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 좋아함과 사랑의 구분법

사랑의 풍경. 6화

by Simon de Cyrene

호감, 좋아하는 것과 사랑은 어떻게 구분하지? 4년 가까이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시작점은 중학교 때 나를 사로잡았던 이 질문이었다. 연애가, 이성에 대한 감정이 나 자신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장 컸던 시기에 이 질문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애들은 본인이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호감은 있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다고 하고, 좋아는 하지만 사랑은 아니라고 하는데 난 아무래도 그걸 구분하지 못하겠더라.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친구들도 그 기준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난 사실 이 문제를 20대 후반 정도에 정리했다고 생각했고 사랑은 그냥 추상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지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 더 정리되었고, 이제는 그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기준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이전 글에서 썼던 우리는 호감, 좋아함과 사랑은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감정적으로만 판단을 하면 우리의 욕구, 욕정, 욕망과 호감, 좋아함, 사랑이 일으키는 감정이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만을 기준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인스타에 있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보면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과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은 비슷하다. 다른 호르몬이 작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는 호감, 좋아함과 사랑을 느낄 때의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아니 누구도 자신의 감정의 상태를 100% 확실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능력이 없다. 우리의 감정은 단순히 상대와의 관계로 인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신체적 컨디션, 심지어 상대를 만나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순간의 감정으로 상대에 대한 마음을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니, 특정한 계기를 통해 누적된 감정으로만 판단해도 안된다. 이는 우리의 감정은 한순간 영향을 받아 한 방향으로 틀어지면 그 영향을 계속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적인 상태가 항상 진실은 아니기 때문에 감정만을 기준으로 상대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게 되면, 그 관계는 가서는 안될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감정은 상관없이 관계를 정의하라는 것도 아니다. 감정은 우리를 구성하는 큰 부분이니까. 만약 상대에 대해 힘든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이 상대와의 관계에서 엄청나게 누적되어서 내가 감당하기 힘들다면, 아무리 이성적으로는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을 듯해도 나를 위해서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맞고, 때로는 상대에 대한 호감이 생기면 그 감정에 충실하면서 따라가는 게 맞다. 최소한 이성적으로 브레이크가 잡히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감정과 이성 사이에 균형을 찾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렇다. 감정과 이성 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과정에는 [훈련]이 필요하고, 이는 [경험]을 통해 이뤄진다. 사람들이 감정에 근육이 생겼다는 것은 감정이 무뎌졌다는 의미일 때도 있지만 이성을 통해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티는 힘이 생겼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감정적인 부분 때문에 너무 힘들어해도 자신을 탓하거나 폄하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폄하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모든 것은 과정에 있고, 지금 경험하는 아픔은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경험을 하고 훈련이 되다 보면 통제할 수 있게 될 뿐이다. 본인이 아프고 힘든 걸 느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난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본인이 아픈 것도 모르고 지내다 그게 한꺼번에 터지기도 하니까.


이처럼 감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불확실성이 사랑을 감정을 기준으로 평가 혹은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면 사랑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그건 [상대에 대한 신뢰]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호감이 있고, 상대가 보고 싶고 마음에 들어와도 우리가 처음부터 상대에게 나의 부족한 면까지, 허물까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감정은 있지만 아직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애 초기에 깊은 스킨십을 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상대가 나와 스킨십을 해도 될지, 스킨십을 하는 게 그 관계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시 스킨십 얘기를 하면서 곁으로 빠져보겠다. 이는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은 굉장히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남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은, 더군다나 은밀한 곳까지 만지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을 때는 스킨십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상대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위해서 만지는 지를 알 수가 없고, 나를 단순히 욕구, 욕정, 욕망에 가득 차서 만지고 스킨십을 하는 것이라면 그건 날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고 내가 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여자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가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생명체가 잉태될 수 있게 되고,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나는 남자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여사친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그 부담과 두려움의 수준에는 개인 차가 있지만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여자는 없는 것 같더라. 심지어 결혼을 한 사람들도. 피임을 해도 1%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고, 그 1%가 현실이 되기도 하며, 그렇게 되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니까. 남자들은 낙태를 쉽게 생각하지만, 내 몸에서 낙태를 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라도. 생명이니 아니니 이론적인 말은 많지만 그걸 경험한 사람은 마음이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여자라면, 나도 그럴 것 같다.


