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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l 01. 2020

인터뷰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22화.

*여기에서 인터뷰는 면접이 아니라 글이나 영상의 소재를 찾기 위해 진행하는 인터뷰를 의미한다. 면접이라는 의미의 인터뷰에서의 대화는 이 시리즈 이전 글에서 다뤘다


인터뷰는 목적이 분명한 대화다. 아무리 중립을 지키면서 진행하는 인터뷰라 하더라도 인터뷰에서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서 뽑아내기 위한 내용이 분명히 있다. 심지어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결과물에 결론을 내놓고 그에 맞는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실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9시 뉴스에 스치면서 지나가는 행인 인터뷰가 아닌 이상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도 보통 의도를 갖고 카메라 앞에 선다. 예를 들면 기업 홍보실에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뷰 대상인 사람은 자신이 속한 기업에 유리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에 응할 것이다. 홍보실 사람이 아닌 일반 직원이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에는 홍보실에서 사전 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인터뷰 현장은 사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상대에게서 본인이 원하는 말을 끌어내야 하고, 인터뷰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최대한 회피하고 유리한 말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A를 묻는데 B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시도를 하면 이는 오히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을 자극해서 더 부정적인 내용이 나가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엄청난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학부시절 한 글로벌 의류회사의 웹진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반인 인터뷰들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난 인터뷰의 목적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내가 필요한 말을 끄집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님을 배웠다.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들은 보통 무슨 말이 필요하고,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중립적인 질문을 던진 후에 '예를 들면 0000 같은 내용으로 답을 해주시면 돼요'라고 말하면 인터뷰 대상이 되는 사람은 보통 그 말을 그대로 반복하거나 그와 관련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한다. 인터뷰 진행자들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은 상대에게서 본인이 의도하는 말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카메라 앞에서 위축되고 경직되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상대의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평상시보다 텐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인터뷰 진행자가 그렇게 진행을 해야 상대의 에너지 레벨이 평소 수준으로 끌어올려진다. 연예방송에서 리포터들이 과장되게 말하고 톤을 높이는 것은 쇼적인 측면도 있지만 인터뷰 대상에게서 최대한 밝은 모습을 끌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연예인들은 항상 인터뷰를 하는데 그게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능을 업으로 삼는 연예인이 아닌 이상 연예인들도 촬영한 영상이 그대로 방송되는 인터뷰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들에게서 밝고 즐거운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터뷰어도 텐션을 올려야 한다. 


그런 인터뷰에서 인터뷰 진행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 인터뷰의 목적을 기억하고,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대화를 어떻게든 본인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질문이 맥락이 없거나 튀게 되면 인터뷰 자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몰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에게는 말하고 진행하는 것만큼이나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상대가 내 말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 주는 게 중요하고, 그 사람이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인터뷰를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정말 능숙한 사람이 인터뷰를 거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그 결과물은 대부분 완전히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 의도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단체들이 대변인을 두고, 인터뷰에 나서는 사람들을 반복해서 내보내는 것은 그들은 그런 노력 없이도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인터뷰 대상인 사람이 인터뷰에 익숙한 사람인 것이 훨씬 편하다.


그렇게 인터뷰에 익숙한, 인터뷰를 자주 해본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는 기술적으로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이에서의 밀당은 훨씬 치열하다. 이는 그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이 필요한 말을 끌어내야 하는 인터뷰 진행자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도 점잖아 보이고 튀지 않아야 하는 인터뷰 대상자 간의 긴장감이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그 의도가 곡해되지 않을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어순까지 계산해야 하면서 인터뷰에 응해야 한다.


이러한 인터뷰에서도 핵심은 [듣기]에 있다. 이는 인터뷰 대상이 되는 사람은 상대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에 대한 적절한 답을 할 수 있고, 인터뷰 진행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상대의 답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 맥락에서 다음 질문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터뷰 대상자의 경우, 그 과정에서 상대가 본인이 원하는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제에 대해 진행되는 인터뷰 현장은 전쟁터가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현장은 그런 전쟁터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정치와 관련된 영역에서 잘 드러난다. 정치인들의 경우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말하고, 상대의 의도를 듣고 계산하면서 인터뷰에 응하거나 국회에서 이뤄지는 여러 청문회나 질의응답 시간에 응해야 하는데, 그걸 잘 해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사실 가장 잘 들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잘 듣지 않는데서 시작된다. 


물론, '아무 말 대잔치'로 보이는 모든 질의응답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아무 말대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전략은 정말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이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효과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전략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질 정도의 말들이 쉽게 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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