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특징과 본질

사랑의 풍경. 4화

by Simon de Cyrene

개인적으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이는 그런 표현 하나, 하나가 쌓이면서 우리 사회에 '사랑'의 가치를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전화 통화에서 내게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사랑은 얼마나 쉽고 가치가 없는 것이 되는가?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상하게도 이 질문은 사춘기 때,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친구들은 어느 순간 사랑한다며 이성에게 고백을 하고, 어떤 이들은 왜 자신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지 않느냐며 불평을 하는데, 상대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난 어느 정도 호감이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호감이고, 좋아하는 것이며, 사랑하게 되는 건지를 모르겠더라.


이는 우리가 사랑이 '감정'만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정에 경계를 긋기는 어렵지 않은가? 아니, 감정에는 경계를 그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인 측면 혹은 느낌만으로 사랑을 정의하거나 규정지을 수는 없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규정지으면 안 되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과 비슷한 감정이나 느낌을 주는 다른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정을 우리 안에 드는 느낌이나 호르몬적인 변화로 판단하고, 그렇다 보니 때때로 상대에 대한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의 욕구, 욕심, 욕정, 욕망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느낌적인 느낌과 감정은 엄청나게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너에 대한 욕심, 욕망과 욕정은 없어. 내 감정은 오로지 사랑일 뿐이야'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본인이 엄청나게 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감정적인 동요와 호감을 느끼는 것은 사랑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이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감정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란 것이다. 거리를 지나가다 매력적인 이성을 봐도, 정말로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하거나 선물을 받아도 호르몬이 작용하고 좋은 감정과 느낌이 들지 않나? 그렇다면 우린 그렇게 쉽게, 자주 사랑에 빠진단 말인가?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심리적 상태로 인한 일시적인 호르몬 변화이고, 그러한 작용은 우리의 욕구, 욕망, 욕심과 욕정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랑은 감정만을 기준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사전적으로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가 사람들이 사랑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못 되는 것은 '어느 정도'를 아끼고, '어느 정도의' 정성과 힘을 다하는 지를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의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정의는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타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정의 '사람이나 존재'를 기준으로 내려지고 있지,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지 않나? 이는 사랑은 결국 우리가 '상대를' 얼마나 아끼고, '상대에게' 얼마나 정성과 힘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내게' 있는 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 비춰봤을 때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부는 상대에게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자신과 항상 함께 있고, 그에 따라 내가 없는 나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나보다 나를 더 챙겨주지 않지 않나? 사랑이 위대하고, 엄청난 것은 이처럼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아끼고, 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타성은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 심지어 오랜 연인이나 부부도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중심적이 되지 않나? 연인이나 부부간의 다툼은 깊게 들여다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자'가 항상 전제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쉽게 주지 않는다. 사랑은 계산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전혀 계산적이지 않은 사랑은 없다. 다만, 서로를 많이 사랑하지 않을 때는 상대도 나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하거나 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상대를 위해 내주는 것이 적거나 더 계산적이 되는 반면에 상호 간에 신뢰가 생기거나 강해질수록 덜 계산적이 되어갈 뿐이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고, 상대와 함께 함으로 인해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정을 상대가 직접 주지 않더라도 나는 받는다고 느끼면서 상호 간에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 계산적이지 않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도 두 사람 간에는 사실 감정적 교감이라는 계산할 수 없는 '무형적 거래'는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도, 특히 시작하는 연인들에게는 어느 정도는 서로를 의식하며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는 너를 위해 맞출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반복되고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될 때,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어 상대의 감정이라는 무형의 요소에 발생하는 결핍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두 사람은 더 이상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진정한 감정적인 상태는 어쩌면 설레임이 아니라 '편안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에게서만 온전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사랑의 이러한 특성은 '오빠 믿지?'나 '오빠, 나 안 사랑해?'라는 식의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 믿음은, 신뢰는 말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신뢰는 경험의 축적과 행동으로 입증했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그러한 믿음과 신뢰가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을 때 '오빠 믿지?'나 '오빠, 나 안 사랑해?'와 같은 말로 상대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 상호 간에 존재하지 않는 믿음과 신뢰를 강요하는 폭력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말을 통해 상대에게서 끌어내려는 행위를 상대가 할 수 있을 수준으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연애 초기에 하는 스킨십과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된 후에 하는 스킨십은 그 성격도 다르다 할 것이다. 상호 간에 아직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스킨십은 엄밀히 말하면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욕구의 충족'을 위해 하는 것에 가깝고, 상호 간에 믿음과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된 후에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스킨십은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이 연애 초기에 여자들보다 스킨십에 더 적극적인 것은 같은 상황에서는 남자들이 성적 요구가 여성들보다 왕성하기 때문이고, 연애 초기에 스킨십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아직 상호 간에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에게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다.


물론, 여성에게 성적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기 대문에 연애 초기라고 해도 두 사람이 모두 상대를 그런 욕구를 발산할 도구나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이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아니, 두 사람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명시적인 동의가 있다면 연인이 아니어도 스킨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욕구의 발산을 위해서 가정 밖에서 스킨십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단 것은 아니다. 이는 그러한 행위는 배우자의 믿음과 신뢰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이나 부부간의 스킨십이 욕구, 욕망, 욕정을 해소하는 수단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연인이나 부부 간에도 스킨십을 그와 같은 수단으로 사용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관계적인 성격을 갖는 스킨십'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스킨십들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스킨십도 습관이고, 평소에 스킨십을 의사소통과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그보다 깊은 스킨십도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성 간의 관계에서 스킨십과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스킨십을 욕구, 욕망, 욕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할 때 발생한다.


사랑은 이처럼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연인 간의 관계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쉽게, 자주, 많이 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때로는 우리가 정말로 상대를 믿고, 신뢰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기도 하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그렇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연애 초기에 상대를 위해 내 것을 희생하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상대에게 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은 자신을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상태나 호르몬 작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감정상태와 호르몬 작용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은 외부적인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람은 모두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상대에 맞춰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사랑에서 이러한 요소를 '사랑의 이성적인 측면'이라고 표현하고,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이성과 노력으로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의 이성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