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유록 May 14. 2022

고양이의 행복론

고양님 사.. 사.. 아니 좋아해요.


남해에서 같이 사는 우리  고양이, 정확히 나와 함께 사는  친구의 고양이는 세상에 다시없을 애교쟁이 무릎 냥이이다. 살면서 이런 고양이를  적이 없을 정도로 순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고양이를 한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고양이는 다 제멋대로고 하악질에 할퀴고 무는 난폭한 생명체인줄로만 알았다. 태어난 김에 사는데도 성격 하나는 끝내주게 이상한 아이들. 러다 우리  고양이를 만나고 나니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 자체가 달라졌다.   없이 빠지는 털도 괜찮았고, 침대에도 우수수 떨어뜨려 놓는 모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털면 되죠 고양이님. 암요.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도 우리  고양이는  무릎에 올라와서 골골 송을 부르고 있다. 자기 머리를  팔에  비비면서. 글을 쓴다고 자길 만져주지 않으니 앞발을  위로 뻗어 나를  누른다. 올려다 보는 눈과 솜뭉치 앞발 너무 귀여워...




우리 집 고양이는 물건도 거의 흠집 내지 않고 하는 것이라고는 킁킁 냄새를 맡는 것뿐이다. 손가락을 갖다 대면 킁킁 냄새를 맡고 입술을 갖다 대도 뽀뽀를 할 것처럼 입을 갖다 대고 킁킁한다. (심장 아파...) 사실 처음엔 이 친구와 이 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살지 모르니 최대한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초반엔 거의 만지지도 않았고, 어색한 동거인 사이로 데면데면 지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친구들은 일이 바빠 하루 종일 집을 비울 때가 많았고, 자연히 고양이는 집에서 글을 쓰는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고양이도 남은 선택지가 나밖에 없으니 내가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내 무릎 위로 뛰어올라와 자기를 만지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근데 무한정 그러지는 않고, 자기가 되었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가 버렸다. 귀여운데 질척거리지는 않는 우리 집 고양이와 그렇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열두 살 난 우리 집 고양이는 놀라운 동안 미모를 가지고 있는데, 목소리마저 너무 귀엽다. 잘 울진 않지만 한 번씩 '아옹' 거릴 때마다 심장이 따끔거린다. 파란 눈에 회색깔 털을 가진 샴고양이인 우리 집 고양이는 한 살에 버려진 유기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내 친구는 고양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알지 못한다. 지금도 이렇게 귀여운데 아기냥일 땐 얼마나 귀여웠을까. 어쩌면 친구의 심장을 배려해서 성묘가 된 후 친구 앞에 짠하고 나타나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떻게 이렇게 예쁜 고양이를 파양 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양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연히 친구에게 온 고양이는 그 이후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친구와 함께 보냈다. 친구는 고양이가 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동거인 같다고 했다. 고양이가 너무 독립적으로 잘 지내서.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고양이의 미세한 변화까지 알아채는 친구를 보면, 같이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준 둘 사이의 두터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이제 고양이와 고작 삼 개월 정도를 함께 살았다. 아직 고양이 똥을 치우는 법도 모르고, 고양이 오줌이 굳어서 생긴 모래를 퍼내는 일명 '감자 캐기'도 해본 적이 없다. 비위가 약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고양이의 똥꼬마저 닦아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고찰해본다. 나는 왜 이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고양이는 자기 내킬 때마다 내 곁에 와서 체중을 실어 바싹 기대 잠시 앉았다가 가거나 내게 머리를 비비거나 무릎에 올라오거나... 자고 일어나서 거실에 나오면 도 다다다 뛰어오거나... 아 사랑할 이유가 수도 없이 많구나. 무엇보다 치명적인 무표정으로 애교를 부리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다. 자기를 잘 봐달라는 표정과는 가장 거리가 먼 세상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머리는 부비는 것인데...? 고양이에겐 간절함이 없다. 내가 만져주지 않으면 스크레쳐에 손톱을 긁으면 되고, 햇볕을 쬐면 되고 한숨 늘어지게 자면 그만이다는 식이다.



강아지인가...





