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 3화
우리는 직접 경험해 본 것만 안다. 물론, 우린 공부해서 지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는 있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나 유형이 있는 것들의 변화의 경우 경험하지 않아도 상호 간에 인과관계를 이해하면 우린 그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영역에서 경험을 동반한 감정적인 부분의 경우, 우린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아니, 이는 감정적인 부분이 동반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개인 영역에서 경험적인 것은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대학원에서는 조교 경험이 있으신 교수님과 없으신 교수님들이 자신의 조교를 대하는 방식이 보통 확연하게 대조된다. 조교 경험이 없으신 교수님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조교들에게 던지시는 반면 조교 경험이 있으신 교수님들은 조교들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피면서 업무를 할당해 준다. 조교 경험이 없으신 분들의 경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00와 00은 같이 시키면 안 되겠구나'는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걸 왜 병행할 수 없는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우 나이스 한 분들은 그나마 '내가 조교를 해보지 않아서 조교의 어려움을 모르니 힘든 게 있으면 그때그때 솔직하게 말해 달라'라고 부탁하시지만 그런 분들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렇게 어려움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의 경우 대부분 조교 생활은 해보지 않았지만 본인은 다른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을 하셨더라. 조교 생활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몰랐던 경험이 그 사람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상황과 어려움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님들 간에 그러한 차이 역시 그 사람의 경험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사실 자신이 경험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다이아몬드 수저가 아닌 이상 회사생활을 처음부터 고위직으로 시작한 사람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위가 높아지면 자신의 하급자들이 어떤 일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그 일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시간이 드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급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본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라떼는'을 외치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의 경험과 기억이 얼마나 잘 희석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유형 중에 최악의 유형은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기억하면서 그것을 훈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나도 000 하게 힘들어 봤어'라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힘듦을 폄하하는 사람들, 자신은 지금 엄청나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지를 강조하며 자신의 현상황을 상대가 '가진 자'로 여기지 말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천 용'인 사람들 중에 겸손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매개로 사람들을 짓밟는 '개천 용'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현실이 너무나도 각박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지할 줄 모른다. 이는 그들이 평생을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 믿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보다 멸시와 환멸, 무시를 당한 경험이 훨씬 많기에 자신도 다른 사람을 칭찬할 줄 모르고,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모른다. 이 역시 그들이 따뜻한 칭찬과 위로를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남는 법은 그런 상대를 누르고 일어나는 것 밖에 없었고, 그렇다보니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경쟁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경쟁하지 않아도 될 영역에서도 상대를 누르고 짓밟으려는 관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진심 어린 위로와 칭찬, 사랑을 경험해야 바뀔 수 있는데, 이 또한 쉽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예상외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쉽게 넘어가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사랑받은 적이 많지 않다보니 사랑 비슷한 것을 경험하면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현재까지 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어렸을 때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훈육받으며 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다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은 방종이지 사랑이 아니다. 아이가 현실에 나가서 경험할 한계들에 대해서는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 방법으로 이를 설명하면서도 아이가 자신의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렇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가정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가정이, 부모가 아니어도 조부모님이나 좋은 선생님, 친구들에게서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은 건강한 자아를 갖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미숙한 상태에서 만난 연인이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그 만남을 통해 사랑을 배우기도 한다.
이처럼 내가 지금까지 어떤 경험과 관계 속에서 살아왔는지는 나의 행동, 말과 감정들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이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온전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왜곡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사랑을 한다. 스킨십을 사랑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관계의 목적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욕망, 욕구와 욕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핍이 매우 심하기 때문이고,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워하는 사람들 역시 불안한 환경이나 경험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내가 감정을 표출하고 상대와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의 시발점은 '감정'이다. 따라서 만약 내가 상대와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거나 내 안에 무엇인가가 왜곡되게 드러난다면, 그건 과거에 내가 했던 어떠한 경험이나 처했던 어떠한 상황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랑은 나를 돌아보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내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상대가 다 받아줘야 그게 사랑 아니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은 받지 않고 그렇게 주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만한 일이나 말, 행동을 하면, 개인차는 있을 수도 있지만 상대는 어떤 형태로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어있다. 따라서 상대가 힘들다거나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밀어부칠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잡고, 그것이 자신의 문제인지 아니면 상대가 특정한 성향과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를 이성적으로 돌아보고 고민해 봐야 한다.
물론, 그게 누구의 탓도 아닐 수 있다. 두 사람의 경험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자신이 품고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있다. 내가 상대에 대해 불편한 것이 누군가에게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상대가 불편해 하는 나의 특정한 성향이 누군가에게는 마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상처와 과거의 경험들이 서로를 보완해주지 못한다면, 두 사람이 그러한 부분들을 맞추기 위해 계속 노력하다 못해 지쳐서 더 이상 노력하기 힘든 상황까지 갔다면, 두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는 그 문제가 해결되고 두 사람의 차이가 맞춰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헤어진다면,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두 사람이 단기간에 맞출 수 없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당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당신을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선택이 실수로 끝났더라도 다음 선택은 조금 덜 불행하거나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지점들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보다 다음, 다음보다 그 다음 선택이 나아지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맞추고 변할 수 있는 부분은 확장해 가고, 자신이 절대로 확장할 수 없는 영역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 나가야 한다. 그런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서로 완벽하게 맞지는 않아도 맞추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에게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지 않나?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나'와 잘 맞추고 사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맞거나 편할 필요는 없다. 만인의 연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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