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y 18. 2020

이별의 의미

이별의 풍경. 6화. 

사람에 따라 이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이들은 이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다 보니 쉽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또 그 사람과 다시 만남을 시작한다. '저희 0번이나 헤어졌다 다시 만났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에 해당한다. 그들은 '이별'이나 '헤어짐'을 말하지만 사실 그런 표현은 자신이 섭섭함을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태어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러한 '이별'의 활용법이 바람직하거나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조금 더 나가서 그런 표현은 폭력적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는 그렇게 가볍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면에는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너는 그 문제에 대해서 내 말을 들어주게 될 거야'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날 좋아하기에 이별을 통보하면 나를 다시 붙잡기 위해 결국 그 관계가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형성될 것이란 생각은 누가 뭐라고 해도 폭력적이다. 


연인 간의 만남도 신중해야 하지만, 이별도 신중해야 한다. 이는 연애의 시작은 한 사람이 나의 인생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별이란 것은 내가 내 인생에 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을 내 인생에서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의 글에서도 썼듯이 이별을 해도 친구로 지낼 수는 있다. 미국에서는 이별하거나 이혼한 이후에도 제일 좋은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적당한 지인이나 친구로 지내는 것은 몰라도 best friend로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반대하는 편이다. 이는 나는 연애를 하고, 연인이 있다는 것은 그 연인이 본인의 best friend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가 상대를 내 인생의 큰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별은 그 큰 부분에서 상대를 삭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이별하는 것에 대한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상대와 맞춰나가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앞의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상대가 한 때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상대도 이별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 '이별은 내게도 힘든데 내가 상대까지 그렇게 신경 써야 하냐?'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 본인에게도 필요하고 좋다. 우선 한국사회는 워낙 좁기 때문에 상대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예의가 없거나 기본이 되지 않은 행동이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본인의 평판에 좋을 것이 없다. 나 같은 경우 지인의 이별 방식을 듣고 그 사람을 내 지인에게 소개해주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내가 누군가를 소개해준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 평판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단 것인데,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내 지인에게 소개해 줄 수는 없지 않나?


그게 현실적인 부분이라면, 마음적인 측면에서도 이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다. 이는 본인이 자신의 큰 부분이었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그 이후에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야만 상대를 온전히 내 인생에서 이별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이별을 하고 나면, 항상 그러지는 않겠지만 가끔씩, 심지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중에도 이전 연인이 시시때때로 생각날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이 현실에서는 이별했을지 몰라도 마음의 잔상까지도 이별하고 상대를 떠나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별의 끝에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별은 공식적인 이별 후에 그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이별은 상대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들 때, 서로 정말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한 사람이 있었다. 상대도 예민한 편이었고 나도 둔한 편은 아닌데 상황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어서 우리는 데이트를 항상 다툼으로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로 화해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게 중요한 시험이 남았기에 일단 헤어지고 내 시험이 끝난 후에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서 시험 2주 전에 엄청나게 긴 이메일이 왔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면서 시험을 준비할 정도로 예민하고 힘들었던 난 상대가 너무 배려가 없단 생각에 그 이메일을 읽지도 않고 삭제하는 것을 넘어서 휴지통까지 비워버렸다. 그래서 난 그 이메일의 내용을 지금까지도 모르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후회가 되고 기억에 남아있다. 그 친구와 난 헤어진 지 7년이 조금 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가는 것을 고려했던 길을 당혹스럽게도 최근에 내가 시도해보기로 했다 보니 그 기억이 유난히 더 자주 난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 친구가 그립거나 이별한 것이 후회된단 것은 아니다. 그 친구와 내가 계속 만났어도 함께 가정을 꾸리지 못했을 경우의 수가 훨씬 많다는 생각도 수십, 수백 번도 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 않은 이별은 지금까지도 가끔씩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래서 이별은 완전해야 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Seoul Talker(영어-클릭) / 댄 청의 이야기방 (한국어-클릭)


이전 18화 이별과 '환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