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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24. 2020

연애에서 데이트의 의미

연애의 풍경. 7화

[데이트]는 연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영어권 국가에서도 그렇다. 연인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행위가 날짜를 의미하는 [데이트]라는 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행위의 본질이 그 날 또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건 두 사람의 자신의 시간,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 중 일부를 상대와 단 둘이 보낸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단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두 사람이 그 시간만큼은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고,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이는 아주 작은 의미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 행위를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때로는 수시로 한다는 것은 시간이 곧 돈인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큰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이 되면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정답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연인이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주기적으로 만나고 싶으면 그때서야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맞지 않을까? 영어로 '둘이 사귀냐?'는 질문을 'Are you two going out?'이라고 묻기도 하는 건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지점을 바로 잡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연인이니까 000할 수 있고, 해야지'라는 명목으로 데이트 폭력이나 특정한 행위나 결정을 강요하는 문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은 [연인이면 000을 할 수 있다]를 전제하는 것인데, 000에 뭐가 들어가든지 간에 사실은 000이라는 행위나 결정을 하고 싶기 때문에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인이라서 연락을 자주 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모두 자주 연락을 하고 싶으니까 연인인 것이고, 연인이라서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스킨십을 하고 싶으니까 연인인 것이며, 연인이니까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상대가 공감해줬으면 좋겠기 때문에 연인인 것은 아닐까? 사실 이 부분만 바로잡혀도 우리나라에서 데이트 폭력 중 상당한 부분은 해결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연인이라 하더라도 상대와 연락을 하지 않는 게 더 편하다면, 상대가 요구하는 스킨십에 거부감이 든다면, 상대의 일상과 생각이 궁금하지도 않고 나의 일상과 생각을 굳이 상대와 공유하고 싶지도 않고 상대의 공감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 연인이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인의 데이트는 어떠해야 할까? 데이트에 대해 내가 들은 말 들 중에서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놀랐던 말들에는 '현실적으로 연애 3개월 하면 더 이상 같이 할 게 없잖아. 그러니까 스킨십 중심으로 가는 거지 뭐'라는 말, '이미 이전 연인이랑 다 해본 걸 다른 사람과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그냥 다 그렇고 그런 거지'라는 말 등이 있다. '현실적으로 소개팅하고 나서 3번 만나고 나면 같이 할 게 없으니까 사귈지 말지를 그때 결정하는 게 맞다'는 통설 아닌 통설은 그런 관점이 반영된 것인 듯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데이트가 연인 간에 갖는 의미, 아니 당위적으로 가져야 하는 의미에 대한 오해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당장의 즐거움, 순간적인 쾌락만을 위해 상대를 만난다면 그런 말들이 맞다. 하지만 사실 에로스적인 측면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만 배제한다면 그건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있는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 중 하나로 머물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연애를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상대에게 헌신할 것으로 요구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요구가 형성되게 된 배경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신뢰하고 마음을 둘 수 있으면서 온전히 쉼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고, 모두가 개인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과 노력은 데이트라는 형태로 이뤄지게 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경험에는 뭔가를 직접 함께 하는 것과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공유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대화가 두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데이트에서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보다도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이는 연인인 두 사람은 연인이 되기 전까지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고 연인이 된 이후에도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내가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의 역할을 한다. 사실 사람을 쉽게 신뢰하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내 속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해지고, 속마음을 말하게 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인간의 감정이다. 따라서 감정은 두 사람이 자신의 속을 상대에게 보여주게 되는 '수단'이 되어야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연애를 하는가? 감정적인 불안감 때문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연인관계에는 그러한 요소들이 분명 포함되고 작용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연애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그 두 가지 이유가 연애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는 것은 상대를 나의 감정과 욕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연인은 서로가 자신의 속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의 현재를 지탱하는데 힘이 되어줘야 하며, 연애는 그러한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관계는 평등해야 하고, 상호 간의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데이트는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이상적인 연인관계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데이트를 '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은 대화를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화가 잘 되는 것은 잘 말하는 것과 함께 잘 듣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화가 데이트와 연인 관계의 핵심인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연인 간의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사실 두 사람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이성적으로 이해하면서 상대의 말을 들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연애와 데이트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감성과 감정보다도 이성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감성과 감정은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지만 이성은 우리가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으니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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