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 5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 표현에 대해서 '첫눈에 반했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라면서 사랑엔 빠질 수 없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이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분명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그렇게 순식간에 빠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시작할 수 없다. 이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우리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어느 한순간에는 상대의 단점과 부족함이 보이지 않아야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고 나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서 상대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굳이 개념적으로 그건 호감이고, 욕망이고, 욕정이고 사랑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순간의 감정과 욕망, 욕정과 상대에 대한 사랑을 명확하게 인지하거나 구분할 수 없다. 이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감정의 영역이고, 감정을 이성적으로 분해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 감정은 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이 그렇게 깨어지는 것은 사랑이 시작되지도 못하게 한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니까.
사랑에 빠지는 것이 용감한 결단인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내 이성의 영역이 마비되었음을 인지하면서도 나 자신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성이 강할수록 나 자신을 던진 후에 받을 수 있는 상처 또는 대가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비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비판은 사실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그것만으로 유지되거나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 사람의 관계에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룰때야 비로소 완성된다.
사랑에 빠지는 현상을 호르몬 작용을 통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페닐에틸아민은 길어야 2-3년간 유지시켜준다며 사랑의 유효기간은 2-3년만 간다고 주장한다. 이는 얼핏 들으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이 아니다. 페닐에틸아민은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감정은 단순히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이 아니다.
과학자들도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에는 페닐에틸아민,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과 같은 다양한 호르몬이 교차하면서 작용한다고 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페닐에틸아민의 유효기간을 기준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을 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사람을 해부해서 장기, 팔, 다리, 머리, 눈을 따로 놓으면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음, 페닐에틸아민이 작용하고 있군'이라고 의식하지는 않지 않나? 설사 그런 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그런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호르몬들 중 2-3가지가 함께 작용하면 우리는 그것이 다른 호르몬 하나가 작용하는 상태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호르몬의 기준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다툴 때도 있지만 결혼한 지 20-3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부부들이 있다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 사랑이 단순히 호르몬 한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을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사랑을 그렇게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사랑은 원래 2-3년 안에 끝나게 되어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중간, 중간에 호르몬 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지'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 외에는 아무 효용도 없다. 이는 호르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어떤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항상 맞출 수도 없을 것이고, 그걸 알 수 있다고 해도 우린 우리의 감정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기름이 떨어지면 채워 넣듯이 우리의 의지로 페닐에틸아민의 유효기간이 다했을 때 그것을 보충할 수 없는 이상 호르몬 작용으로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어떤 효용성도 갖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랑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이성과 노력으로 깊어지고 유지된단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보고 불타오르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그것도 사랑의 일종이긴 하겠지만 그게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불타오르는 감정은 욕구, 욕망, 욕정과 사랑이 어느 정도 비율로 같이 배합되어서 나오는 것이지 순수하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을 피우는 것에 비유하자면, 그런 감정은 번개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사랑의 그림 안에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게 불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진 않는다. 불을 피울 때 번개탄으로 불이 오르면, 그 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숯을 넣어줘야 하듯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타오른 감정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노력]이다. 그리고 숯을 계속 넣어주지 않으면 불이 유지되지 않듯이, 사랑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사랑에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랑에 빠질 때의 감정은 욕구, 욕망, 욕정과 사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그 욕구, 욕망, 욕정이 사그라들면 그런 감정도 어느 정도는 같이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우리의 욕구, 욕망과 욕정은 항상 새로운 것에 반응하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새로움이 사라지면 그런 감정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다시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이다 보니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즈음에 서로에게 그런 감정을 일으켰던 장소, 과거, 추억을 떠올리고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던 부분을 다시 회복하면 그런 감정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상대가 본인에게 매력을 느꼈던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는 외적인 면도 그렇고, 상대에게 하는 배려, 행동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이런 노력은 두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는데 있다. 자신은 살이 엄청나게 찌고, 옷도 엉망으로 입고 머리는 빠지면서 상대에게는 외적인 매력을 유지하라거나 본인은 상대에게 소리 지르고 욕을 하면서 상대에게는 말을 고분고분하게 하라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은 변해가면서 상대는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많은 부부들은 그런 점 때문에 싸우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으며 멀어지면서 서로에게 느꼈던 매력을 잊어버리고 잃어간다.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다른 사람과 접점이 생기면 그 상처 혹은 상호 간의 매력의 상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매력'은 사실 사랑을 유지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그게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음식으로 따지면 그런 매력은 음식을 맛있게 해주는 양념이나 소스이긴 하지만 음식의 주재료는 아니란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지만 사실 사랑은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가장 외로운가?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고 싶을 때가 아닐까? 우리가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다니고 싶은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그 과정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한 존재여서 감정적인 측면에서 타격을 입으면 그게 다른 영역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감정적인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존재가 있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우리는 모두 그런 필요가 있고,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그런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에게서 그런 필요를 충족받을 수 있단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결혼제도에 딸려오는 부담과 책임 등을 감안하면 부모님과 매우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조금 다르고, 그건 [결혼과 이혼의 풍경]에서 설명해 놨다.)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래서 사랑의 핵심은 상호 간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혹자는 연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상대에게 '의존적'인 것은 바람직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지만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연애를 왜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에게 의지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존재가 내 삶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필요한 것이다. 의존적인 것과 의지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고, 우리는 상대에게 의존적이어서는 안되지만 잘 의지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을 상대에게 쉽게 열지 않는다. 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내놓기 위해서는 내가 그랬을 때 상대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품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상대에게 나 자신을 내놓고, 의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그러할 때 두 사람 사이에서 감정적 교감이 이뤄지고, 두 사람이 모두 상대와 있을 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의 핵심은 [신뢰]인데, 그러한 신뢰는 두 사람이 많은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때야 비로소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다르고, 그 다름을 이해하지 않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연인 혹은 배우자가 이성과 단 둘이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들었을 때,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그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대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있어도 상대와 보낸 시간이 짧거나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고, 과거에 그런 방향으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면 그 강도는 더욱 심할 것이다.