물론, 스킨십이 거룩하고 사랑만 가득하고 욕구와 욕정, 욕망이 없는 플라토닉 한 것이어야만 한단 것은 아니다. 그런 스킨십은 있을 수도 없다. 우리가 우리 감정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다만, 우리가 상대를 사랑해서 교감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스킨십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욕정에 가득 차서 하는 것인지는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기준선은 상대가 거부할 때도 그걸 강요하고 싶은지 아니면 상대가 거부하면 기꺼이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지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전자는 욕정이고 후자는 사랑이다. 이는 사랑은 상대를 나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옆으로 빠져서 스킨십 얘기를 한 것은 스킨십은 상대와 나 사이의 [신뢰]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에게 나의 얘기를 더 많이, 더 솔직하게 털어놓고 보여줄 수 있을수록 그것은 사랑에 가까울 것이고, 우리가 상대와 스킨십을 하면서 나의 신체를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에 부담이 적거나 없을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한 신뢰는 강요로, 신뢰해달라는 요구를 통해 주어지지 않는다. 신뢰는 이뤄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신뢰는 두 사람이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을 함께 할수록 형성된다. 하지만 때로는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의 양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시간을 함께 하지만 자신은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있을 때, 상대 앞에서 나 자신 그대로가 아닌 가공된 모습으로 있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시간과 경험을 아무리 함께 많이 해도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런 관계는 서로 신뢰한다고 착각하게 될 수는 있지만, 진짜 신뢰가 형성되지는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신뢰하기가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결혼을, 사랑을 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뢰에 대한 배신을 당하는 경험이 축적되고, 이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바람을 피우는 것이, 간통이 나쁜 것은 본인은 그 행위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하는 것일지 몰라도 그건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신뢰를 깨뜨리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기도 어렵게 만든다는데 있다. 바람을 피우는 것은 단순히 배신이 아니라 상대가 세상을 대하고 바라보는데 영향을 주는 행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람을 피우게 될까? 어렸을 때는 바람을 피우고 간통을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몰래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더라.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어쩌면 기존 관계에서 이미 신뢰가 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인 혹은 부부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를 존중하고 아껴주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신뢰가 깨어졌다면, 누가 먼저 깼든지 간에 상호 간에 그런 신뢰가 깨어졌다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니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관계가 바람으로, 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뢰는 왜 깨어질까? 그건 두 사람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이기적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상황과 마음, 말은 이해해주려 하지 않고 나의 상황과 마음, 말만 강조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게 되고, 그게 반복되고 누적되면 두 사람 사이에 생겼던 신뢰는 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두 사람 간의 상당한 수준의 단절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만날 시간이 없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도 자신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수단인 대화를 하지 않으면 두 사람 간의 신뢰는 깊어질 수가 없고, 대화가 단절될수록 두 사람 간의 신뢰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신뢰는 그냥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는 형성하는데도, 유지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감정이지만, 반대로 그런 노력을 하기 때문에 감정이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나를 그만큼 더 보여줄 수 있단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래서 누군가를 신뢰하는 건, 많은 경험을 할수록 쉽지 않다. 이는 누군가를 신뢰했다 배신을 당하는 건 내게 엄청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사랑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나 자신을 보여줘야 상대와 신뢰가 형성될 수 있는데, 신뢰가 없으면 나 자신을 상대에게 그대로 드러낼 수 없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그래서 사랑에는, 어느 순간엔가 상대를 신뢰하기로 하는 결단 또는 계기가 필요하다. 사실 신뢰는 계기만 생기면 짧은 시간에도 깊게 형성될 수도 있다. 이는 작은 행동 또는 작은 말도 그 사람의 많은 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결정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랑은 보통 그런 작은 계기로 인해 시작된다. 때로는 아주 작은 사건이나 계기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뢰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계기가 두 사람의 벽에 구멍을 내고, 두 사람이 많은 시간과 경험을 같이 보내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상대에게 많이 보여줄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졌을 때,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호감은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는 감정이 일어나는 상태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와 나를 사회적으로 구속시킴으로써 서로에게 집중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기준을 잡자면 우린 호감을 느낄 때 썸을 타고, 상대에게 집중하고 싶을 정도로 호감이 커지면 연애를 하고, 상호 간의 신뢰가 형성되면서 사랑을 하며, 그 신뢰가 단단해질 때 결혼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은 나의 시간과 마음을 넘어 나의 현실도 상대와 합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뢰 없이는 해서는 안 되는 결단이니까.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때문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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