사랑이 커지면서 고양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궁둥이 팡팡(고양이 꼬리 위쪽 부분을 두드려주는 것) 하는 법을 배웠다. 손목 스냅을 줘서 팡팡팡. 친구 말로는 우리 집 고양이는 궁둥이 팡팡을 그다지 안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손맛은 좀 달랐던 것일까. 역시 배운 궁둥이 팡팡은 달랐던 것인지 내 궁둥이 팡팡을 받은 고양이는 엄청 좋아하며 가르랑거렸다. 그러곤 나만 보면 궁둥이에 힘을 바짝 주며 궁둥이 팡팡을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고양이가 너무 좋아하니 손목이 아프도록 궁디팡팡을 쳐줬는데 어느 날, 이 순한 고양이가 달라졌다. 그날도 궁디팡팡을 받으며 한참을 골골 거리며 내게 머리를 부비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확 변하더니 꼬리를 부풀리며 내 손목을 콱 깨무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놀라서 도망가니 분이 안 풀리는지 나를 따라오면서 다리까지 물려고 했다. 대체 이 착한 고양이가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미친 고양이...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지금까지 발톱을 숨기고 있었나. 그 이후에도 한참을 만져주다 보면 좋아하다가 갑자기 급 정색을 하면서 콱 깨무는 것이다. 점점 고양이가 무서워졌다. 순한 양 같다가도 갑자기 돌변하니 만져주기가 부담스러웠다. 친구에게도 물어보니 친구는 고양이에게 궁둥이 팡팡을 잘 안 해줘서 모르는 눈치였다.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도 이러나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다행히 이것은 여러 집사들이 꽤 겪는 일인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설이 많았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좋은 느낌도 너무 지나치면 고양이들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서 깨문다는 것이었다. '너무너무 좋은데 갑자기 짜증 나!!!' 모드로 돌변하여 손목이 나가도록 궁디 팡팡을 해주던 나를 깨물었던 것 같다. 좋은 감정도 지나치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납득이 갔다. 좋은 느낌도 지나치면 싫어지곤 하니까. 어쩌면 예전에 보호했던 고양이도 내가 너무 과하게 예뻐해줘서 신경질을 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고양이들은 정말 정도를 지키며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좋은 감정을 느끼려 하는구나. 이런 절제력까지 지니고 있다니. 행복추구에 있어서는 고양이가 나보다 한참 위인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적당히 궁둥이를 두드려 준다. 고양이가 쾌감을 넘어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그 선을 지키며 적당히 예뻐해 준다. 많이 좋아해서 적당히만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많이 표현할수록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상대가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또 고양님에게 배운다. 고양님은 정말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존재이다. 자리를 옮겨 좌식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슬그머니 고양이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내 옆에 탁 앉으신다. 나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먼산을 바라보시면서. 내 옆에는 있지만 너는 너의 할 일을 해라 나는 그냥 앉아있다가 가련다 하신다. 이제 떠나셨다. 사료를 한 두 알 오도독 씹으신다. 사료도 절대 많이 먹는 법이 없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만 먹는다. 저 놀라운 절제력이 고양이의 동안 비결인 것일까.




애교부리면서 왜 째려보는 건데...




나는 누가 보아도 강아지과 인간이었는데, 낯가림 같은 것이라곤 없고 그저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기부터 시작했다.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예쁨 받고 싶어서 상대에게 칭찬을 쏟아냈다. 과한 칭찬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다. 나는 이제 고양이처럼 그저 상대방을 바라본다. 칭찬도 인정도,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주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양이가 알려주었다. 조금씩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면서 가까워지는 법. 너무 좋아하니까 적당히 표현해주는 것.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고양이의 치명적인 매력을 조금씩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같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고양이와 살아간다.





눈은 부시지만 햇볕은 쬐고 싶어



사뿐사뿐 걸어서 자기 갈길을 홱 가버리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머리를 비비는 고양이. 가끔씩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기만의 세계로 떠나버리는 고양이. 지금 고양이는 나를 바라보면서 걸어오다 갑자기 멈췄다. 그러다 갑자기 우다다를 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아무리 오래 함께 해도 알 수 없는 존재. 확실한 것은 고양이는 오로지 자신만의 적당한 행복을 유지해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아, 우리 남은 함께 하는 날 동안도 적당히 행복하자.





배 누르지마...





이전 13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