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Apr 20. 2020

이별의 시작점

이별의 풍경. 2화

연예인들 이별의 가장 흔한 사유. 성격 차이.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무슨 성격 차이만으로 헤어지겠냐면서 뒤에 뭔가 엄청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게 실제로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일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사유를 일반화해서 발표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대부분의 경우 그게 사실이라 믿는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업으로 할 뿐, 연예인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격 차이로 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린 이별의 의사를 상대에게 밝힐 때 특정한 사유나 계기를 상대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유나 계기들 중에 거창한 것은 거의 없다. 상대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웠거나, 알고 보니 기혼자였거나 엄청난 폭력을 휘둘러서 도저히 더 만나면 안 될 상황이 된 경우처럼 누가 봐도 헤어져야만 하는 사유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흔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 연인의 비율은 여전히 성격차이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연인의 비율보다 낮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성격 차이'로 인해서, 그냥 두 사람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다는 이별의 사유는 이면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런 사유로 헤어지는 관계는 하루아침에 끊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두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으로 인해 금이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게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고, 그걸 폭발시킨 계기는 두 사람의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정말 딱 그 계기로 인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는 상대에 대한 불만이나 함께 하는데 느껴지는 버거움이 그 계기로 인해 그 관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별의 시작점은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된 계기보다 훨씬 이전에 자리를 잡는다. 모든 갈등이 이별의 시작점이란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는 연인이나 부부가 어디에 있겠나? 다만 '발생한 갈등으로 인한 상처나 마음속에 진 응어리를 해결하고 지나갔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냥 대충 둘이 말로 해결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두 사람 중 한 사람 속에 상처나 응어리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때부터 상처와 응어리들이 그 위에 쌓이면서 두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두 사람의 이별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상처나 응어리를 의식하고 머리나 마음에 남겨둘 때도 있지만,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그 여파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을 때도 있다. 전자의 경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상당한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이별을 준비하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 두 사람 모두 그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낼 수도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와의 무엇인가가 계속 거슬릴 때, 불편할 때 그건 어쩌면 후자처럼 내 안에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상처 등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의 세계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인지하는 것보다 인지하지 못하는게 더 많다. 따라서 본인이 왜 상대에게 특정한 감정이 생기고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지를 모르는 것에 대해서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그러하는 것을 놓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이 차분하고 솔직하게 본인의 마음을 상대와 대화로 공유하다 보면 그건 자연스럽게 파악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대화는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처나 응어리를 남겨두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상대와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본인의 감정적 상태를 그때그때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본인이 유별나 보일까 봐, 상대는 그걸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까 봐, 상대가 그걸 싫어하는 것을 알아서, 불편한 얘기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 싫어서 등등.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든지, 두 사람이 만난 지 얼마가 되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런 대화는 적절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솔직하게 나눠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솔직하게 상대에 털어놓고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누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의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게 될 것이고, 본인은 엄청나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상대와 본인이 약간의 양보만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 문제를 앞에 내놓기 전에는 본인이 몰랐던 상대방의 특정한 상황이나 배경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상대에게 말하기 전에 아무도 알 수 없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문제였을 수도 있는 것을 본인이 속에만 담아둠으로써 일을 키우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대화다. 우리는 서로 무엇인가를 함께 함으로써 신뢰를 쌓고 상대를 알아가기도 하지만 대화를 통해 그러하기도 한다. 문제가 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그 문제를 앞에 내놔야 한다. 이별하기가 두려워서? 그걸 앞에 내놓지 않는다고 두 사람이 이별하지 않을까? 오히려 앞에 내놓지 않고 안에 쌓아둠으로 인해서 이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상대와 본인이 이별하게 된 원인도 모르는 상태로 이별해서 마음속에 미련만 가득 남아있게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본인을 어떻게 볼지가 두려워서? 사실 그것도 결국은 이별이 두렵기 때문인데, 상대 앞에 내 모습을 솔직하게 내놓음으로 인해 이별할 관계라면 두 사람은 언젠가는 결국 이별할 것이다. 이별하지 않더라도 그 부분이 계속 불편하게 건드려질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연애는 어쩌면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연애 초기에는 상대에게 자신을 다 보여주는 게 부끄러울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부족하거나 모자란 면보다는 좋은 면을 먼저 보여주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연인은 만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에게 나의 모습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버티면서 나의 포장된 모습만 보여준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면서 헤어지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것만 보여주면서 살겠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는데 왜 본인은 상대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려 할까? 그것도 일종의 오만이 아닐까? 


대화로 자신의 속마음을, 감정을 상대와 공유하지 않는 관계는 그 순간부터 이별이 시작된다. 그로 인해 속에 쌓여 있는 상처나 응어리를 해결하고 가기 전에는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은 연애가 아니라 이별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별하게 되면 어쩌냐고? 그렇게 솔직하게 대화를 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가진 이별은 그 후유증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그 과정을 겪게 되면 두 사람이 함께 하기에 힘든 관계라는 사실을 수긍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이별은 상대방에게는 상처를, 통보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나 미련을 남길 수 있다. 


두 사람의 이별은 어느 시점엔가 확정되지만, 이별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연인 또는 부부였던 사람이 이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항상 있다. 그 시작점은 두 사람의 이별보다 훨씬 이전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Seoul Talker(영어-클릭)


이전 14화 우리는 반드시 이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