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풍경. 5화
'환승'이란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면 그 자체가 부정적이고 가벼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사람들에게 이 표현만큼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와 닿을 표현은 찾기 힘들었고, 그래서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환승'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좋으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난 가장 이상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감정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희미해지고 희석되었을 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전 사람이 생각나는 빈도나 깊이가 덜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에게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고백을 한 적도, 연애를 마친 지 며칠이나 몇 주 안된 시점 또는 상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안되어 보이는 시점에 고백을 한 적도 없다. 이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품고 있었던 마음을 고백한 적은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 그 고백도 '지금부터 나랑 만나자'는 의미는 아니고 그 사람이 나도 옵션으로 고려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꺼낸 말이었는데 그게 그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환승'은 나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사람들이 환승이라고 주장하는 행위가 일어난 시점에 이전 연인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두 사람이 마치 상대만 만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먼저 만나기 시작한 연인에게는 그 관계에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나중에 만난 연인에게는 연애가 흔들리고 있거나 거의 끝난 것처럼 말하면서 환승을 했다면, 그건 이기적인 결정으로 부도덕적인 결정과 행동이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의 연애가 실질적으로 끝난 상황이었다면, 한쪽이 헤어지자고 말을 하고 마음의 정리를 한 상황에서 상대가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그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이는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 연애는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의 글에서도 썼지만 모든 이별은 그 이별이 공식화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전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새로운 연인이 언제부터 상대의 마음에 들어왔는지가 환승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끝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끝난 연애는 흔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경우, 만약 본인이 그 연애가 끝났다고 생각되면 그 관계는 끝내는 게 맞다. 어떤 이들은 혼자 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이미 끝난 연애도 질질 끌면서 새로운 만남을 모색하는데 이는 자신이 한 때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않나? 자신이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기분이 어떨까? 좋을 리가 없지 않나? 실질적으로 끝난 연애를 자신의 외로움과 감정,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유지하면서 환승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굳이 화도 내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기억하고 화를 낼 가치도 없는 사람이니까.
이처럼 연애의 끝과 시작 사이에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확실한 것은 본인이나 상대 모두를 위해서, 새로운 연애는 본인이 전에 만났던 사람과의 관계가 자신 안에서 완전히 해결되었을 때 시작해야 한단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만남이 더 아름답게, 잘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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