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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l 08. 2020

강연 / 강의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23화.

어떤 이들은 제목을 보고 '강연이나 강의에 무슨 대화가 있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화를 '물리적으로 [말]을 주고받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강연이나 강의에서 강사는 말을 주로 하고, 그 말을 듣는 회중은 주로 듣기 때문에 강연이나 강의는 대화가 아닐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강연이나 강의는 말을 하기만 하거나 듣기만 하는 자리로 여겨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한 학기 내내 수업을 맡아서 강의를 한 적은 없지만 단편적인 주제를 갖고 강의를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내가 강의를 하면서 받았던 가장 독특한 느낌을 들라면 그건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온몸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자리에서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내 말을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고, 또 다른 자리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저 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강의를 하다 보면 누가 내 말을 듣고 있고 누가 다른 짓을 하고 있는지도 느껴졌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강의하는 사람이 그걸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긴장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지 않다면, 본인의 감각이 긴장감에게 잡아먹힌 상태가 아니라면 강의나 강연에서는 사람들이 본인의 말을 어느 정도로 듣고 있는지는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강연이나 강의에서 주로 듣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지만 말하고, 강사는 듣지 않지만 듣는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사실 강의나 강연을 처음 하는 사람은 본인이 긴장해서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집중하고 듣고 있는 수준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준비한 것을 시간 안에 모두 전달하는데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강의나 강연을 거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너무나도 전문적인 분야에서 그 분야만 봐온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이런 우를 범한다. 


그런 사람들, 특히 본인의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과도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내 얘기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본인이 본인 분야를, 본인이 강의하거나 설명할 분야를 잘 아는 것은 본인이 그만큼 그 내용에 시간과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본인 앞에 앉은 사람들은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 몰라도 본인이 자신의 분야에 집중했던 시간에 다른 것을 해왔기 때문에 본인보다 잘 아는 분야가 보통 한 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의 강연이나 강의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상대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고 소화되지 않는 강의나 강연은 전적으로 강사의 잘못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강의처럼 미리 소화하고 와야 할 리딩이나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준비를 하지 않고 온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망한 강의나 강연은 전적으로 강사의 잘못이다. 이는 강의나 강연은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이어도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직장인, 가정주부를 상대로 한 강의는 달라야 한다. 메시지가 같아도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방법으로 내용이 전달되어야 한단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모든 게 그렇게 단순화될 수 있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자신이 강의 또는 강연하는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핵심을 잡아내서 그 부분을 강조해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메시지를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본인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의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듣는 목적과 목표가 있고, 메시지는 그 사람들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디자인되어서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관심이 없던 사람도 집중시킬 수 있다. 강의나 강연은 보통 돈을 받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라고 돈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전부 강사들의 탓일까?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강사를 볼 때 보통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자리에 앉는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강사의 말을 무조건 선해하거나 무조건 비판하기도 하고, 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아예 말을 듣지 않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강의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곱씹고 질문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서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고민할 때야 비로소 강의나 강연은 그 사람 개인에게 의미가 있어진다. 이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 강사의 생각, 경험과 지식이 본인의 것으로 개인화되어 체득되기 때문이다. 


'김제동'이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고, 나는 그분이 하는 주장들에 공감이나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톡투유'라는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그는 훌륭한 강사 또는 강연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그는 형식적으로는 진행자로 있었지만 그는 사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분들과 청중 사이에서 메시지를 중재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형식적으로는 진행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연을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곤 했다. 그의 말이 강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상대의 말을 적극적으로 듣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듣는 사람 개인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청중도 고려하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강연이나 강의가 톡투유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실력 있는 강사라면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메시지의 강도, 빈도, 전달 방법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의나 성공의 실패는 1차적으로는 강사에게 달려 있고,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내용을 얼마나 말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듣는 사람들의 상황을 살피며 그 자리에서 메시지를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나이, 성장환경, 교육 수준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는 강의나 강연은 그래서 어렵다. 맞출 수 있는 기준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강연이나 강의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유익하고 의미가 있지만 본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어쩌면 본인이 자신의 주관과 선입견에 빠져서 강의나 강연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강의나 강연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기존 생각과 사고방식을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럴 생각 없이 강의나 강연을 듣는다. 혹자는 강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들은 강사를 비판하기 위해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본인이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더 강화시킬, 본인이 편하게 느낄만한 강의나 강연만을 쫓아다니며 자신의 선입견을 더 강화시킨다.


학문과 이론이 현실에서 힘을 잃는 것은 대부분 학문과 이론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정말 냉정하고 차갑게 현안을 바라보고 분석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도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쟁만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틀리면 그것이 종국적인 패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강화된 본인의 선입견은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생각은 무조건 틀린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불통'과 '갈등'은 그로 인해 발생한다. 객관적이기 위한 노력이나 고민 없이, 형성된 선입견을 강화시키기 위한 강의나 강연은 그대로 빨아들이고 그와 다른 강의나 강연은 모두 배척하는 시대. 우리는 그렇게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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