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의 사랑

사랑의 풍경. 13화

by Simon de Cyrene

이혼은 커녕 결혼도 해보지 못한 내가 재혼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이는 결혼을 해보지 않아도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이 되면서 본의 아니게 결혼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다양하게 수집(?)하게 되어서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혼에 대해서도 이혼한 지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는 머리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재혼이란 주제는 그들 앞에서 꺼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한 지인들은 대부분 이혼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경험과 그 이후에 밀려오는 힘든 감정과 경험들이 워낙 크기 때문에 거기에다 '재혼'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이혼 과정에서 하게 되는 경험들도, 느끼게 되는 감정들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감히 재혼에 대한 얘기를 꺼내겠나.


다만, 이혼한 지인들이 이혼한 이후 연애하고 헤어지는 패턴을 보면 그들이 대부분 사람을 더 이상 쉽게 믿지 못하는 면이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본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본인이 당시에 갖고 있었던 경험과 지식의 범주 내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 실수로 드러났을 때, 실수일 뿐인데 사람들과 세상은 실패라고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쉽게 믿고, 신뢰할 수 있겠나?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 사람은 상대가 본인을 너무 못 믿고 마음을 열지 않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상대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본인을 믿지 못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본인이 사람을 제대로 보는지, 내가 상대의 좋은 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상대가 내게 숨기고 있는 걸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지인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하고 나서는 연애를 길게 하지 못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오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연애가 아니라, 본인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패가 아니라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상대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든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충분히 괜찮고, 사람을 잘 볼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본인의 자존감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본인이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닌 이상, 본인이 상처를 받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본인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면서, 본인을 사랑하고 아껴주기 위한 노력을 해줘야 한다. 어떤 상처든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이혼을 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이혼한 사람들을 조금 더 편안해하는 경향이 없진 않은 듯하다. 이는 사회적인 평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와 함께 수반되는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과정에 수반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해서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한 사람만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비슷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비슷한 학력 수준을 갖춘 사람만 만나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그렇게 만난다고 해서 두 사람이 잘 살 것이란 보장은 없지 않나? 이혼을 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수많은 경험 중에 한 부분일 뿐이다. 그 경험은 사람에 따라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 사람 자체를 이혼만 놓고 정의해서는 안된단 것이다. 다만, 우리가 누구를 만나던지 그 사람의 과거와 상처에는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듯이, 이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본인이 그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와 만나고 대해야 한다.


이혼이란 경험은 한 편으로는 엄청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 경험이 작진 않기 때문에 그걸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해서도 안된단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이혼이란 경험도 개인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법, 그로 인한 후유증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000 하게 해라'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이혼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걸 너무 의식하고, 조심하는 티를 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가 누군가를 이성으로 만나는 데 있어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갖는 데까지는 이혼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배려를 하면서 옆에서 지켜주면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을 경험한 사람이나 이혼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어느 정도 이상 있다. 이는 그들이 그런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오히려 더 좋은 배우자나 부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 중에는 그 경험에 매몰되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이 겪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배우자나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할 사람들도 있다. 그건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아니 분명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실 이혼이 아닌 다른 경험이나 상처로 인해서 좋은 배우자나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혼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인을 그렇게 분류해 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상처 받은 치유자'란 표현이 있다. 이는 상처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본인이 경험한 아픔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처를 입은 자를 치유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항상 성공만 하고 힘든 경험은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해 줄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가 '나도 이러저러한 경험을 할 때 너무 힘들었었어'라면서 공감해 줄 때 상대는 날 이해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고, 상대에게 위로를 받게 되지 이론적으로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위로를 받진 않지 않나?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어쩌면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경험한 일과 감정을 건강하게 잘 넘어선 사람은, 누구보다 상대를 잘, 더 많이 사랑해 주는 법을 아는, 상대의 힘든 순간에 함께 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실수를 했기 때문에 다음 선택은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이 그렇단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건 모든 경험에서 그렇지 않나? 같은 경험을 해도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로 인해 무너지고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혼도 그러한 여러 종류의 경험 중 하나다. 그것만을 기준으로 자신이나 상대를 평가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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