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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12. 2020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는가?

대화의 원리. 2화

1화에서는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설명했다. 2화에서는 우리는 정말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1화에서 설명했듯이 대화는 말을 (1) 주고 (2) 받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티키타카가 지속적으로 오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화는 말을 잘 주고, 잘 받음으로써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공익광고도 나올 정도니 우리 사회에서 잘 듣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은 최소한 낯설지는 않을 정도로 알려진 사실이다. 회사에서 상사들은 자신들의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라면서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듣지 않고, 연인관계에서도 의견을 내라고 해서 내면 너는 왜 너만 생각하냐고 하며, 부모님은 대놓고 '제발 부모 말 좀 들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회. 오죽하면 '답정너'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사회가 우리 사회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흥미로운 것은, 정말로 잘 듣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귀를 닫고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아 정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들어 먹는지를 모르겠어. 우리나라는 이래서 문제야, 들을 생각을 안 해'라고 하는 모습, 나만 종종 본 광경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위해서 우리 사회는 또 '내로남불'이라는 좋은 말을 만들어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상대가 하면 불륜인 사회. 말을 듣는 것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자세를 갖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점은 아마도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본인 말이 무조건 옳다면서 아이를 억압하는 부모들. 거기에 더해서 '나이 문화'가 있다 보니 나이가 한 살만 많아도 '그냥 조용히 하고 내 말대로 해, 나이도 어린 게'라고 강요하는 선후배 문화. 여기에 마치 '미안하다'라고 내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면 패배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모든 것을 경쟁으로 보고 사람들을 줄 세우면서 작은 것에서조차 승리해야만 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교육시스템까지. 이런 사회, 교육, 가정 문화와 시스템 속에서 잘 듣는 사람이 만들어지긴 힘들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잘 듣지 않는 것만이 문제일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도 잘 못한다. 이에 대해서 '아닌데, 난 말을 잘하는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말을 '잘' 하는 것과 '많이'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말을 잘한다는 것은 TPO,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춰서 할 줄 안다는 것인데 이 수준으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아주 매우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말을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한다. 달변가도 상황에 따라서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일 수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잘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의 이유와 비슷하다. 사람이 말을 하기 잘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말을 할 기회가 없다. 부모는 '부모가 말하면 그냥 입 다물고 들어'라고 말을 끊고, 학교에서 선생님은 말이 많다고 혼내기는 해도 질문을 할 것을 권장하진 않으며, 학교에는 말하는 것을 배우고 익힐 수업도 없다. 군대에서도 계급이 낮을 때는 조용히 있어야 하고,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는 서로 잘 듣지 않다 보니 그냥 말을 마구잡이로 던지고 헤어진다. 토론 수업이 요즘에는 생겼고, 발표를 할 기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교육은 여전히 틀 안에서만 진행된다.


이런 환경에서 '대화'에 필요한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정치인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야말로 말로 먹고사는 직업 중 하나일 텐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면 아랫사람들이 써준 글을 읽거나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왔다 갔다 하기를 최소한 수십 번은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대화'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다. 사람들은 잘 듣지도 않는데 말도 잘 못한다. 사실 잘 듣는 사람은 아무래도 말을 잘 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걸 잘 못하는 것일까? 그런 결과를 만드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하나, 하나씩 이 시리즈에서 다루겠지만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생각이 없다고 하는 건가?'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뭔가를 놓고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머릿속에서 오가는 연산작용들이 다 '생각'은 아니다.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 엄연히 말하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고르기 전에 선택을 하는 것이지.


'생각'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은 사물 또는 현상을 놓고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하고 그것들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기 위해서는 뭔가 한 가지를 놓고 진득하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고민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고 주위 환경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본인의 신념이 정답이며, 그럴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결론은 거의 항상 나 있고, 그렇게 끌고 가면서 밀어붙이는 것이 리더십이고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낭비로 여긴다. 


그런데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떤 맥락에서 하는 것인지를 '들으면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그런 변수에 따라 같은 말도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며, 듣는 사람들은 나와 어떤 관계에 있고, 어느 정도 교육 수준과 경험이 있는지에 기초해서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고려 없이 말을 뱉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해서 경쟁을 통해 이기는 자의 말이 맞는 것이 된다고 여기는 듯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면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말하고 듣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 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서 표현된다. 근력운동을 처음 할 때는 3kg짜리 아령도 들기 힘든 게 1년을 하면 12kg짜리도 쉽게 들게 되고, 까미노를 걸을 때 처음에 10km도 못 걷는 사람이 끝에 가서는 40km를 걷고 나서도 거뜬하게 다음날 또 걷게 되듯이 말하고 듣는 것도 훈련이 되고 연습이 되면 즉각적으로 TPO에 맞는 듣기와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말하기와 듣기는 학원을 다닌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학원에서 아무리 그 연습을 하더라도 일상에 그걸 적용하는 것은 본인 몫이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고, 잘 듣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듣고 말하는 것을 의식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순간, 순간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대화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고, 문제는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꼰대가 늘어가고 진정한 대화는 줄어든다. 지금 웃으면서 '라떼는 말이야~' 나 '내가 탑골 세대라서~'라고 쿨한 척 말하며 그게 '대화 코드'에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대방은 당신과 대화와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 


본질에 대한 고민과 본인을 돌아보는 노력은 없이 껍데기만 흉내 내는 문화. 그런 문화와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대화다운 대화가 이뤄지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꼰대가 너무 많아'라고 생각했다면 긴장을 풀지 말자. 너무 쉽게 그런 판단을 하는 당신도 어린꼰대일 수 있으니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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