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젊고 싱싱한 지금 이 시간을 너희에게
아들 내외가 동시에 휴직했다는 말에 내 눈이 동그래졌다. "두 분이 다요?"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은 여전히 온화한 인상이셨고, 나는 첫 아이를 품은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 있었다. 그게 참 좋아 보였다며 내게도 권하셨지만, 나는 '대단하시다'는 의례적인 대답 뒤에 되묻고 있었다. "생활비는.. 직장은요?"
그때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육아는 일대일 대응의 셈법으로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한 명이 일하면, 한 명은 아이 보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둘 다 나가서 일하고. 이 계산법 안에서는 아이가 하나인데 둘이 육아를 하는 건 비효율이자 오답이었다.
나는 지금 그 비효율과 오답을 살고 있다. 첫째가 태어나고 만 세 살이 되도록 연달아 휴직했고, 지난해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남편도 함께 육아휴직을 했다.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이 그대로 돌아왔다. "둘 다? 남편도 1년?"
재작년 말, 남편은 퇴근하면 소파에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들기 일쑤였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로 첨예한 민원과 갈등 사이에서 짓눌려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하루하루 위태로운 나날이었다. 스트레스로 몸이 상해 석 달이나 폐렴을 앓았다. 나는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첫째 육아와 살림을 도맡았다. 각자 직장과 집에서 소진된 채 만나면 다툼은 가깝고 배려는 멀었다. 결국 이듬해 1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우리는 한 번의 쉼표를 찍기로 했다.
둘째라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좀 더 부드럽게 받아내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남편이 신생아를 맡아 돌보고 나는 첫째의 곁을 지켰다. 그는 밤새 아기를 먹이고 다독이고 낮에 아기 옆에서 쪽잠을 잤다. 나는 "남자팀 잘 잤어?" 하고 인사했다. 그는 내가 '남자팀'이라 부르는 소리에 아기를 눈으로 흘기며 질색했다. 그러면서도 "아, 아기 냄새! 그런데 얘는 왜 군대에서 맡던 땀 냄새가 같이 나냐?"라며 아기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냄새를 들이켜는 그였다.
"점심 뭐 먹을까." 학폭 회의에 비하면 한없이 나른하고 소소한 회의가 매일 열렸다. 난 그럼 이렇게 탄식하곤 했다. "삼식이 아저씨! 밖에서 밥 먹고 올 때가 좋았다." 부부 동반 휴직의 유일한 단점이랄까. 혼자 먹을 때와 달리, 둘이서 먹으려니 메뉴를 고민하고 밥을 차리게 되는 거다. 그는 훗날 자기가 진짜 삼식이가 되어도 잘해주어야 한다며 눈물 흘리는 연기를 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옆에 붙어 소꿉놀이와 색종이 접기를 하고, 주워도 주워도 계속 나오는 클레이 조각을 치웠다. 어느새 둘째 입 안으로 들어갔는지, 짓뭉개진 클레이 조각을 끄집어내며 다 같이 경악하고 웃다가 입을 씻기기도 했다.
둘째가 변을 누었을 때 서로 미루며 가위바위보를 하는 시시껄렁한 나날. 아기띠를 한 남편과 첫째 하원 마중을 나가고 공원과 놀이터, 키즈카페를 전전하는 일상. 양말 좀 빨래통에 넣어라, 이따 넣으려 했다, 종일 붙어 지내는 만큼 사소한 다툼도 잦았지만, 그마저도 여유의 반증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바깥의 소란이 우리에게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시간. 우리는 이 시간을 얻기 위해 기꺼이 벌 수도 있었을 돈을 지불했다.
휴직자의 월급은 마트 생선처럼 보기 좋게 토막 나 있었다.
"이걸로 네 식구 먹겠어요?"
"무슨 소리. 그것도 여기서나 주는 거니까 퍼뜩 받아가슈."
대신 나에게는 토막 나지 않은 온전한 시간이 주어졌다. 절약의 기술이 늘었다. 옷은 새로 사기보다 몇 개 상하의를 돌려 입는다. 마트에서 전보다 꼼꼼하게 영수증을 살펴보고, 냉장고에 식재료를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웹툰 쿠키가 아까워서 일주일에 딱 한 편만 구워 본다. 책은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그런데 아이들 입에 들어갈 건강한 식재료와 간식을 사거나 책을 넉넉하게 구비하는 일에는 도통 돈이 아껴지질 않는다. 엉터리인 가계 관리에 구멍이 안 나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까지 휴직을 이어가기로 했다. 여전히 같은 옷을 돌려 입고, 웹툰도, 책도 사서 보기는 힘들 거다. 그러나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다. 첫째에게 독수리 발차기 놀이를 실감 나게 해 주고 둘째가 서툰 발걸음을 뗄 때 유난을 떨며 환호해 줄 수 있다. 아침의 평화를 지키고, 오전엔 집안을 정돈하며, 오후에는 아이들과 마음껏 부대끼고, 아직 바닥나지 않은 체력으로 저녁을 맞이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무릎이 아직은 아이를 둘러업고 걸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도 욱신거리지 않는 때, 신나게 한바탕 놀아줄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이때. 내 생의 가장 젊고 싱싱한 지금 이 시간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가계부는 여전히 엉터리이고,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는 멈춰 서 있다. 숫자와 돈의 셈법으로는 분명 오답인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토막 나지 않은 팔딱팔딱 활어처럼 살아 숨 쉬는 시간을 선물 받는다. 풍성한 시간만큼은 우리 가족의 식탁 위에 늘 넉넉하게 차려져 있다.
오늘도 돈을 아껴 시간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