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톱을 자르며
나는 손톱이 못 생겼다. 어릴 때 손톱 근처에 사마귀라는 피부병이 났다. 치료를 제때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도서벽지였던 동네엔 병원이 없었고,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약국에서 산 약을 바르고 그것이 하얗게 굳으면 손톱깎이로 살점과 함께 떼어냈다. 맨질맨질한 생살 위에 다시 약을 바르고 떼어내기를 반복하면 뿌리가 뽑힐 줄 알았다. 여린 살은 금세 피가 났고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고통스러웠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기어이 사마귀가 손톱 안으로 파고들었다. 살이 부풀어 오르고 딱딱해지며 여러 손가락으로 전염되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모님은 나를 배에 태워 육지로 나갔다. 몇 번의 레이저 수술을 거친 뒤 사마귀는 사라졌지만, 손톱은 뿌리까지 상해서 영영 회복되지 않았고 모양이 어그러진 채 자라났다. 엄마는 언젠가 손톱을 쳐다보고 매만지며 오래도록 미안해했다. 그 병원을 잘못 간 것 같다고도, 아니 일찍 갈걸 했다고도 하면서.
손톱의 생김새야 아무렴 어때, 하면서 씩씩하게 컸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굳이 눈에 띄기 싫어 손을 모으거나 뒤로 가리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 손톱을 보존하면서 깨끗하게 치료하는 냉동치료법이 있다는 걸 알고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억울함보다는 그 시절의 우리 집과 우리 부모님의 고단함이 알아차려졌기 때문이다. 나의 못생긴 손톱은 어린 시절 가난의 그림자였다. 생은 조여오는데 날마다 바쁘고, 자식은 많아 하나하나 세밀하게 돌볼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이 남긴 삶의 흔적이었다.
첫 아기를 낳고 보니 아이의 손이 참 예뻤다. 손가락이 길쭉한 것이 나를 닮아 있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숨을 죽이고 비닐처럼 얇고 날카로운 아기 손톱을 손톱 가위로 자르면 가루처럼 내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아기 손톱은 엄마 닮아 길고 예쁘네. 엄마가 항상 깨끗하게 다듬어줄게."
손톱이 못생긴 것쯤이야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이 손에는 어떤 흔적조차 남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가 어린이가 된 지금 주말이면 여전히 손톱깎이로 또각또각 잘라준다. 내 손톱에는 쏟아본 적 없는 정성을 쏟아 천천히, 둥글고 가지런하게 다듬는다.
엄마에게 한쪽 손을 내놓고 나머지 손으로 코를 후비는 아이의 옆 얼굴이 보인다. 또각또각, 너무나 평온해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지나가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