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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28. 2020

연애가 시작되는 곳

연애의 풍경. 3화

자연스럽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든, 소개팅에서든 감정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연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혼자만의 호감에서 끝나고, 또 어떤 감정은 스쳐 지나간다. 세상에는 관계로, 연애로 이어지는 감정보다 고백도 이뤄지지 않고 사그라드는 감정이 훨씬 많을 것이다. 상대에게 나에 대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그 감정을 키울 수가 없었던 상황이 발생해서 감정이 더 키워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감정은 그렇게 키워지지 못한 상태로 내 안에 살아남아 더 깊게 발효되고 숙성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연애'는 두 사람이 최소한 상대에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범위에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사회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 좋아하는 마음 또는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는 감정을 특정인에게 집중시키고 그것을 키워나가겠다고 약속할 때 시작된다. 써놓고도 어렵다고 생각했고, 다시 읽어보고도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 연애의 시작을 줄여서 설명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만큼 연애를 언제 '시작'하는지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흔히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는 세 번 만나고 나면 관계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현실적으로 오로지 '연애'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만난 연애하지 않는 남녀가 3번 이상 만나서 할 수 있는 데이트를 생각해 내기가 쉽지 않고, 3번 정도 만났을 때도 호르몬 작용이 상호 간에 발생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그런 감정적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일리가 없지는 않다.


다만 3번 만나서 서로 어느 정도 호감이 생겼다고 해서 연애를 시작해야만 하는지는 꽤나 자주 문제가 된다. 사실 두 사람이 서로를 연애라는 틀로 구속하지 않아도 적절한 호감이 있는 남녀가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두 사람이 대화를 계속 나눌 수도 있고, 낮은 수준에서 취향을 공유하고 공감했다면 그 영역에 깊이를 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 번 만날 때까지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과는 더 만나서 노력할 필요가 없겠지만, 호르몬 작용이 두 사람에게 모두 일어난다고 해서 두 사람이 반드시 연애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옆에서 봤을 때 설레이거나 눈길이 가는 모든 이성에게 고백을 하거나 그 사람과 연애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3번 이상 만나면서 서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에서는 분명 '너희 그 정도로 만나고 연락하면 사귀는 거야'라고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아니야'라고 하는 사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게 있다. 그런데 또 1-2번 만나고 나서 연애를 시작하기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이미 감정과 관계는 그쪽으로 흐르고 있고, 어차피 연애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면 빨리 그 틀에 들어가서 연인들만 할 수 있는 데이트를 하는 게 낫다'라고 생각한다. 누가 맞는 것일까?


연애의 시작이 어려운 것은 그 두 가지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며, 개인들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의 씨앗이 뿌려져도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기를 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연인이 된 A와 연인이 아닌 A는 어차피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면 빨리 연인이 되어 연인으로써의 상대를 확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자가 뚝배기 라면 후자는 냄비일 수도 있는데,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뚝배기가 냄비보다 더 열기를 오래 머금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다.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만나고, 신중하게 만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빨리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연애는 어차피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연인이 아닌 관계에서 상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점점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에 더해서 두 사람의 감정의 씨앗이 크는 속도까지 다르면 연애의 시작은 더 어려워진다. 어떤 이들은 감정이 빠르게 크고 어떤 이들은 아주 조금씩 크는데, 감정이 빠르게 큰 사람의 속도에 상대가 맞춰주지 못하면 연애는 시작점을 찍지 못하거나 찍고 나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표가 찍힐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문제는 두 사람이 감정의 속도가 모두 느리면 너무 느린 속도 탓에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오해하여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남녀관계에서 두 사람의 감정의 크기가 완전히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한쪽이 상대보다 크기 마련이고, 두 사람이 그 속도를 맞춰가고 삐그덕 대면서 속도를 맞춰가는 것이 연애의 과정일 것이다.


연애를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처럼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어렵고 변수도 많다. 상대를 얼마나 좋아했을 때,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을 때, 상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때 연애를 시작해도 될까? 그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제시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도 본인이 연애를 시작하고 싶은 시점에서 곧바로 연애를 시작할 수도 없다. 어떤 이들은 상대의 감정이 달라서, 어떤 이들은 상대의 속도가 빨라서 연애를 본인이 원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늦게 또는 빠르게 시작하게 된다. 


이렇듯 사람들은 모두 상대에 대한 감정의 온도, 깊이, 느낌이 다른 시점에 연애를 시작한다. 사실 '우리 연애 000일'이란 식의 기념일이 두 사람의 관계를 기념한다는 '형식'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한 연애의 특징은 영어로 연애를 시작할 때 쓰는 표현들이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있을 때 가장 흔히 쓰는 영어 표현은 'Will you go out with me?'였던 것 같은데 (아니면 둘이 밥을 먹다가 'Is this a date?'이라고 묻게 되든지...), 그 표현을 직역하면 '나랑 데이트할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첫 데이트는 다음 데이트로 이어지다 결국 두 사람이 사귀거나, 아니게 된다. 


그렇다. 사실 연애라는 것은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다가 본인들도 모르게 감정이 휘몰아쳐서 언제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점부터 그냥 두 사람이 어쩌다 보니 손을 잡고 있고, 그냥 상대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 관계가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럴 때는 '우리 무슨 사이야?' 정도의 질문으로 관계를 정의하면 되고 말이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그게 고백한 날이든 고백을 수락한 날이든 아니면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가 연인임을 확인한 그 순간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기로 한 약속을 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약속을 빨리 깨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다. 본인이 힘든 건 힘들다고, 맞춰줬으면 하는 부분은 또 솔직하게 상대에게 말하며 맞춰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더 이상 그러하기 힘들게 됐다면, 그것 역시 연애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분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한 때 본인이 호감을 가졌던 사람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는 애매한 감정의 기준점이 아니라 본인이 이성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상대와의 관계에  집중하기로 한 시점, 그 시점이 연애가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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