연인과 부부간에 '투명성'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상대가 안다면 상대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기에 더 신뢰할 수밖에 없고, 그 패턴이 계속되고 축적되면 나에 대한 상대의 이해와 경험이 함께 축적되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나 결정에 대해서는 서로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신뢰가 형성 또는 강화되면서 두 사람 간에 존재하는 안정감도 커지게 된다.
사랑이, 두 사람 간의 안정감과 평안함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다만, 그걸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는 내가 그것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순간 상대는 그것을 본인에 대한 신뢰가 없거나 작은 것으로 느끼면서 상호 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상대를 믿어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두 사람 간의 사랑은 그 신뢰가 경험적으로 확인될 때 깊어질 것이다. 사랑이 위대한 것은, 사랑이 모험이고 용기가 필요한 것은 이처럼 우리가 상대를 믿어주기로 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믿어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연인과 부부는 그런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 깨어지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때 헤어진다. 사람들이 오래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는 것은 오래 한만큼 서로를 더 잘 알고, 상호 간에 신뢰가 강할 것이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오랜 연애 끝에 한 결혼을 연애기간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기간 만에 끝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두 사람 간의 신뢰와 상대에 대한 확신이 컸던 만큼 결혼하고 나서 발견하게 되는 상대에 대해 몰랐던 모습들로 인해 그 신뢰가 깨어지는 강도와 수준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간 A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B라는 모습이 보이면, 그 신뢰에 대한 배신이 상대가 다른 영역에서도 다른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란 의심으로 이어지고, 그런 의심이 몇 번 확인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반면에 연애를 매우 짧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부부들은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몇몇 요소들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에 대해 모른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 상대가 이러저러할 것이란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상대의 새로운 모습이 신뢰의 붕괴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단 것이다.
연애를 길게 하는 게 좋지 않단 것도, 연애기간이 짧은 것이 좋단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연애를 길게 한 것은 상호 간에 다름을 발견하고 다툼이 일어나도 그것을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추억과 경험을 선물해주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결혼한 후에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만 하면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연애를 '잘'한 커플은 연애를 길게 하면 할수록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을 가능성이 연애기간이 짧은 커플보다 훨씬 높다. 반면에 연애기간이 짧았던 부부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빨리 느껴 빨리 갈라서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두 사람이 안정적으로 연애 또는 결혼을 하면서 사랑하느냐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적지 않은 노력은 필요하다.
믿음과 신뢰는 그냥 만들어지거나 지켜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대부분 시간을 상대와 보내지 않거나 혼자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생각과 경험에 대한 말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공간적으로만 같이 있지 경험적으로 같이 있지는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일상의 공유하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해 아는 영역보다 모르는 영역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 사이에 믿음과 신뢰는 생기기는커녕 유지될 수도 없다. 서로 떨어져 있음으로 희석될 수밖에 없는 믿음과 신뢰는 두 사람의 노력 없이는 그냥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는다.
연인과 부부가 일상에서 작은 것들을 공유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가 경험하지 못한 나의 영역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상대의 영역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게 되니까. 대화가 단절된 연인이나 부부가 행복할 수 없는 건, 그로 인해 상호 간에 신뢰와 믿음이 희석되고 있고, 그러한 신뢰와 믿음의 희석은 상대에게 내가 감정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게 만들며, 내가 감정적으로 교감은커녕 의지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점점 거리에서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치는 사람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형식적으로는 연인이나 부부일 수는 있어도 그 실질에 있어서는 옆에 서서 지하철 문이 기다리기 기다리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아니, 그 사람만도 못해질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최소한 내게 상처는 주지 않을 테니까.
결혼은, 그러한 감정적 교류를 넘어서 현실을 상대와 합쳐나가겠단 약속이다. 나는 그래서 부부는 각자의 수입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더라도 상호 간에 예산에 있어서는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금전적인 사용에 대한 부분에서 서로 투명하지 않으면, 그건 상호 간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을 따로 관리하기로 했고, 공동 예산을 어느 정도로 정했다면 상대가 자신의 수입을 어떻게 쓰는지도 자유롭게 놔주는 것도 서로에 대한 신뢰의 한 부분일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이 수입을 따로 관리하기보다 두 사람의 수입을 하나로 합쳐서 그 안에서 함께 계획을 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각자의 수입을 따로 관리하기로 합의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이란 뜻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완전히 하나로 합치지 않기로 합의한 부분은 부부간에 그 영역인 개인의 영역을 두기로 합의한 것이고, 합의를 했다면 그에 대해서는 존중해주는 것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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