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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l 15. 2020

대화 잘하는 법에 대하여

에필로그

'대화의 원리'란 주제로 글을 쓴지도 어느새 24주가 되었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됐다. 대화하는 기술이나 요령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이 시리즈에 실망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대화하는 기술,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들은 단기적으로는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그래서 그런 책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 이 시리즈는 제목 자체가 페이크다. 난 사실 우리 사회의 '관계'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 이 시리즈를 썼다. 왜 '관계'가 아니라 '대화'를 제목으로 잡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우리의 모든 관계는 사실 대화로 형성되고, 강화되거나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내용을 전달한다. 물론, 사람들은 뭔가를 같이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에 대한 상대의 느낌, 감정, 생각은 모두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우린 사실 서로 대화하는 만큼만 상대를 안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의 원인을 다양하게 꼽지만 사실 정말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 핵심에는 '대화의 부재'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했다고 말하는 자리를 촬영해서 돌려보면 우린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지,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은 연배가 있으신 분들의 말과 생각을 꼰대라면서 듣지 않고,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나이가 어린 게 뭘 아냐면서 무시하면서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자들은 본인들만 힘든 줄 알고 불평, 불만만 한다며 그녀들의 말을 듣지 않고, 여자들은 남자들은 마초고 자기중심적이며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며 남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 맞는 말인데, 다 틀린 말이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있을 수는 있는데 10년이면 강산이 2-3번도 바뀌는 이 시대의 흐름을 모르고, 젊은 사람들은 시대적 변화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은 잘 알지만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과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모른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단순해서 결정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변화에 약할 수 있고, 여자들은 보통 여러 가지 변수를 볼 줄 알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예민해서 리스크를 잘 잡아내고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결단을 하는데 약할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서로의 말을 존중하고 들으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수용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들어줬을 때 수용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년에 연구과제를 하기 위해서 북한이탈주민들 20분 정도를 인당 1시간 이상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분들 중 1시간만 인터뷰하고 돌아간 분은 없었다. 연구를 하기 위한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상대의 말에 완전히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데, 내가 자신들의 말을 거의 듣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색했던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얘기를 술술술 하시더라. 어떤 분은 2시간 넘게 자신의 얘기를 하다 끝내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분은 인터뷰가 끝나고 나가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남쪽에 내려와서, 누구도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들어준 적이 없다고 하셨다. 


최근에는 아는 작가님께서 준비하시는 작품 준비를 위해 내 지인들을 같이 인터뷰하고 다녔는데, 그분들은 하나 같이 본인 얘기를 이렇게까지 오래 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인터뷰는 그분들이 해주셨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만을 바라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50 정도 하고, 상대의 말을 50 정도 들어준다면 그 대화도, 관계도 풍성 해질 텐데 우린 하고 싶은 말을 70-80, 때로는 100을 하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왜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상대가 왜 본인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대화의 핵심은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데 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연 다해도, 상대가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면 상대가 내 말을 들어줄 수가 없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내 말을 상대가 듣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상대의 말을 먼저 들어줘야 한단 것이다. 대화의 핵심에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듣기'란 무엇일까? 혹자는 '난 상대 말을 잘 들어주는데?'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서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의 말을 할 타이밍을 보는 것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듣기'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사람들이 때로는 개똥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맥락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특히 처음 만났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느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하는 대화와 관련 없는 것이어도. 이는 상대방과 A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어도, 상대방의 B, C, D를 알지 못한다면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파악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문점이 들 때면 우린 상대방에게 그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질문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상대가 말을 하면 자신이 그것을 자신의 맥락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도와 메시지의 왜곡이 발생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잘 듣기 위해서는 이처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그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람보다 돈, 공동체보다 자신이 꽤나 자주, 어쩌면 거의 대부분 경우에 우선한다. 돈이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은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 풍요로움이 공동체보다 항상 우선인 것은 이기주의지 개인주의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선 대화가 형성될 수 없고,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수준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보고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금전적으로는 안정성을 담보해준다. 사람의 신뢰를 얻어서, 그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한다면 한 곳에서 구멍이 나도 다른 사람이 이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항상 먼저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를 돈으로만 보고,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몰린다. 그리고 물론, 나 개인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본인도 장기적으로는 그 공동체의 발전에 덕을 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 안에서 살아가지 않나? 그렇다면 공동체가 잘되는 것이 사실은 본인이 잘되는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장기적인 차원에서 본 다면 사람을,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우리는 그래서 항상 사람을 봐야 하고, 사람을 먼저 보는 것은 자신과 다른 환경과 배경에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공감하는데서 시작된다. 


대화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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