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던 나'와 '최선을 다한 나'의 화해

삶이란 시험이라기보다 그림

by 김송은

산다는 건, 최선을 다한 나와, 어쩔 수 없었다는 내가 화해하면서 열심히 헤쳐나가는 길인것 같다. 다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뒤에 너무 자주 숨지 않기로,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너무 많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마취에서 깨어보니 뱃속이 텅 비었고, 아기는 이미 인큐베이터에 가 있었다. 나는 비닐에 씌워진 채 병실로 옮겨졌다. 코로나로 열이 들끓어 갑자기 온 진통에 수술을 받은 지 두 시간여 만이었다.

유리창 면회도 금지, 간호사실에서 하루에 한 번 보내주는 사진 몇 장이 다였다. 열 달의 기다림 뒤 만남의 환희는커녕 허전함과 우울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밤새 잦은 기침으로 제왕절개한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아기에게는 엄마가 없는 두려운 시간일까, 어서 가 손 닿고 싶었다.

유축기라는 기계가 주어졌다. 낮이고 밤이고 3시간에 한 번씩 가슴에 깔때기를 대고 젖을 짜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깔때기의 촉감, 규칙적인 기계음, 내 몸에서 우유를 뽑아내는 느낌은 좀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병실 앞에 갖다 두면 아기가 잘 먹는다고 했다.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접촉이었다.

조리원을 마다하고 집으로 왔다. 오일 동안 엄마품도 모른 채 젖병부터 문 아기는 쉬이 젖을 물지 않았다. 분유와 유축한 모유를 함께 먹였다. 자연분만도, 모유수유도 못했다는 자책감, 인터넷에 올라오는 다른 아기들의 착실한 수유텀과 수면시간표를 보며 비교하는 감정이 수시로 들쑤셨다.

결국 산후 3주 차에 완전 분유 수유로 넘어갔다. 새벽에는 남편이 젖병을 물렸고 나는 잠을 잤다. 몸은 편안해졌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너무 쉽게 포기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가슴속에 체기처럼 남았다.

그땐 그게 엄마로서의 자격이나 점수 같았다. 자연분만을 하고, 돌까지는 모유를 먹이고, 18개월까지는 무염식을 하고, 애착형성이 된다는 세 돌까지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 엄마가 백 점일 것 같았다. 제왕절개에 분유수유를 하는 나는 몇 점일까. 첫 페이지부터 오답 체크를 당한 모의고사 시험지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아기가 저녁마다 악을 쓰며 울었다. 그날은 엄마 품이면 진정되지 않을까 싶어 단추를 풀고 아기를 안아주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찾아 힘차게 빨았다. 나오지 않는 젖을 물고 더 거세게 우는 아기를 안고, 나는 '미안해, 미안해' 하며 줄줄 눈물을 흘렸다.

아기가 가슴을 물었던 촉감은 유축기와는 차원이 다른 말캉하고도 신비로운 충격이었다. 생후 80일이 넘은 새벽, 맘카페에 '완분 후 완모 가능한가요?' 질문을 남기고 사례를 찾아 헤맸다. 유선 뚫는 마사지를 해주는 곳을 찾아 문의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소파에 앉아 남편에게 이 절박한 계획들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몇 초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냥 미련 아니야? 아기는 지금 모유인지 분유인지 신경도 안 써. 도리어 지금이 더 편안할걸. 그때 너 정말 힘들어했잖아. 다시 그 고생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노력으로 한 번 더 안아주자. 분유 먹어도 다 잘 커. 이제 지나간 일이야."

공감 대신 돌아온 건조하고 냉철한 분석에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모성애가 아니라 완벽주의였다. 모유 수유만이 정답이라 믿으며, 이미 채점된 시험지의 오답을 박박 지워버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더 편안하게 해도 좋았을 텐데 싶다. 그때는 예상치 못한 출산과정과 격리, 불안정한 호르몬, 부족한 수면 시간 등으로 불안정하고 지쳐 있었다. 모유 수유라도 똑바로 해내면 비로소 잘 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것 같아서 더 집착했던 것 같다.


​삶이란 시험이라기보다 한 폭의 그림이다. 완벽한 백 점 엄마도, 실패한 빵 점 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책임과 사랑, 한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한계 사이에서 우리는 매번 아까운 선택을 하며 살 뿐이다. 거기엔 '어쩔 수 없었던 나'와 '최선을 다한 나'가 모두 머문다. 나는 이제 시험대에서 내려와 우리 가족만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뒤에 너무 자주 숨지 않기로,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너무 많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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