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하게 되는 것들

사랑의 풍경. 8화

by Simon de Cyrene

'야, 사랑한다면서 너는 왜...'


이 말을 누군가 당신에게 했다면, 그건 이미 상대가 당신을 아직 사랑은 하지 않고, 당신을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그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의 말에 복종하지 말고, 자신이 상대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단 생각에 자신을 내어놓지 말고 따박따박 말했으면 좋겠다. "너는 왜 날 사랑한다면서 내게 0000을 강요하는 걸까?"라고. "네가 원하는 것만 사랑이고, 내 마음은 상관없는 거냐?"라고.


내가 이 시리즈에서 정의하고 있는 '사랑'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상대를 좋아하거나 호감만 갖고 있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망설여지는 것을, 어쩌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을 요구하는 자체가 사실은 상대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상대를 정말 좋아한다면,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상대를 불편하게 하게 만들지 않는 게 정상이 아닐까?


물론, 우린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뭔가를 정말 절실하게 원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게 강요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인간은 없다. 나라고 달랐을까? 나도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강요하는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니, 내 성격상 강요까진 못했지만 집요하게 설득하고, 설득하고, 설득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설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가 그만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친구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다.


사랑은, 기다릴 수 있게 해 준다. 상대가 마음이 편할 때, 나와 같이 맞춰갈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 생각해보면 그런 기다림은 엄청난 것이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 마음대로 세상을 휘두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상대의 모습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마워해야 한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해도.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모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건 상대에게 대한 강요가 아니라 그런 기다림이란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만, 상대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은 상호 간에 신뢰가 있다면, 상대의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이걸 원한다'는 것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하는 건 강요지, 기다림이 아니란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묵묵히, 그에 대해 잊어버린 사람처럼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누구나 기다림의 시간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본인이 지금은 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해주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솔직하게 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두 사람 간에 신뢰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두 사람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수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그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연인과, 배우자와 부딪히는 것을 나쁘다고만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는 두 사람이 같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것만큼이나 사실 갈등이, 상대와 부딪히는 것이 두 사람이 많은 대화를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두 사람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것은 두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단기간에 호감을 형성하게 해 주고, 일상에서 함께 할 수단을 제공하지만 그게 두 사람의 관계를 깊게 만들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다름과 갈등이 깊게 만들어주는데, 이는 두 사람이 부딪히는 것은 서로의 '다름' 때문인데, 그 다름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모르던 것을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다름과 갈등은 그걸 풀어가는 방법에 따라 그 관계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갈등을, 다름을 '잘'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그래서 매우, 매우 중요하다. 갈등과 다름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대단한 것이 있지는 않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절대로 맞춰지지 않을 다름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은 두 사람의 갈등이 조금 더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는 상대를 사랑하면, 누구나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고, 내가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지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알아야 되고,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상대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 하게 되어있다. 상대가 어떤 것으로 힘들어하는지 앎으로써 우린 그걸 피할 수 있게 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앎으로써 그걸 해줄 수 있게 되니까.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힘들 때는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대화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대화는 우리가 상대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상대의 가치관,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많이, 계속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한 후에 사랑이 아니라 정으로 살기 시작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한 후에 대화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서 tv만 잠시 보다 잠들고, 주말에는 상대에게 끌려가듯 외식을 하고 돌아와 다시 뻗어있기를 반복하면, 두 사람은 서로 상대가 보내는 시간에 대해 알 수 없게 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두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둘 중 한 사람은 상대의 힘듦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위한, 수용해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그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사실 사랑은 그걸 가능해주게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 짐과 동시에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사랑의 선순환은 두 사람이 모두 상대를 이해함과 동시에 내가 상대에게 수용받고자 하는 마음과 상대를 수용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일어난다.


문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모두 상대에게 수용받고자 하는 마음이 좌절될 때 일어난다. 상대가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내 이야기를 꺼내놨을 때 상대가 그에 대해 오히려 상처가 되는 말을 했을 때, 그런 경험이 반복될 때,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간다. 이는 상대에게 그런 좌절을 반복해서 느끼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상대가 내 이야기를 잘 받아줄 것이란 신뢰를 갖지 못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꺼내지 않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내놓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상대의 말도 듣고 싶지 않게 된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랑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별 것이 아닌 것을 이유로 헤어지는 것은, 두 사람 간의 신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이 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금이 많이 가 있는 유리나 얼음에 작은 돌을 하나만 던지면 유리나 얼음이 완전히 박살이 나듯이, 두 사람이 헤어지게 만든 작은 일은 두 사람 사이에 쌓여온 불신의 경험이 완전한 불신으로 만드는 것이지, 단순히 그 일 하나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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