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싶었던, 내가 먹이고 싶은
엄마는 나를 낳고 한 달 만에 복직했다. 해 질 녘 골목에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저 멀리 엄마가 오는 걸 보고 "엄마아!" 외치며 달려가 안겼지만, 코끝에 닿은 냄새가 낯설었다. 모르는 아줌마는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실망과 민망함,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때 선명하게 기억했다. 내가 여섯 살이라는 것과, 꽤 외롭다고.
엄마는 공백기를 가졌다가 내가 초등학생일 때 보건소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장거리 출퇴근 탓에 월요일 새벽에 나갔다 수요 예배를 보러 저녁에 잠시 들렀고, 다시 목요일 새벽 출근, 금요일 저녁에 돌아오셨다. 시골 목회를 하셨기에 주말은 더 바빴다. 엄마의 일자리는 사 남매의 학비였고 여섯 식구의 식비였다. 말 그대로 엄마는 가족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생계와 사랑은 때로 다른 문제였다. 엄마와 실없이 시간을 까먹으며 느리작대거나,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배웅을 받으며 학교에 가는 일. 고등학교 기숙사 짐을 부모님과 함께 채우고, 친구들처럼 부모님이 내 방 책상을 쓸어보거나 기숙사 시설을 관심있게 둘러보며 이야기 나누다 저녁을 사 먹으러 가는 풍경들. 그런 사소한 일상은 나에게 끝내 차려질 수 없는 밥상이었고, 채워지지 않는 오랜 허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지손가락에 하얗고 작은 물집이 잡힌 채 학교에 갔다. 엄마가 끓여둔 국을 데워 먹으려다 뜨거운 냄비를 잘못 만진 탓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사택에서 알로에 크림을 가져오셨다. 미끄덩한 알로에 조각을 얹고 붕대로 동동 싸매시며, 선생님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손가락은 흉 없이 아물었지만, 나를 향하던 그 시선은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다.
지금 우리 집은 매일 아침밥을 먹는다. 원래 습관이었다든가, 뇌를 깨우기 좋고 영양에 좋다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동그랗게 부어오른 손가락 위에 차가운 알로에를 얹듯 아이 앞에 밥그릇을 놓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일을 과거와 연결 짓는 건 지나친 감상일 수 있지만, 과거라는 뿌리는 언제나 지금의 나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울 때도 많았다. 시골 보건소에서 아픈 주민들을 돌보고 할머니들에게 체조를 가르쳤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긍심이 솟았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간단한 화장을 한 채, 우리 가족의 첫 차 프라이드를 몰며 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어린 눈에 멋있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그 시절의 책임을 선택하고 살아냈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선택한다. 나는 먹고사는 고단함에서 비껴섰고, 대신 내가 못 먹어본 시간의 밥을 아이에게 주기로 했다. 5년 반의 근무와 햇수로 5년 차 휴직.
얼마 전 미용실 사장님이 내게 "육아가 적성에 맞나 봐요"라고 묻더니, 이내 "아니지, 육아에 적성이 어딨어. 힘들지"라며 말을 거두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답했다. "적성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워킹맘은 정말 대단해요." 사장님을 추켜세웠다. 어린 날의 나를 돌보는 의미 같은 이야기는 너무 구구절절했으니까.
이 선택이 오롯이 개인의 용기 덕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여전히 몇몇 직업군에서만 허락되는 '운 좋은 일시정지'다. 경력단절을 겪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져 온다. 열이 나는 아이를 새벽에 한 시간 거리 시댁에 맡기고 출근을 했다는 동료 선생님의 퀭한 눈빛은 나의 미래를 암시했다. 잠시 멈추어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일과 아이를 모두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모든 부모에게 허락되기를 바랄 뿐이다.
일을 하던 시절에 입던 블라우스와 재킷, 정장 풍의 바지와 원피스에는 고이 먼지가 쌓여간다. 유행도 다 지났다. 대신 편안한 추리닝과 회색 스웻 셔츠를 걸치고 캡모자를 쓰고서 한 손엔 유모차를, 한 손에 첫째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힘차게 연다.
나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다. 아이의 등원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봐주고, 아이가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서 손 흔드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긴장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건 긴 세월을 돌아 그때 배고팠던 유년의 나를 위로하고 배 불리는 일이기도 하다.
삶은 결국 시간을 어디에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모든 이에게 휴직만이 옳은 선택일 수는 없다. 각자에게 목마른 자리, 내가 있을 때 맞춤이라 느끼는 자리, 나의 생을 통해 해내고 싶은 자리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비껴난 자리일지라도 책임지기 위해, 모두 힘껏 살아내고 있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간의 밥상을 차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