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 11화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지만 '가정'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결혼은 가정을 형성하는 절차 또는 과정에 불과한데, 그에 대해서는 수많은 말을 쏟아내면서 그에 비해서 결혼의 결과물인 가정과 관련하여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에게 운동은 엄청나게 시키면서 어떤 종목에 출전하는지, 그 종목의 규칙은 어떠한지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어르신들 중에는 '결혼에 사랑이 뭐가 중요해? 누구랑 결혼하든 부딪히게 되어 있고,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반만 맞는 얘기다. 여기에서 어르신들이 전제하는 사랑은 대부분 '감정적인 호감'을 의미하고, 감정적인 호감이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감정적인 부분은 가정생활의 매우, 극히, 작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다만, 사랑을 그렇게 정의한다 하더라도 결혼할 사람과의 관계에는 최소한의 감정적 호감은 있어야 한다. 이는 그런 감정적인 요소가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관계를 깊게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창구 또는 촉매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외모, 말투, 가치관 등에서 느껴지는 최소한의 매력은 있어야 하고, 그런 매력은 최소한의 수준으로는 유지가 되어야 한다. 이는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이 그런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단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그런 매력을 어느 정도 잃어도 괜찮다. 이는 그것을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상대가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결혼생활을 유지해주지도 않고, 결혼생활의 본질은 아니지만 그것이 결혼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호감이 아니라는데 있다. 사람들이 분륜을 저지르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간통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사랑한 게 죄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사랑을 감정적인 작용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그 후에 또다시 다른 사람과 간통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 이는 인간의 감정은 매력적인 새 것에 끌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정의했듯이 '사랑'은 감정적인 호감을 매개체로 형성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신뢰'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감정적인 측면에서 설레이고, 가슴이 뛴다고 해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상대와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을 할 때는 이러한 신뢰가 감정적인 수준이 아니라 이성적인 영역에서도 어느 정도 이상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일상을 살아가며,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떨지를 상상해 봐야 한단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상대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말로는 누구나 모든 것에 맞춰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상대의 친구나 지인, 가족과 만나서 대화해 보고, 그들이 말하는 상대에 대한 얘기는 물론이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는 상대가 어울리고 친한, 가까운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하는 말은 물론이고 상대가 편하게 어울리는 지인들은 그 자체로 상대의 성향을 어느 정도 이상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계절은 함께 지내봐야 한다'는 것은, 사계절을 함께 지내봐야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일 년 정도는 만나봐야 상대의 여러 면을 볼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즉, 상대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일 년 정도는 만나야 한단 것인데 이는 얼핏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는 일 년을 만나도 어떻게 만났는지에 따라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일 년을 만났다 하더라도 상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 년을 만나서 상대를 어느 정도 이상 알 수 있다면 10년을 연애하고 1년도 안되어 이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상대를 알아가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100% 알 수는 없다. 같이 살기 전까지는. 아니, 30년을 같이 산 부부도 상대를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나?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잘 모르지 않나?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 사람이 상대는 물론 본인도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을 아는 것이 결혼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사랑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리고 상대와 내가 그런 갈등을 풀어나갈 줄 아는지, 갈등을 풀기 위한 대화를 할 줄 알고 한 걸음씩 물러나고 맞출 줄 아는 사람인지가 그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그 관계에서의 신뢰는 계속 깊어질 테니까.
이처럼 '신뢰'는 결혼과 사랑의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 대한 그 '신뢰'를 최대한 공고히 해야 한다. 그러한 신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보통 결혼한 후에도 사실 상대와 깨어있는 상태로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깨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신뢰를 진지하게, 자신이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결혼은 평생을 두고 약속하는 것이고 그 신뢰가 깨질 경우의 후폭풍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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