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우화 12화

창문을 뛰쳐 나간 고양이

뛰쳐 나간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by 차감성

[도시 우화]

창문을 뛰쳐 나간 고양이



그가 창문밖으로 뛰쳐나간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 그러니깐 가장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는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 앞에서 눈을 떴으며 점심 내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은은히 비추는 달빛을 몸에 덮어 잠을 청했다. 그는 창문 밖을 내다볼 때마다 강렬한 태양에 다가서고 싶었고 저 거대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싶었으며, 또 누군가에게 자신이 느꼈던 달빛의 포근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간질간질했던 그의 털 한 올 한 올은 창문과 가까이 할수록, 아니 저 바깥과 맞닿아 있을수록 곤두섰다.


그러니 창문이 열렸을 때, 주인이 환기를 시키고자 창문을 열고 그 방의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을 때 그는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 즉 운명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릴 주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분명 주인은 그를 원망할 것이며 나중에는 방문을 열어 둔 자신을 자책할 것이다. 자신을 안락한 곳에서 먹여주고 재워줬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창문을 뛰어넘을 때 벅차오르는 설렘에 비할 데는 아니었다.


그는 해를 향해 걸었다. 해는 감히 쳐다볼 수 없었지만 그 강렬함을 향해 막연히 걸어갔다.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한심하게 비웃었다. 그런 포근하고 안락한 자리를 뛰쳐나왔다고, 눈 앞의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그깟 해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는 또 동경하던 사람들의 발밑에서 함께 걸었다. 무심한 위인들의 발길에 걷어차이고 심술궂은 인간들의 돌팔매 질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그는 즐거웠다.

그는 달빛을 보며 하루를 돌아봤다. 하지만 차가워진 그의 마음에 포근함이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야망. 휘황찬란한 도시의 어둑한 뒷골목을 두려움에 떨며 걸을 때 그가 의지했던 것.

도전. 수많은 인간의 손길들이 그를 집으로 들이려 할 때 다시금 꺼내어보던 것.

자존. 그의 도전이 실패했을 때 그를 위로해주던 것.

하지만 상처가 늘어나고 덧날 때마다 그의 버팀목이었던 야망과 도전, 자존은 오히려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가 지쳐 쉬려고 할 때 야망은 그를 일으켜 세웠고, 도전은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으며 자존은 오만과 합리화를 그의 몸에 심었다. 결국 그의 주변에는 창문을 뛰어넘었을 그 처음처럼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그를 공허하게 만들었던 건 처음 품었던 그 설렘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쳤다. 해는 결국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다가설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이 아닌 위협을 주는 존재라는 걸, 또 달빛은 포근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벽의 찬 바람을 뜻한다라는 걸 깨달은 후였다. 그는 차가운 맨바닥에서 자주 정신을 잃곤 했다.




그러던 그가 목적을 잃고 정처없이 떠돌 때 놀라운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바로 그가 떠난 집, 내가 뛰어넘었던 창문이 아직도 저 2층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온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차마 주인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으나…그래도, 그래도 그는 있는 힘을 쥐어짜 담벼락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 때, 마당에 있던 개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아…그 곳이 아니구나.’


너무나도 지친 그의 눈에 아른거렸던 것은 고향집이 아닌 낯선 이의 집이었다. 집의 주인은 짖어대는 개의 소리에 잠시 나와 그를 봤으나 이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행여나 저 개가 자신을 공격할까봐 경계했으나 이내 개의 목에 걸려있는 목줄을 발견했고 안심했다. 마당의 따뜻함, 고향이 생각나는 2층 집…개도 그를 보고 계속 짖었지만 이내 자신의 개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랜 만에, 아주 아주 오랜 만에 달빛의 포근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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