선결제, 제왕절개를 카드 후결제라고 표현한다. 전자는 출산 전 고통이 크고, 후자는 출산 후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고상(고양이상자)


여기서 문제는, 자연분만을 해야 진정한 출산의 고통을 겪은, 진짜 엄마인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고통을 폄하하면서, 엄마로서 감수해야 할 고통을 참지 못한 것처럼, 모성애가 부족하다는 듯이 말한다. 엄마면서 그 고통을 못 참아, 자연분만을 해야  아가한테 물려줄 수 있는 것을 안 줬다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방법이든지 열 달 동안의 임신 과정을 거쳐 힘들게 출산한 것인데, 출산 방법으로 엄마의 임무를 완수했는지 안 했는지 구분한다. 나야 그런 말을 흘려들을 수 있지만, 안 그런 엄마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쉬워하는 엄마들 말이다. 누구보다 아쉬운 건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엄마 본인일 텐데, 왜들 그리 배려 없이 말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아가를 볼 때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을 가져야 그 마음이 아가한테 그대로 전달되어 엄마도 아가도 행복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발  말조심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 입 다물라.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출산한 엄마 모두 대단해 보인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현역의 느낌이랄까.

출산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심정은, 그저 무섭다. 그런 마음이 반영됐는지 얼마 전에 하혈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겁이 워낙 많아서 성형 수술도 못해봤고, 유일하게 해본 수술은 라섹 밖에 없는데, 내가 출산이라니.


별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건강한 모습으로, 건강한 아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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