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차라리 3kg짜리 망치였다

아기는 선물이자 축복, 그리고 망치다

by 김송은

가끔 두 아이를 혼자 돌보기도 하는 지금. 첫째 하나 키울 땐 왜 그리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물론 육아는 고된 노동이다. 하지만 나를 괴롭혔던 건 쉽고 어렵고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벅찬 행복과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는 기이한 괴리 속에서, 나는 내게 닥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라오면서 '엄마가 된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주문을 들으며 짜릿한 미래를 꿈꿨다. 내 세상은 내가 선택한 것들로만 채워질 줄 알았다. 적당한 성취와 취향이 묻어나는 일상, 그게 당연한 내 미래인 줄 알았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아기를 낳았다.


밤새 이유 모를 울음에 지쳐 나도 울었고, 같은 말이 반복되는 그림책을 수십 권씩 읽었다. 어지러운 주방에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흘린 것을 주워 담았다. 아무렇게나 비빈 밥을 서서 퍼 먹었다. 쌓인 빨래와 색색의 장난감으로 점령당한 거실에 서 있던 갓 서른 살, 그것이 내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 새 삶의 모습이었다.


주말의 늦잠, 책과 피아노, 화제의 쇼프로와 드라마, 학생들과의 수업, 출근과 퇴근, 우리 부부만을 위한 간편한 배달음식과 이따금씩 찾아가는 카페와 맛집. 이 모든 세상이 일순간에 증발한 자리였다.


동기들은 차곡차곡 경험과 연차가 쌓여가고, 연수 강의를 나가는 친구도 있었다. 휴가철 인스타그램은 해외여행 사진으로 빼곡했다. 나는 제주도행 30분 비행조차 온갖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나를 위한 여행이 끝났듯, 나를 위한 삶은 끝난 것만 같았다. 아이가 축복이라지만, 그 시절엔 차라리 3kg짜리 쇠망치에 가까웠다. 새 생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망치가 나를 사정없이 부수어 산산조각 낸 다음, '엄마'라는 형태로 다시 조립해 냈다.


첫째는 만 세 살이 넘었고 둘째는 돌이 지났다. 이제 겨우 맡겨진 배역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육아란 사랑이 철철 넘치는 환상도, 자아를 영영 잃어버리는 비극도 아닌 그저 매일 뚜벅뚜벅 살아내야 할 현실임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아이들의 일과에 나의 하루를 맞추고, 음식의 간을 싱겁게하고, 노키즈존을 찾고, 아이들이 잠들어야만 비로소 '나'를 꺼내어 볼 수 있는 제약 많은 일상이 당연해졌다. 삶을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


육아는 나를 물러서게 만드는 듯했으나 물러서자 역설적이게도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과거를 바라봤다. 그 시간은 나를 쓰게 했고 치유와 회복을 주었다. 육아를 하는 동안 자주 미래를 그렸다. 몇 달 만에도 못 하던 말을 하게 되고 키가 훌쩍 자라는 아이는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였다. 진정 원하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통감이 나를 나아가게 했다.


육아에 매여 옴짝달싹 못 하는 듯했으나 어느새 나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기둥이 되어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레 걸러졌다. 우리 가족을 위한 것과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기대하며 번번이 괴롭고 어려웠다. 이제야 비로소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독립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는 선물이자 축복, 나를 부수는 망치로 왔고, 그 파편으로 더욱 풍성해진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는 세계를 쌓아냈다. 나는 희생하지도, 메이지도 않았다. 이전보다 더 크고 튼튼하고, 자유롭고 단단한 내가 여기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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