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 10화
내게 연애에 있어서 사랑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언제 공식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연인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서도 사랑이라는 기준은 문제가 되었고, 연인이 된 이후에도 상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시점과 상황도 문제가 되었다. 이는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5-6번 이상 만나고 나서도 아무 말 없는 남자에게 '우리 무슨 사이냐?'라고 물어봤다는 지인들의 얘기는 드물지 않게 들었던 걸 보면 이는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하는지, 연애를 하면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연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이성적으로 알아가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하겠다'는 약속이지 두 사람 간에 신뢰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었다는 선언은 아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감정과 신뢰가 사랑의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연애하고 연인이 될 수 있다. 이는 상대와 연인이 되기로 하는 것은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성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호감과 신뢰를 갖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지는 못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지인으로 지내온 사람들은 사실 서로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그 사이에 쌓여왔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이 상대에 대한 호감과 좋아하는 마음이 갓 생겨서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를 깨달으면서 연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이 사실은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그걸 연애를 시작하는 시점에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처럼 오래 알아온 경우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두 사람이 오래 알아왔다고 해서 신뢰가 강해 지거나 형성되는 것도 아닌 반면, 두 사람의 특정한 면으로 인해 상호 간에 신뢰가 빠르고 강하게 형성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간의 신뢰는 상대의 작은 습관들이나 상대가 써온 기록들, 상대의 지인들이 상대에 대해 일관되게 하는 말 등으로 빨리, 깊게 형성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더라도 빨리, 깊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과 있을 편안함을 느끼고 상대에게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내가 연인을 사랑하는지 여부는 내가 상대와 있을 때 얼마나 편한지, 나의 모습을 얼마나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간의 데이트, 스킨십 등은 상호 간에 존재하는 신뢰만큼 하면 되는 것이지 그로 인해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또 상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드는 것이 반드시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상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 이유는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편안함과 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신뢰는 그냥,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고 해서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고, 서로의 감정에 공감해줘야 한다. 사랑은 그런 노력 없이 그냥 형성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연인은 더 이상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그로 인해 신뢰관계가 무너졌을 때 이별하게 된다.
이런 문제에 비하면 작은 문제이긴 하지만 연인 간에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지를 두고도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난 사실 20대 때까지만 해도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말로 거의 못했다. 이는 내 감정을 나도 모르겠는데, 상대를 좋아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내가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언제부터 사랑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인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적으로 쉽게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는 관계에서도 나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뭔가 내 연인에게 '좋아해'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를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낮추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표현해주기에는 '좋아해'란 표현은 충분하지 않더라.
내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덜 아끼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연인이 된 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사랑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어색하고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난 분명 상대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 신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있는데도 그 표현을 사용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낯 뜨겁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표현을 과도하게 아끼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상대와 나 사이에 신뢰가 사랑에 이를 만큼 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은 물론이고 나의 마음도 여는 효과가 있더라. 그래서 나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마음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정말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상호 간에 신뢰가 그렇게 강하지 않더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되면서 정말 사랑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그 표현을 인위적으로, 또는 강압적으로 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서로 마음을 열어가고 두 사람의 솔직한 모습을 상대에게 빨리 주는 것은 여러모로 두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솔직한 모습을 빨리 발견하면, 두 사람이 잘 맞는다면 그만큼 관계가 빨리, 많이 깊어질 것이고 서로의 솔직한 모습으로 인해 힘들어진다면, 두 사람은 언젠간 헤어졌을 테니 빨리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연인이 되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단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깊게 알아갈 때,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가 만들어주는 것이지 감정적인 상태가 곧 사랑은 아니다. 감정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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