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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15. 2020

감정의 씨앗이 뿌려지다

연애의 풍경. 1화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예전에는 이 표현을 들으면 '어떻게 [사랑]에 금방 빠질 수 있지?'라는 생각을 비판적으로 했다. 지금도 '금사빠'라고 불리거나 스스로 부르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랑'에 금방 빠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무의식의 영역이 강하게 작용하거나 호르몬 작용이 강하게 일어나서 인식, 감정과 감성의 영역을 지배하는 특징을 갖는 사람들일 것이다. 


금사빠들이 금사빠인 것은, 감정의 씨앗에 반응하는 그들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인간은 모두 다른 종류의 흙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흙의 특성에 따라 감정의 씨앗을 빨리 움트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 계절이 오롯이 지나야 새싹이 겨우 조금씩 나기도 한다. 혹자는 그것을 '연애의 속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연애'의 속도라기보다는 '감정'의 속도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함께 형성한 관계를 의미하지만, 감정은 일방향으로도 생길 수 있으니까. 


이처럼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씨앗이 뿌려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사람과 그에 대해서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도 모르게 누군가를 의식하고 바라보면서도 본인 안에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씨앗이 뿌려진 것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어떠 이들은 씨앗이 땅에 닿으려는 찰나에 이미 100m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한 속도의 차이가 때로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이 어긋나기도 한다. 그게 맞는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할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러한 차이는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흙'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성하는 '흙'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그 안에 담긴 영양소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이 맺게 되는 열매와 반응하게 되는 씨앗도 달라진다. 부모님에게서 타고난 성향, 부모님에게서 받거나 받지 못한 사랑,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 내가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줬던 경험. 사람이 어떤 씨앗에 어떤 반응을 어떤 속도로 보이는지는 그런 인생의 경험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호감과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그건 000한 것'이라는 식의 정답을 제시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만큼 편한 것이 그런 호감과 감정의 씨앗이고, '사랑'이란 말을 많이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쉽게 하는 것이 가볍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한 '다름'은 '다름'이지 '틀림'일 수 없고, 그러한 다름은 단기간에 극복될 수 없다. 만약 누가 연애를,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공유해야 하는 가장  큰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그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말 그대로 '씨앗이 갓 뿌려진 상태'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서로 그러한 감정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연인이 되기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씨앗이 뿌린 상태에 불과하고, 그것이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의 종착지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연애는 그 씨앗을 '함께' 키워나가는 과정이다.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새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의 물, 햇빛, 거름, 영양소를 줘야 하고 때로는 가뭄이, 때로는 장마가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듯이,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감정적, 현실적 노력이 필요하고 그 관계는 당연히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서 그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되며,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 한다.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목표를 이룬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갓 연인이 되었다는 것은 결승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연애, 감정과 관계는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그 과정에 쏟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있다. 두 사람이 아무리 감정적으로 좋아했다 하더라도 그 관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두 사람 안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감정이 생기고, 서로 그것을 확인했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씨앗이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씨앗이 뿌려졌다고 해도 그 후의 노력 없이 열매가 저절로 맺어지지는 않는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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