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vs. 소유욕

사랑의 풍경. 7화

by Simon de Cyrene

앞이 글에서 나는 호감,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을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끌리는데서 시작하여 상호 간의 신뢰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을수록 사랑에 가깝거나 더 큰 사랑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난 상대를 신뢰했는데 상대가 나의 신뢰를 깼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뢰'를 '상대가 나의 마음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갖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본인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했을 때 상대의 입장을 들어보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상대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맞춰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소유하려는 것이다. 상대가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나와 다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이유로 화를 내거나 분노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다름이 반드시 틀림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사람이라면 상대가 본인을 불편하게 했을 때 상대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맞춰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앞의 글에서 내가 말한 사랑에서의 '신뢰'는 상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연애는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그 다름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상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긴다. 그런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기지 않았을 때, 상대의 정직하지 않음으로 인해 상대가 예측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을 때, 예측 가능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 이상의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해질 때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상대가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줄 것이란 신뢰'가 잘못된 가장 큰 이유는 상대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다. 아니, 나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우리가 처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모르고 있었던 우리 모습을 발견하지 않나? 그런데 상대가 어떻게 모든 것을 내게 맞춰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문제가 왜 생길까? 그런 문제는 그 사람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발생할 때도 있지만, 연인의 경우 사람들이 감정의 소용돌이 덕분에 연애 초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이상을 상대에게 쏟아내고, 상대는 상대가 평생 그럴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하고, 상대가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1-2년까지는 본인을 깎으면서까지 맞춰줄 수 있지만 평생, 항상 그럴 수는 없다. 따라서 연애 초기에 상대가 해주는 것은 고맙게 받되, 그게 평생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 기대는 버리는 게 맞다. 그래야 그게 유지되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연애할 때 그렇게 맞춰줄 수 있는 것은 연애할 때는 일주일에 만나고, 통화하고 연락하는 시간을 아무리 합쳐도 그게 두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의 1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시간과 영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본인의 생존이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위대한 것은 엄청난 일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을 넘어서, 상대를 자신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인데, 그런 사랑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넘어서 벽을 허무는 것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거나,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노예 관계다 (나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랑의 노예'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예는 누군가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인데, 본질적으로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되는 사랑이 어떻게 무엇인가를 노예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상대가 더 많이 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노동을 하라는 것으로 노동착취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대가 내게 모든 것을,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것을 일방적으로 맞춰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는 벽을 허물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벽을 전혀 허물지 않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일 수 없다.


'오빠 믿지?'라던지 '사랑하는데 이 정도 스킨십도 못해?'라거나 '사랑한다면서 그 정도도 못해줘?'라는 말들이 사랑이 아님은 이 때문이다. 그런 말들은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사람을 철장에 넣어 놓고 필요할 때 밭에다 풀어서 일하게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를까? 상대의 no는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 상대가 no라고 했을 때는 본인이 정말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믿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사랑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모든 관계에서 그런 생각이 들거나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아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서로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맞춰가야 한다. 그게 싫다는 이유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면, 그 관계는 끝내는 것이 맞다.


가족이 엄청난 딜레마인 것은 이 때문이다. 연인관계야 끝내면 되고, 부부관계도 연인관계만큼 간단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혼을 하면 되는데 혈연으로 엮인 관계는 내가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 분명한 것은 가족관계에서도 누구도 누구를 소유할 수 없고, 소유해서도 안된단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그 의사를 존중받아야 하고, 부모는 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아이의 시선에 맞춰서 설명해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른은, 그래야 어른이다. 그렇지 않은 성인은 어른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아이와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독립한 인격체이고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지도교수님께서 고향에 집을 지으시고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시면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인간은 인간이 마음대로 안되어서 동물을 기르는데, 동물도 마음대로 안된다 싶을 때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식물도 본인 마음대로 안되니까 분재 같은 것을 해서 인위적으로 식물의 모습을 바꾸는 것 같다고. 우리가 최소한 거기까지 가진 않아야 할 것 같단 요지로 말씀해주시는데, 십분 공감했다. 사람은, 절대로 완전히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 우린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연애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지인 부부가 있었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두 사람의 성향이 적지 않게 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 보니 두 사람이 싸운 적이 없단 것은 그들이 완벽하게 맞는단 의미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본인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엄청나게 대화를 하더라, 그리고 절대 타협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걸 놓고 우기고 싸우기보다 '그건 그렇게 하고, 그러면 이건 이렇게 하자'면서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면서 맞춰나가더라.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상대가 모든 것 또는 대부분을 내게 맞춰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내 물건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듯이, 상대방을 본인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누군가를 평생 본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 본인이 상대를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그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당신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다른 방식으로 풀고 있을 것이고, 그건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에 두 사람의 관계에서 터질 시한폭탄이다.


그래서 사랑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렵다. 이는 특히 두 사람이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감정적인 호감만 있을 때 그렇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기면, 우리는 그 안에서 엄청난 평안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소유욕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본인은 상대가 그 부분을 맞춰줘야만 할 것 같다면, 자신이 양보되지 않는 부분인데 상대도 그게 되지 않는다면, 헤어지거나 연을 끊자. 이는 그건 사랑이 아니거나 두 사람이 맞출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해 그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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