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바닥에 가루가 남는 카누를 마시고 싶은 날

사소하고 시시한 나날들 속

by 김송은

물 한 모금 없이 퍽퍽하게 하루하루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기분이었다. 첫째 생후 5개월이었다. ​



사소하고 시시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업을 고민하거나, 학생들과 지지고 볶는 일도 없다. 시끌벅적한 학교 현장 한복판에 서 있던 기분 좋은 피로감도 이제는 먼 일이다.



종일 아기와 단 둘이 지낸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개구리 딸랑이를 흔들어주고, 된소리가 섞인 아무 말을 남발하며 아기를 웃겨준다. 쌓인 빨래와 설거지를 해치운다. 시간 맞춰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다. 답답해지면 산책을 나간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기가 내게 왔을까'하는 감동과 '아무도 없는 데서 마음껏 소리 좀 지르고 싶다'는 충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남편이 다 지쳐서 퇴근한다. 아기는 그다지 그의 품에 있고 싶어 하지 않지만 나는 최대한 모른척하고 아기를 그에게 미룬다. 저녁을 준비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집안일까지 건드리며 부산을 떤다. 가끔 마주하는 찬란한 순간 뒤에는 시시한 시간이 주렁주렁 늘어져있다.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아침에 출근하면 학년 연구실에서 늘 카누를 마셨다. 동료들이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모였다. "오늘따라 피곤하네요.", "선생님도 이 학습지 쓰실래요?"와 같은 사소하고 시시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허름하고 먼지 투성이 학년실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직장이 마냥 그리울 만큼 순진하진 않다. 다만 어른과의 대화가 고팠다. 집에 카누가 있던가, 찬장을 뒤져봤지만 없다. 오늘은 매번 바닥에 가루가 조금씩 남는 카누가 마시고 싶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였다.



일이 힘든 것과 육아가 힘든 것은 전혀 다른 종류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아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본래보다 목소리 톤을 높이고 활기를 띄웠다. 매 순간 판단과 훈계의 기로에 섰고, 아이들의 갈등마다 재판장 역할이 요구되었다. 스물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이면 귀가 웅웅댈 정도의 소음이 울렸다.



육아의 어려움은 정반대에 있다. 혼자서 말이 안 통하는 아기와 계속 비슷한 하루하루를, 거의 항상 같은 공간에서 보내야 한다. 애써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단조로운 반복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 이 시간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가산도 되지 않는다. 경력도, 자격증도, 한 줄의 기록도 없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리고, 나는 그냥 휴직을 오래 한 엄마가 된다.



다 적고 보니 일이든 육아든 절대적으로 쉬운 선택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어렵다는 말을 손에 쥐고, 선택하며 감내할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말은 맞지만, 혼자 견디는 일상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울적하다. 나에겐 잠을 깨기 위해 들이키는 커피가 아닌 대화하기 위해 마시는 커피가 필요하다.



종일 아기에게 붙어 내 시간 한 줌 가져보기 어려운 이 일상이 기적인지 선물인지 하는 좋은 말들일랑 내게 너무 멀다. 기적이고 선물이고, 나는 오늘도 겨우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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