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풍경. 12화
가장 흔한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다. 이에 대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겨우 성격 차이 때문에, 서로의 성격도 모르고 결혼했단 말이냐? 분명히 뭔가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혼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격 차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성격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인해 이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혹자는 상대의 사업 문제, 외도 등을 이유로 삼을 수도 있는데 사실 사업 문제가 발생하는 이면에는 큰 결정도 일방적으로 하는 배우자의 성향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사실 둘 중 한 사람이 외도를 하게 되는 데는 두 사람 간에 이미 어느 정도 갈등이 있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처럼 결정적인 계기가 없는 경우에도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살지 않았을 때, 부부라는 틀 안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그게 온전히 해소되지 않고 쌓임으로 인해 함께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그야말로 성격차이 외엔 없을 것이다.
혹자는 그래서 동거가 필요하다고 할지도 모르나, 동거를 했어도 '부부'라는 틀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고 그로 인한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한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혼한 부부들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 차이'란 이면에는 '신뢰의 상실'이 깔려있다. 갈등이 없는 부부는 없다. 이는 인간은 모두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모두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하루를 오롯이 한 공간에서 보낸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각자 일을 할 때 일어나는 일들이 있으니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실질적으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두 사람이 모두 다른 사무실로 출근하거나 한 사람은 일하고 한 사람은 가정일을 돌본다면 두 사람은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대화를 통해 공유하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한 차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 것이며, 그로 인한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결혼한 후에도 자신들의 일상에 대해서, 크고 작은 변화와 감정들에 대해서 자주, 많이 공유해야 두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살고, 옆에서 잠들 뿐이지 서로의 삶, 현실과 감정에 대한 이해 수준이 연애할 때만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은 더 자주 보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유지되거나 깊어지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그러한 착각은 두 사람이 더 대화를 하지 않게 만들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상대를 내가 이해하고 있거나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듦으로써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두 사람 간에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그걸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신뢰가 있다면, 서로 맞춰나가는 작업이 병행되었다면 이는 잘 맞춰져 나갈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본인이 상대의 삶과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더 잘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공감해주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에 치이고, 상대가 본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함에 대한 섭섭함만 가지게 되고, 그 섭섭함은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연애할 때보다도 상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게 되고, 급기야 '같이 사는데도 이렇단 말이야?'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상대에게 내 현실과 마음을 공유하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혼이 힘든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함께 해온 시간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혼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필연적으로 여러 생각을 복잡하게 하고, 그걸 다 통과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단'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결단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다른 사람을 신뢰하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에, 평생을 혼자 살 자신이 없단 생각에 이혼을 망설이게 된다.
드물긴 하지만,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이혼한 후에 오히려 상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이혼 얘기가 나올 때, 혹은 이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자신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솔직하게 보여줬을 때, 두 사람이 함께 보내온 시간과 그 관계에 형성되었던 마음은 두 사람의 관계가 현실에서 다시 붙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실 이혼 얘기가 나오거나, 이혼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점에는 두 사람이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이혼과 같이 큰 문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임계치가 넘는 버거움이 있지 않으면 그 말을 꺼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갑작스럽게 이혼 얘기를 꺼냈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사실 두 사람 간의 신뢰와 사랑에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금이 가고 있었는데 본인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본인이 본인 중심적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눈치채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은 변한다.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그 사이에 있는 신뢰는 무너지게 되어있고, 신뢰가 무너지면서 두 사람 간의 사랑은 변한다. 어떤 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돈을 버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외롭게 하고, 그 마음을 헤어라지 못하면 그 사람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돈을 번다는 명목 하에 가족과 시간을 덜 보내게 되면 '관계'의 특성상 그 사이에 연결고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데 핵심은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와 직결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은 그 구성원들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가장이라는 이유로, 또는 본인이 번 돈이라는 이유로 임의적으로 의사결정을 해버림으로 인해 가정 안에 갈등이 생기고 그런 경험이 축적되면 두 사람은 이혼에 이르게 된다.
어느 여배우가 '돈이 없으면 결혼생활도 끝나는 것 같아'라고 말을 하는 것을 봤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궁핍해지는 것은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오게 되어있고, 이는 이혼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함께 했다면, 상대가 나를 존중해 준단 느낌을 받았다면 그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롯이 상대로 인한 것은 아니게 되고,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이 상호 간의 신뢰로 버틸 수 있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하게 되는 경우는 [상대와의 협의나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경제적인 결정을 하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는 가정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부부가 함께, 동등한 지위에서 의논해서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두 사람 간에는 신뢰가 더욱 강해지고 이를 통해 두 사람 간의 사랑이 더 깊어지겠지만, 어느 한쪽이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거나 무시하게 되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인지와는 별개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게 되지 않게 될 것이다. 이혼은 그 신뢰가 더 이상 함께 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지면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실 결혼하기 전에 연애를 얼마나 하는지는 생각보다 덜 중요할 수 있다. 이는 연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상대에게 갖는 신뢰와 결혼한 후에 필요하고, 갖게 되는 신뢰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애기간이 짧아도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 10년을 연애하고도 1년 안에 이혼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사랑과 신뢰, 평안함이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결혼생활의 행복은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알았는지가 아니라 결혼한 후에 두 사람이 얼마나 신뢰를 더 쌓아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결혼하기 전에 했던 연애기간의 추억은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릴 때 이를 잠시 버티게 해주는 감정적인 버팀목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유지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기간이 아니라 '상대와 내가 얼마나 상대에게 맞춰주고, 서로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아닐까? 그건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큰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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