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풍경. 4화
완벽한 사람은 없다. 감히 장담컨대 내가 브런치에서 이상적으로 쓴 내용들을 모두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걸 요구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 사람의 미숙하거나 부족한 면으로 인해 그 사람이 미안해 할 수 있으면 그거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들 중에서는 내 연애관과 연애방식이 투영된 글들도 있지만, 나의 오답노트 같은 글도 있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돌아서서, 또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잘못했거나 틀린 것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쓴 글들도 브런치에 있다. 이 글이 그렇다.
난 이별의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서 상대를 놓고 분석했고, 판단해서 통보했고 상대에 대해서는 그 이후 마음의 문을 이성으로 닫았다. 이는 내 이전 글에서도 이실직고한 바 있다. 난 부족한 사람이었고,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게는 다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 역시도 적지 않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할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예의를 지키지 못하고 통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받은 이별 통보도 예의를 지키지는 않은 통보들이었다는 데 있다. 난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난 적이 없으니 그 사람이 나의 이별통보 방식을 알았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나는 나의 이별 통보 방식보다 더 예의가 없는 방식으로 통보를 받았다. 한 번도 싸워보지도 않고, 솔직한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던져지는 이별통보라니...
이별에도 예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난 있다고 답하겠다. 이는 이별을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연인관계였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단 것은 상호 간에 서로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더 깊게 알아가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그 약속을 할 때 본인은 큰 확신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순간에는 성인인 본인이 약속을 했다면, 두 사람은 그 순간서부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연인 간의 다툼과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배에서 태어나 한 가정에서 자란 형제도 각자의 색이 다른데 다른 집에서 태어나 성장환경도 다른 두 사람 간에 다른 면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다면 두 사람인 그 다툼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본인이 그 관계에 약속을 했으니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반응했고, 본인은 그 상황으로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떤 느낌이 있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두 사람이 콩깍지가 완전히 씌워지지는 않은 상황에서 연인이 되었다면 그러한 갈등은 초기에 생길 수 있는 반면,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확 타올라서 연애를 시작했다면 초기에는 갈등이 없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초기에 갈등을 잘 해결하면 상호 간에 신뢰가 두터워져서 관계가 갈수록 단단해질 수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 연애 초기와 다른 모습에 갈등이 심해져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두 경우는 다를 뿐이지 어떤 것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갈등이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그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도 해보지 않고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다. 이는 그 문제는 사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 이해하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도 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건 본인이 상대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이별 통보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게 이별을 통보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 순간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게 된다. 본인이 한 때 호감을 가졌거나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런 상처를 입히는 것만큼 이기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래야 그 사람의 상처가 덜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에, 그것도 본인이 연인으로 지내기로 약속했던 사람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건 이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상대가 이유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대가 그에 대해 납득하는 것과 본인이 본인의 예의를 다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렇다면 그렇게 이별하는 것은 상대에게만 상처를 남길까? 아니다. 사람들은 이별할 때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연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할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상대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해봤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왜 이전 연인들과 맞지 않았는지를 알아서 다음 선택에서는 조금 더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대화를 깊고 진지하게 해보지 않은 사람은 다음 선택도 이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상대를 선택을 해서 같은 방식으로 이별할 확률이 높다. 그게 반복되면 본인도 그 과정에서 지치고 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애의 시작과 끝은 단순히 남녀가 만나서 같이 놀고 스킨십을 하고 헤어지거나 스펙을 맞춰서 결혼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연애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애를 할 때, 그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이별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별하는 과정에서야말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많이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우리는 갈등을 겪으면서야 비로소 우리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별은 이처럼 내가 한 때 호감을 가졌거나 좋아했던, 또는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본인이 다음에는 더 나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예의를 갖춰서 해야 한다.
'연인이 헤어지고 나서 어떻게 친구가 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주로 감정에만 치우친 연애를 한 후에 예의를 갖춘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했을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두 사람이 친구로 지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전 연인과 친구처럼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나 국가에서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연인처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헤어진 연인이 꼭 친구처럼 지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우연히 지나가다가 서로를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볼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되는 건 필요한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기 위해서는 잘 헤어질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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